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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 죽음을 앞둔 철학자가 의료인류학자와 나눈 말들
미야노 마키코.이소노 마호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1년 3월
평점 :
<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에서 인용된 것을 발견하고 읽게 된 꼬리를 무는 책읽기였습니다. 치유의 책읽기와 관련된 글이었습니다.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은 말기 유방암으로 죽음을 앞둔 여성 철학자 미야노 마키코와 이소노 마호가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입니다.
미야노 마키코는 대학에서 연극부 활동을 하면서 깨달은 바가 있어 철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우연’을 탐구해왔습니다. 한편 이소노 마호는 운동생리학을 전공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 만난 문화인류학에 충격을 받아 전공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신체, 섭식, 의료, 불확실성을 탐구해왔습니다. 두 사람은 미야노 마키코가 운명을 달리할 때까지 스무 통 편지를 주고 받게 되는데, 주로 이소노 마호가 질문을 던지고 미야노 마키코가 답변을 하는 방식으로 편지가 오갔습니다.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제안은 미야노 마키코가 꺼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몸속에서 자라고 자라는 암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이야기해보는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질병을 앓는 삶의 불확실성과 위험성을 이소노 마호씨와 함께 파고들어보자는 학문적 야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암 투병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오가면서 생과 사는 물론 신체와 위험성 등을 이야기하던 중에 미야노 마키코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결국은 만남과 이별을 이야기하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갑자기 병세가 악화될지도 모릅니다’에서 이소노씨는 미야노씨가 유방암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완치될 것으로 갑자기 악화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의료가 발전해서 망은 암환자들이 완치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수전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에 내용도 시대에 따라 많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병세가 악화된다면’의 의미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내놓았습니다.
미야노씨는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에서 이야기한 “죽음은 분명히 다가온다. 다만 지금이 아닐 뿐이다.(26쪽)”를 인용하면서 갑자기 병세가 악화될 가능성은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만 ‘언제 죽어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 지금에 충실하게 살아간다는 말도 부정적으로 느끼고 있다고 말합니다. 병세의 진행에 따라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선택지 가운데 암을 적당히 억제하면서 지금처럼 살아가는 인생, 부작용에 괴로워하면서도 어떻게든 살아가는 인생, 그리고 매우 무거운 부작용을 앓으며 간신히 연명하는 인생 등 세 가지 길이 있다고 상정하였습니다만, 지나치게 부정적인 생각이 아닐까 합니다.
요즈음에는 치료방향을 결정하는데 환자의 생각이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이는 경향입니다. 그런데 ‘본인이 원하시는 대로 결정하세요.’라는 말을 듣다보면, “고르기 힘들어, 선택하기도 지쳤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환자의 상태와 그에 따른 치료방향의 가능성에 대하여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암과 같은 중증질환을 진단받게 된 환자는 자신에 닥친 불행한 상황에 절망하기 쉽습니다만, 미야노씨는 ‘나는 불행한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답은 ‘불운하지만, 불행하지는 않다’였다는 것입니다.
태어나서 무탈한 삶을 살다가 죽음을 맞기도 합니다만, 많은 사람들은 암을 비롯하여 삶을 어렵게 하는 상황을 맞게 됩니다. 그렇듯 닥쳐온 어려움에 분노하면서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를 수용하고 스스로 인생을 놓아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놓아버리는 순간 불행이라는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소노씨가 미야노씨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인상적인 대목이 있었습니다. “오직 너만이 자아낼 수 있는 말을 글로 남겨, 그 글이 세계에 어떻게 닿을지 지켜보기 전까지, 절대로 죽지마.” 또한 “미야노 씨의 몸이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사실은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당신의 마지막 무기, 글로 세계를 그리는 힘은 아직도 당신 속에 분명히 남아 있습니다. 그 힘이 제 눈에 보이는 한 저는 미야노 씨의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도망치지 마. 더 할 수 있어.’라며 당신의 손을 잡아끌겠습니다. 그것이 저의 역할입니다.(19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