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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사이 등대
M. L. 스테드먼 지음, 홍한별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4월
평점 :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서 가본 곳이라고는 시드니 인근의 몇곳에 불과합니다. 그래서인지 오스트레일리아를 무대로 한 이야기책에 관심이 가는 편입니다. 어느 책에선가 보고 읽어보겠다고 적어놓았지만 시간이 많이 지난 탓에 어느 책이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MI 스테드만의 장편 소설 <바다 사이 등대>는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준 책읽기였습니다. 독후감 쓰기에 앞서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야누스록섬과 파르타죄즈 곶을 구글지도에서 찾아보았지만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인공지능에게 물어보았더니 서호주에서 약 100마일 떨어진 인도양과 남극해의 경계에 위치한다는 가상의 섬이었고, 파라타죄즈 곶 역시 가상의 마을이라고 했습니다.
시대적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제대한 장교 톰 셔본이 전쟁을 치루는 동안 받은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하여 등대지기가 되기로 합니다. 직업훈련을 받고 훈련기간을 거쳐 발령을 받은 곳이 바로 야누스록 등대였습니다. 등대지기 외에는 주민이 없는 섬이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결혼한 등대지기를 부임하도록 하는 것이 관행이었는데, 톰은 총각이었기 때문에 단신 부임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섬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찾아갔던 파르타죄즈에서 이저벨이라고 하는 처녀를 만나 사랑이 싹트고 결혼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섬에서 신혼을 보내게 되는 두 사람은 안타깝게도 두 차례의 유산을 겪게 됩니다. 그러던 가운데 어느날 섬에 조각배가 표류해 오는데, 배안에는 젊은 남자가 죽어있고 어린 여자 아이가 울고 있습니다. 작가는 이야기를 ‘기적이 일어나던 날’이라고 시작하였습니다만, 이는 여러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쪽으로 정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유산으로 심리적 고통을 받고 있던 이저벨이 아이를 키우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워낙이 등대지기는 섬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즉각 상부에 보고해야 하는데, 톰은 아내의 간절한 요청을 거절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원칙을 지켰어야 많은 사람들이 받았어야 할 고통을 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이저벨의 무모한 욕심이 남편 톰을 위기로 몰아넣고, 여자 아이의 친모 뿐 아니라 여자 아이까지도 겪어야만 했던 긴 고통의 시간을 줄여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전쟁에 참전한 병사들이 겪어야 했던 전후 외상 후 불안장애의 정체에 대하여 누구도 깊이 알지 못했던 까닭에 전쟁이 끝난 뒤에 전쟁의 여파로 커다른 고통을 겪거나 죽음을 맞는 불행한 일이 무수히 많았던 것입니다. 다행이도 톰은 외상 후 불안장애가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전장에서 끝났어야 할 목숨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바칠 수 있다는 결정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필귀정이라고 합니다만 결국 톰과 이저벨이 키웠던 여자 아이 루시는 친모를 만나 원래 이름인 그레이스에 루시를 더한 이름으로 살게 되지만 키워준 톰과 이저벨과는 단절된 삶을 살게 됩니다. 후일담으로 붙인 짧은 이야기를 통해서 이저벨이 죽은 뒤에 루시 그레이스가 톰의 집을 찾아온다는 결말이 조금은 아쉬웠던 것은 등장인물 모두가 행복한 결말이었더라면 하는 기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의 구조도 충분히 있을 수 있겠다 싶었고, 이야기의 전개 역시 극적이면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작가가 묘사한 상황설명도 흥미롭고 상세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실 등대의 내부는 미국에서 공부할 때 슈피리어 호수의 남쪽 귀퉁이에 있는 덜루스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스플릿 락 등대에서 구경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등대를 지키는 등대지기가 어떤 생활을 하는지는 이 책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작가의 역량을 주옥같은 대사에서도 알아 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야누스록에 대한 설명으로, “일 년에 단 네 차례 오가는 생필품을 배편 하나로 연결된 야누스록은 실이 풀린 단추처럼 이 직품 가장자링 느슨하게 매달려 있었다. 금세라도 떨어져서 남극으로 흘러가버릴 것처럼.(34쪽)” 같은. 참전했던 4년 동안 톰을 지탱해준 것에 대해서는 “톰은 무언가 구체적인 것에 매달려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정신과 영혼이 추를 잃은 풍선처럼 어딘가로 날아가버릴지도 몰랐다.(51쪽)” “섬 북쪽에 있는 화강암 절벽은 그 아래 대양을 향해 굳은 턱을 벌리고 있는 듯 보였다.(54쪽)” “등대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가장 가까운 곳은 밝히지 못한다.(254쪽)” “생각한 것과 실제로 겪는 것은 전혀 달라요.(397쪽)” “살다 보면 시련이 닥치기도 해. 때로는 삶이 나를 물어뜯고 갉아 먹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그 삶이 되돌아와 또 다른 걸 뜯어가기도 하지.(424쪽)” 루시의 친부모인 프랭크와 해나가 나누는 증오와 용서에 관한 말도 좋습니다. “내가 선택하는 거지. 과거에 사로잡혀 허우적대며 살아갈 건지, 우리 아버지처럼 지난 일을 두고 사람들을 증오하면서 평생을 보낼 건지, 아니면 모든 일을 용섷고 잊을건지. (…) 그런데 그게 훨씬 편해. 용서는 한 번만 하면 되잖아. 원망을 하루종일, 매일매일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나쁜 일들도 계속 떠올려야 하고, 명단을 만들어야 할걸. 그것도 아주아주 긴 명단을. 모든 사람을 고루고루 적당히 증오하려면 말이야. 제대로 증오하려면 독일식으로 철저히 해야 할 테니까.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선택할 수 있어. 누구나 마찬가지야.(442쪽)” 마지막으로 “저무는 해의 평형추처럼 보름달이 하늘로 밀고 올라오고 있었다. 모든 끝은 다른 무언가의 시작이다.(4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