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풀 루쉰문고 5
루쉰 지음, 한병곤 옮김 / 그린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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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트래블의 중국문학기행을 떠나기 전에 구해서 여행 중에 읽었습니다. 1924년부터 1926년 사이에 쓴 산문시 26편과 1927년에 쓴 제목에 붙여라는 글로 구성되어있습니다. 26편의 시 가운데 앞부분의 13편은 여사대 사건 전에, 나머지 10편은 여사대 사건 이후에 썼다고 합니다.


루쉰의 작품들을 많이 읽어보지 않았습니다만 그의 정체성을 아직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어서 중국문학기행의 기행문을 써가는데 어려움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루쉰은 1881년에 태어나서 1936년에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가 살았던 시기의 중국은 청나라가 몰락해가고 외세가 몰려드는 가운데 군벌들의 세력 다툼, 신해혁명, 국민당과 공산당의 충돌 등이 이어지던 격변기였습니다. 1937년 항일이라는 공통적 가치를 내세운 국공합작을 시작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게 1949년이니 루쉰은 국공합작도 보지 못한 셈입니다.


루숸이 중국근현대문학의 아버지로 꼽히게 된데는 마오쩌뚱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1930 년 중국의 좌파 작가 연맹이 창설될 당시 루쉰 역시 힘을 보탰던데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마오쩌뚱이 중국 공산당을 주도 하던 시절에는 기승전 마오쩌뚱이었으니 그럴만도 했겠습니다. 루쉰의 정체성을 고려해 보았을 때 루쉰이 문화혁명 이후까지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들풀>을 우리말로 옮긴 한병관교수는 들풀의 해제를 적지 못하고 첸리췬의 해제를 인용했습니다. 그만큼 <들풀>이 난해함을 표하는 것 같습니다. 루쉰의 소설이나 수필도 어려운데 산문시를 읽고서 그 의미를 이해하는 일은 아예 꿈도 꾸지 못할 일 같습니다. 다만 읽으면서 얻은 느낌을 첸리췬의 해설과 엮어 나름대로의 생각을 몇자 저어보려 합니다.


첸리췬 역시 26편의 산문시 전체를 다루지 못하였는데, 그림자의 고별을 이야기하면서 루쉰의 강력한 주체 정신과 의지가 담겨있다고 했습니다. 몇 작품을 읽어오면서 루쉰에 대해 느꼈던 생각이 바로 이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나는 차라리 무지에서 방황하려 하오'라는 댕속을 존재에 대한 거부라고 해석한 점에 대하여 다른 관점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번역된 시를 읽을 때는 무지(無知)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만, 주석을 보니 무지(無地)였습니다. 땅은 실체가 있는 것이니 시인이 무지(無地)를 헤맨다고 한 것은 공()으로 들어가겠다는 의지를 표한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작가 시인이 불교의 개념을 많이 다루어 온 점을 고려해서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늙은이, 여자아이, 그리고 길손이 등장하여 앞길에 무엇이 있는지, 돌아갈건지 계속 갈건지를 이야기하는데, 첸리췬은 루쉰 자신의 생명철학을 총괄한 작품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길손이 앞을 향하여 나아가기로 한 것은 루쉰 생명의 마지노선 혹은 절대 명령으로 생명의 몸부림이라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거부한, 철저한 '()''()' 속에서 그가 유일하게 선택하고 견지한 것"이라면서 공()을 이야기했습니다. 아쉬운 점은 무()를 이야기하지 않았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입니다. ()는 실체가 없음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공()과는 개념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전사라는 시에서는 편을 가르는 군벌의 어느 한 편에 가담한 지식인을 꼬집는 느낌인데, 그 결말이 무물(無物)의 진 속에 같혀 늙고 죽었다면서 결국은 무물(無物)의 물()이 승자였다고 했습니다. 결국은 국공 어느 편에 기댄 지식인도 결국은 무너질 것임을 암시한 것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런가 하면 죽은 뒤라는 시의 주석을 보면 쑨원이 죽은 뒤에 일부 언론이 그의 과오를 지적하자 쑨원을 전사(戰士)에 언론을 파리에 비유한 전사와 파리라는 글을 쓰기도 했답니다. 쑨원은 중화민국의 건국자이지만 중화인민공화국에서도 기피인물이 아닌 점을 고려하였을 때 루쉰의 철학이 이해되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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