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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서 사랑을 읽다
한대균 지음 / 이담북스 / 2011년 6월
평점 :
신화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구체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신화라고 내려오는 이야기가 많지 않아서 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신화는 알게 모르게 생활에 녹아들어 우리의 삶에 연관을 맺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특히 그리스-로마신화는 다양한 형태로 재해석되어 예술작품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그로부터 파생된 경구도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한대균교수님의 <그리스 신화에서 사랑을 읽다>에서는 그리스 신화 가운데 사랑이 매개하고 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하여 당시의 사회상을 추론하고 이를 오늘날의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있어 흥미롭다 하겠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그리스 신화는 재미있지만,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가 너무 복잡해서 읽는 과정에서 헷갈리기 일쑤라는 점입니다. 한대균교수님은 그런 불편함을 감안하여 등장인물의 관계를 비교적 소상하게 설명하고 있어 읽는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사랑과 관련되어 여성이 신화에서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가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특히 판도라라고 하는 여성 때문에 인류가 불행에 빠지게 되었다거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남편 아가멤논을 정부를 시켜 살해하는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사랑에 눈이 먼 독부로만 인식되는 등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대체적으로 부정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에 대하여 강하게 이의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기원으로부터 제우스가 올림푸스의 주신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의 과정부터 설명을 시작하여 인간을 사랑한 프로메테우스와 제우스신의 대립, 신과 인간의 사랑을 다루고 있고 아르고 원정대 이야기나 트로이전쟁, 그리고 우리도 잘 알고 있는 테베의 불행한 왕 오이디푸스와 그의 자식들에게까지 이어진 불행이 안타깝습니다.
영웅 헤라클레스의 이야기 가운데는 광기에 빠져 아내와 아들을 죽이게 되는데 이런 신의 행동을 그리면서 “신이나 영웅이 완벽한 존재가 아니며, 그들은 도덕적으로 어느 때는 평범한 인간보다 더 퇴락할 수도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이런 약점들이 그들의 영웅적 행위로 인하여 극복되고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네 현실을 그렇지 못해 완벽한 사람을 요구하는 추세가 점점 강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번의 실수도 사람들의 엄청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인터넷의 막강 파워를 통하여 거의 사회에서 매장되다시피 하는 것이 요즘 현실인 듯 합니다.
사실 그리스 신화를 읽다보면 신이나 영웅이란 캐릭터들의 난잡한 사랑을 나누고 그리고 자식을 낳고서는 다음 이야기는 없는 것을 보면 순간적인 욕망에 충실했던 것으로 보여진다는 점입니다. 또한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부자관계나 부부관계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못하고 서로 죽여서라도 취할 것을 취하는 시쳇말로 도덕과 윤리가 땅에 떨어진 세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특히 여성이 부모와 남편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사랑에 빠진 남자편을 드는 상황이 자주 소개되고 있는데, 황금양피를 찾기 위하여 아르고호에 승선한 55인의 영웅들을 이끌고 콜키스에 도착한 이아손을 보고 한눈에 반한 아이에테스왕의 딸 메데이아는 이아손을 죽이려는 아버지를 배신하고 황금양피를 구할 방도를 가르쳐주었을 뿐 아니라 이아손을 따라 고국을 등지게 되고, 심지어는 오빠를 죽게만들기까지 하게 되는데, 헤라여신이 아프로디테에게 부탁했기 때문에 이아손과의 사랑에 눈멀게 된 메데이아에 대한 저자는 폭력적인 아버지의 화를 피해 달아나게 된 난민이며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헤쳐나가는 강인한 여성상으로 다시 해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도 불행으로 마무리되는데 콜키스를 떠나 코린토스의 크레온 왕에게 잠시 의탁하게 된 이아손이 크레온왕의 딸 클라우케를 부인으로 맞게 되자 클라우케를 죽이기 위하여 이아손과의 사이에서 난 자식들까지 죽음으로 몰아넣는 독한 면모를 보입니다.
이런 과정까지도 저자는 메데이아의 입장을 고려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메데이아는 진실로 이아손을 사랑하여 조국과 아버지를 배신하고 오빠를 죽이면서까지 이아손을 쫓아 그리스로 왔지만, 이아손은 자신을 위하여 그야말로 정략적 결혼을 한 것이라는 것이므로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지 가리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지는 에로스가 화살을 이아손에게는 쏘지 않았고 메데이아에게만 쏘았기 때문에 메데이아의 일방적인 사랑이 시작된 것이고 이아손은 그것을 이용한 것에 불과할 수도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안티고네에 대한 이야기를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학에 다닐 적에 활동한 연극반에서 소포클레스 원작의 안티고네를 무대에 올린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스태프를 맡았지만, 극을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극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기억이 납니다. 절대권력 크레온왕에게 대항하여 신념을 지키는 안티고네에 무게를 두어 해석했는데, 그때가 1975년이니 제3공화국의 강압적인 사회분위기에 대한 저항을 담아내려는 의미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 다시 읽어보면 권력욕에 사로잡혀 남의 나라의 군대를 동원하여 조국을 침범한 오빠 폴리케이네스의 시신을 벌판에 버려두고 시신을 거두는 자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선언한 크레온왕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티고네는 가족의 의리를 국가의 안위보다 앞세워 왕명을 거스르는 희생양이 되기를 자처하게 되고 결국은 자신의 목숨 뿐 아니라 약혼자와 그의 어머니 크레온의 아내까지도 자살하게 만들어 가족의 파멸로 이끌게 되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 역시 한 남자의 무모함과 잘못된 통치로 인하여 왕가의 파멸이 초래된 것이며, 안티고네는 남성중심 사회의 폭력에 저항하다 죽음을 맞이한 여인이며, 부당한 국가 권력에 의하여 희생된 존재로 해석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이와 같은 해석에 동의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금도 “‘아니’라고 하기는 쉽다. 하지만 ‘예’라고 하려면 땀을 흘리고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야 한다. ‘아니’라고 하기는 쉽다. 비록 그 말이 죽음을 의미하더라도 ‘아니’라고 하기는 쉽다. 조용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살아가면서 죽어지기만 기다리면 된다. 이것이 비겁한 자의 역할이다.”라고 낮은 음성으로 안티고네를 설득하던 크레온왕의 묵직한 목소리가 기억됩니다. 그때 크레온왕을 연기했던 선배님은 의과대학졸업반이었음에도 시간을 내 무대에 섰고 중후한 연기로 시내 여학생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것도 기억납니다. 다시 크레온왕의 선택으로 돌아가서, 아들의 약혼녀이고 조카딸의 목숨을 살려주고 싶은 생각은 간절하지만 뜻을 굽히지 않고 희생자 역살을 포기하지 않는 안티고네를 살려줄 수 없는 것이 통치자로서의 입장이라는 점을 고심하게 되는 크레온왕이고 그런 크레온의 심중을 읽기라도 한 듯이 목을 매어 자살한 안티고네입니다.
사족이 될 수도 있습니다만, 깔끔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종이를 것은 본문 내용에 어울리는 미술품의 해상도를 고려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프랑수와 제라르의 <에로스와 프시케>를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