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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밤 ㅣ 세계문학의 숲 4
바진 지음, 김하림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평점 :
<차가운 밤(寒夜, 1947년)>은 <가(家, 1931년)>와 <휴식의 정원(憩園, 1944년)>을 잇는 바진의 가족소설의 완결편으로 ‘아주 주간’이 선정한 ‘20세기 중국소설 100강’에서 11위에 올라있습니다. 1949년 이후 바진은 중국작가협회 부주석을 맡는 한편 산문과 보고문학의 창작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선 뒤로 좌경적 문학평론을 주도했던 야오원위안(姚文元)은 1958년부터 여러 편의 평론을 통하여 바진을 “개인주의, 무정부주의, 애정지상주의에 빠져 있으며, 반동적인 극단적 개인주의자”라고 비난했다고 합니다.
바진은 이에 대하여 「작가의 용기와 책임감」이라는 글에서 “작가는 마땅히 독립적으로 사고를 해야 한다. 작가는 단순한 스피커가 아니며, 부화뇌동할 수도 없다. (…) 문학에는 선전 및 교유적 역할이 있다. 그러나 모든 선전이 문예는 아니며, 문예는 자신도 모르는 외적 영향으로 인간의 영혼을 빚어내는 것이다.” “생활에 깊이 파고 들어가 관찰을 하고 소재를 선택하는 바, 모두 작가 자신에 의해 선택되는 것이지 누군가의 지도에 의해 안배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바진의 입장은 1966년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면서 반동권위, 무정부주의자, 30년대의 낡은 인물, 반혁명분자 등의 죄명으로 노동개조형을 받게 만들었습니다.
<차가운 밤>은 1944년에 쓰기 시작하여 1946년에 완성된 바진의 마지막 장편소설입니다. 국민당 정부가 피난해 와있던 충칭에 머물면서 구상한 작품으로 항일전이 막바지에 이르던 시기였습니다. 치솟는 물가, 팽배해진 염전사상, 국민당의 실정에 대한 지식인들의 반감이 고조에 이르던 당시의 분위기가 작품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가족소설 연작의 마지막 작품인 <차가운 밤>에서는 주인공 왕원쉬안(汪文宣)과 아내 쩡수성(曾樹生)을 중심으로 어머니(汪母)와 아들 샤오위안(小宣)으로 구성된 단촐한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왕원쉬안과 쩡수성은 대학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고,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한 부부입니다. 젊어서는 매사에 열정적이던 두 사람은 전화(戰火)를 피해 충칭으로 이주했을 때는 열악한 사회여건을 버터야 했습니다. 왕원쉬안은 편집 업무를 하는 박봉의 공무원이었고, 쩡수성은 은행에 다니면서 비교적 넉넉한 급여를 받고 있지만 아들을 귀족학교에 보내기로 하면서 그 비용을 부담하고 있습니다.
결혼을 반대한 어머니는 이런 며느리가 못마땅하기만 합니다.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왕원쉬안은 어쩡쩡한 입장을 취하게 되면서 부부 사이에서도 충돌이 잦아졌습니다. 은행에서는 쩡수성에게 애정을 드러내는 상사 첸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쩡수성은 남편에 대한 사랑은 여전합니다.
항일전의 전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피난을 가야하는 상황으로 몰립니다. 그 무렵 왕원쉬안은 각혈을 하는 등 폐결핵의 증상이 점차 심해집니다. 한편 쩡수성의 상사 첸은 난저우의 책임자로 옮겨가면서 쩡수성에게 함께 갈 것을 권합니다. 쩡수성은 남편을 돌봐야 한다는 생각에 머뭇거리지만 두 사람이 정식으로 결혼한 사이가 아니므로 첩에 불과하다는 말을 듣고는 난저우행을 결정합니다. 결국 시어머니와 쩡수성 모두 아들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어머니였습니다. 쩡수성이 란저우로 떠나던 새벽 그녀를 배웅하는 왕원쉬안은 ‘무섭게 차가운 밤이었다.’라고 적었습니다.
아내가 난저우로 간 뒤로 왕원쉬안의 병세를 점차 나빠지고 일본이 패전한 뒤에는 죽음을 맞고 말았습니다. 난저우로 간 쩡수성은 생활비를 꾸준히 보내왔고, 일본이 패전한 뒤에 청두로 돌아왔지만 남편은 이미 세상을 뜬 뒤였습니다.
이야기를 통해서 왕원수쉬안은 직장에서 왕따 당하고 아내와 어머니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임을 보여줍니다. 반면 쩡수성은 자기주장이 강하고 사회성도 좋은 신세대 여성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그러면서도 남편에 대한 사랑은 깊어 전통적인 면이 남아있다고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