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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가 내리던 저녁 - 중국 ㅣ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스져춘 외 지음, 이욱연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평점 :
10월로 예정된 중국근대문학기행을 준비하면서 읽게 된 단편집입니다. 옮긴이는 ‘책을 엮으며’에서 “중국 근대문학은 중국 근대사가 걸어온 고난의 역정을 담고 있다. 어둠과 혼돈에 처한 중국 근대사와 근대 중국인들 삶의 여실한 기록이다.”라고 했습니다.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에는 중국 근대문학이 태동한 이후 1949년까지 나온 작품들 가운데 중국 근대문학의 성격을 압축하여 보여주는 9편을 골랐다고 했습니다. 루쉰, 위따푸, 천충원, 빠진, 마오뚠, 스져춘, 라오셔, 띵링 등 8명의 대표작을 하나씩 골랐는데, 루쉰만은 두 편을 담았습니다. 루쉰 소설의 각기 다른 개성을 엿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중국근대문학기행은 루쉰, 마오뚠, 라오셔 등 세 명의 작가를 중점적으로 다룰 예정입니다. 루쉰과 마오뚠의 작품들은 적지 않게 국내에 소개되어 있지만 라오셔의 작품은 많지가 않아 어렵게 구해서 읽고 있습니다.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을 찾아낸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옮긴이의 말로는 띵링의 「밤」, 빠진의 「노예의 마음」, 마오뚠의 「린 씨네 가게」, 스져춘의 「장맛비 내리는 저녁」 등은 국내에는 처음으로 소개되는 단편이라고 했습니다. 작품들 대부분이 엮은이의 기획 취지에 부합한다는 느낌이었는데, 스져춘의 「장맛비 내리는 저녁」의 경우 결이 다른 작품이었습니다. 표제작으로 선정될 정도로 현대적 배경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각각의 작품마다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글을 실어놓아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편집도 돋보이는 점이었습니다. 권말에 붙여 놓은 이욱연의 ‘전통과 근대에 대한 이중의 저항과 고투’라는 해설도 중국근대문학의 실체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는 글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루쉰의 「아Q정전」을 다시 읽었는데, 얼마전에 처음 읽었을 때와는 달리 전체의 맥락이 쉽게 와닿았습니다. 역시 책을 반복해서 읽을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Q를 장황하게 소개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는 이야기를 모두 읽고 나서도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게다가 “아Q는 ‘옛날에는 잘 살았고’ 아는 것도 많은 데다 ‘일도 잘하는’ 거의 ‘완벽한 사람’이었다.”라는 대목은 과연 사실인가 싶기도 합니다. 날품팔이 신세인 아Q가 사람들로부터 동네북처럼 구박을 받는 신세라는 점을 반어적으로 이야기하면서 그런 신세를 이겨내기 위하여 정신승리법이라는 대응책을 구사했다는 점이 강조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해혁명의 혼란 속에서 희생양이 되어 죽어야 했다는 결말은 역설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마오뚠의 「린씨네 가게」는 시대적으로는 일본의 만주사변(1931년)과 샹하이사변(1932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인한 중국사회의 혼란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린씨네 가게에서는 일본 상품을 주로 파는 가게였는데 일본의 침략에 대한 중국인들의 반감으로 위기를 맞기 시작하여, 국민당 관료들의 착취가 더해져 결국은 파산에 이른다는 결말이 안타깝습니다. 마오뚠은 제국주의의 침략과 부패하고 타락한 정부가 초래한 현실의 위기는 하층민의 삶을 나락으로 빠트리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작품들을 써왔다고 합니다.
라오셔의 「초승달」은 어지러운 세태에서 여성들이 겪어야만 했던 질곡의 삶을 그려냈습니다. 화자가 어렸을 적에 남편을 여인 어머니가 딸은 달리 키워보려 애를 쓰지만 힘에 부쳐 개가를 하게 되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자 몸을 팔아 연명을 하다가 딸을 독립시키게 되는데, 화자 역시 혼자서 살아남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결국 어머니의 길을 따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만난 모녀는 손을 맞잡고 힘들게 삶을 모색하지만 화자가 단속에 걸려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됩니다. 가혹한 현실 속에서 여성은 여린 초승달에 불과했다고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나도향이 단편 「그믐달」에서 초승달빛은 따뜻한 황금빛에 날카로운 쇳소리가 나는 듯하고, 세상을 삼키려는 독부가 아니면 철모르는 처녀 같은 달이라고 한 것과는 대비되는 비유라는 생각입니다.
스져춘의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은 다른 작품들과 결이 다르다는 말씀을 드린 것은 샹하이를 배경으로 평범한 회사원인 중년 남자가 비가 쏟아지는 퇴근길에 우산이 없는 여성을 만나 동행하면서 느끼는 낭만적인 생각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만의 낭만적인 생각의 여행은 다시 무료한 현실로 돌아온다는 결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