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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필리파 피어스 지음, 에디트 그림, 김경희 옮김 / 길벗어린이 / 2019년 7월
평점 :
대학도서관에서 일하다가 업무와 인간관계에서 오는 정신적 긴장감, 동일본대지진의 충격 등으로 정신질환을 앓게 된 사서가 나라현의 산촌 히가시요시노무라에 있는 고택에 만든 사설도서관에서 경험하는 새로운 삶을 적은 <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에서는 저자의 다양한 책읽기가 인용됩니다.
영국 작가 필리파 피어스의 만화 <한밤중 통의 정원에서>은 ‘시간이 걸리는 일, 시간을 들이는 일’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인용되어 있습니다. 히로시마 교육위원회가 초등학교 3학년 대상의 평화 학습 교재 <히로시마의 평화 노트>에 실려 있던 만화 <맨발의 겐>의 내용이 ‘피폭의 실상을 알기 어렵다’는 이유로 교체한 일을 언급한 대목입니다.
<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에서 ‘우리 안에 흐르는 시간을 무시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산촌에 도서관을 열었다고 한 것처럼 <한밤중 통의 정원에서>에서는 ‘시간’을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산촌 도서관에서 열리는 독서모임 ‘살아가기 위한 판타지 모임’에서 읽었다고 합니다.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는 주인공 톰이 동생 피터가 홍역에 걸리자 피병(避病)하기 위해 여름방학 동안 이모네 집에서 머무르게 되면서 겪은 이상한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이모네 집에 도착한 직후에는 감염되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층 방에 격리되는데, 톰은 이런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이모네 집에는 함께 놀 친구도, 마당도 없었던 것입니다. 동생 피터에게 보낸 편지에서 “여긴 정말 최악이야. 시간이 너무 천천히 흘러 괴롭다니까!”라고 써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1층에 있는 커다란 괘종시계가 열 두시 다음에 열세 번 울린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1층으로 내려간 톰은 뒷문을 열어 달빛을 끌어들여 시계를 자세히 보려 합니다. 그런데 문이 열리자, 눈앞에 아주 광활하고 아름다운 정원이 나타났습니다. 그 정원에서 작은 소녀 해티를 만나게 됩니다. 이모는 뒷문밖에는 정원은커녕 잡동사니가 모여 있는 좁은 공간이라고 합니다.
뒷문밖 정원에서 톰은 해티와 만나는 동안 시간의 변화가 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종국에는 해티가 이층에서 살고 있다는 집주인 바살러뮤 부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에서는 이 대목이 다음처럼 소개됩니다. “초반에는 그야말로 어린아이의 체감처럼 하루하루가 천천히 흘러가지만, 막바지에 이를수록 전개가 성난 파도처럼 빨라집니다. 이는 마치 인생 속의 시간 같습니다. 가령 여섯 살 아이에게 1년은 인생의 6분의 1이지만 나이를 먹으면 20분의 1, 40분의 1이 되어가는 느낌과도 비슷하지요.(56-57쪽)”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는 커다란 괘종시계가 열세번 울리는 시간에 뒷문을 통하여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해티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지만 톰의 시간은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것은 영화 <사랑의 블랙홀>과도 닮았습니다.
<한밤중 통의 정원에서>에서처럼 시간을 주제로 한 영화가 생각납니다. 80세의 외모를 가지고 태어난 벤자민 버튼은 시간이 지날수록 젊어지는 특이체질입니다. 12살이 되었을 때는 60대의 외모를 가지는데, 이때 5살 소녀 데이지를 만나면서 그녀의 푸른 눈동자를 기억하게 됩니다. 중년이 되었을 때는 숙녀가 된 데이지와 만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가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내용의 시간의 흐름을 주제로 한 영화입니다. 베토벤의 월광소나타가 주제곡이던 영화도 있었는데 제목이 생각나지 않네요.
이모와 이모부는 현실세계에 갇혀 시간을 되돌리는 열쇠, 괘종시계가 열세번 울리는 것을 깨닫지 못하지만 호기심 많은 톰은 그 열쇠를 놓치지 않는다는 설정도 인상적입니다. 환상을 잃어버린 어른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만화입니다.
모두에 인용된 미셸 푸코의 <헤테로토피아>에 나왔다는 구절도 인상적입니다. “정원이 소설의 배경으로 너무 쉽게 쓰인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정원은 그 이상의 존재다. 사실 소설과 정원은 같은 과정을 통해 태어난다. 이야기를 쓰는 건 씨를 뿌리는 것과 마찬가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