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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시간이 멈추는 곳으로 가겠습니다 - 세상 끝에서 당신에게 건네는 서른네 번의 위로
유철상 지음 / 상상출판 / 2026년 9월
평점 :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라고 했던가요? 가을이 무르익어가면서 제가 6월에 가입한 한국여행작가협회의 작가회원님들이 오랫동안 공들여 다듬은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는 출간소식이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일부러라도 시간을 만들어 작가 여러분들의 책을 읽어볼 계획입니다. 협회장을 맡고 계신 유철상 작가님의 <잠시 시간이 멈추는 곳으로 가겠습니다>는 그 두 번째 책읽기였습니다. 책을 읽기 전에 만난 작가님께서 ‘길은 늘 행복으로 열리는 선물입니다.’라고 적어주셨습니다.
책을 읽기 전에 제목에 담긴 의미가 궁금했습니다. 책을 새로 낼 때마다 제목을 정하는 일이 참으로 지난하다는 생각은 제가 첫 책을 낼 때부터 느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작가님은 서문에 책의 제목을 어떻게 정했는지 이야기해두었습니다. “지도를 펴 놓고 손끝으로 국경을 짚어 본 적이 있다. 가느다란 선 하나가 나라와 나라를 갈라놓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선위에 서 보면, 선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풀이 자라고, 새가 울고, 어김없이 무언가 피어 있었다. 그때 나는 이 책의 제목을 떠올렸다.
국경에 서 보는 경험을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여행을 여행사의 상품을 통해서 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비행기로, 배로 혹은 자동차로 국경을 넘게 됩니다. 물론 걸어서 국경을 넘게 되는 곳도 있습니다. 많은 국경에서는 출입국 절차를 따라야하기 때문에 작가님이 말씀하시는 국경의 분위기를 느껴보기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솅겐조약에 가입한 유럽 여러 나라들을 국경을 통제하는 출입국관리소가 없기 때문에 출입국 수속을 따로 하기 때문에 기차나 차량을 이용하여 휭하니 건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2019년에 발트연안 국가들을 여행하는 길에 안내하시는 분의 특별한 배려 덕분에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 사이에 있는 발가라는 마을에서 걸어서 국경을 넘는 특별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 때의 느낌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월경(越境)을 한 셈입니다. 월경은 몇 가지 다른 의미가 있는데, 그 가운데 월경(越境)은 ‘국경이나 경계선을 넘는 일’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일정한 경계를 넘기 위해서는 특별한 결심이 필요합니다. 딱히 옳은 예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미 몸에 배어 있는 흡연과 같은 습관을 버리는 일도 일종의 경계를 뛰어넘는 일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개인도 이럴진대 나라 사이의 경계인 국경을 넘는 일은 고래로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리학자 이영민은 “강력한 정치권력은 공간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고 안정된 질서를 잡기 위해 경계선을 긋고 그 공간에 차이를 새겨 넣는다”라고 했습니다. 그 경계선이 바로 국경입니다. 물론 국경은 두 정치권력의 공간을 분리하기도 하지만 또 연결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두 정치권력의 관계가 원만한 경우에는 연결이 용이하지만, 적대적인 경우에는 아무래도 까다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처음으로 절차 없이 걸어서 국경을 넘는 경험을 한 것인데, 그때의 느낌이 꼭 작가님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선 같은 것은 없고, 풀이 자라고, 새가 울고, 무언가 피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잠시 시간이 멈추는 곳’이라는 신박한 생각을 해보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작가님은 이 책이야말로 ‘잠시 시간이 멈추는 곳으로 가겠습니다’라는 문장 하나를 확인하러 다닌 기록이라고 하였습니다. 26년이란 세월을 통해 인도양의 산호섬에서부터, 아시아의 오래된 사원과 사막, 전설이 살아 숨 쉬는 골목들, 나를 돌아보게 한 일본의 작은 마을들, 그리고 알프스 자락의 스위스까지. 서른네 개의 장소에서 본 시간이 멈춘 경계는 나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피워내기 위해 존재하는 듯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작가님이 다녀온 서른네 곳 가운데 제가 가본 곳은 카파도키아, 마카오, 체르마트 그리고 루체른이 모두였습니다. 다녀온 곳에 대한 작가님의 느낌은 금세 와 닿았지만, 나머지 가보지 못한 장소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많은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언젠가는 가봐야겠다는 투지(?)를 불러 일으켰다고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