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페스의 집
수전나 클라크 지음, 서동춘 옮김 / 북노마드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양기화의 BOOK소리-세계여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페스의 집>은 2014년에 스페인-모로코-포르투갈을 여행하면서 모로코의 페스를 구경한 이야기에 더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읽어보았습니다. 절판에 되어 어렵게 구했습니다.
<페스의 집>은 호주의 유력 신문사에서 일하느나 수전나 클라크와 국영방송국에서 일하는 남편 샌디 매커천이 모로코 페스 메디나에서 다 쓰러져가는 집을 샀고, 모로코의 전통건축방식에 따라 복원하는 과정을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그곳도 겨우 두 번 방문하고서는 집을 사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그것도 영주목적으로 산 것이 아니라 집필 작업을 한다거나 휴가 때 사용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부부가 구입한 집은 페 메디나의 미로 같은 골목길에 있는 리아드였습니다. 페스에는 다르와 리아드라는 두 종류의 집이 있다고 합니다. 안뜰이 있는 것은 닮았지만 리아드가 훨씬 커서 레몬이나 오렌지 나무 한 그루 정도는 심을 정도로 넓다고 합니다. 페스의 메디나 안에는 1만4천 채의 집이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그 가운데 미로 같은 메디나의 입구에서 가까운 리아드가 마음에 들었던 것입니다.
저자 부부가 페스에 꽂힌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페스의 거리와 비교했을 때 서구의 거리는 개성과 생명력이 부족하다. 우리는 자동차와 집이라는 거품 속에 존재하며 텔레비전의 유리벽을 톻해 세상을 본다. 사람과 당나귀, 굽지 않은 빵 접시를 들고 문간에서 기다리고 있는 여자아이들은 어디로 갔는가? 암표장사, 암거래 상인,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가? 나는 페스처럼 생기로 역동하는 곳을 본 적이 없다.(176쪽)”
물론 부부가 구입한 리아드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겪은 다양한 어려움을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만, 덤으로 페스의 역사와 페스에 살고 있는 모로코 사람들의 모습을 깊이 있게 적고 있습니다. 페스는 79년 예언자 무하마드의 자손인 물라 이드리스2세가 건설했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페스는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가장 오래된 메디나는 ‘옛 페스’라는 뜻의 페스 알 발리(Fez-alBali)이고, 두 번째 구역은 1276년에 건설된 페스 제디드(Fez Jedid), 즉 ‘새로운 페스’라 메디나의 언덕 위에 위치합니다. 이곳에는 유대인의 오래된 거주지인 멜라(Mellah)도 있습니다. 세 번째는 행정과 상업의 중심지인 빌 누벨(Ville Nouvelle)이 있다고 합니다. 20세기들어 프랑스 식민 통치자들이 메디나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세웠다고 합니다. 넓은 도로와 카페가 어우러진 이 시가지인 하우스만의 파리를 연상시킨다고 합니다.
페스의 메디나 안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교육기관인 카라위인 대학(Karaouiyine University)가 있습니다. 튀니지의 카이루오나에서 종교박해를 피해 망명한 부자 상인의 딸 파티마 알 피르리야(Fatima al-Fibria)가 설립했다고 합니다.
페스의 전통적인 주택은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하던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려는 국토회복 운동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이베리아 반도에 성립된 후기 우마이야 왕국이 세월이 흐르면서 20여 개의 공국들로 쪼개졌는데, 각 공국들은 가장 유능한 예술가, 시인 학자를 모시기 위해 다투었고, 덕분에 예술과 과학이 번성했고, 빈사상태의 유럽에 유출되는 효과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독교 국가들의 국토회복운동의 결과 무너진 공국들의 난민들이 모로코로 유입되었고, 그 가운데 뛰어난 장인들이 모로코에 새로운 건축문화를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그 문화적 유산이 메디나에 있는 유서 깊은 아타린(Attarine)과 사흐리즈 (Sahrij) 신학교의 화려한 미장, 목공, 젤리즈에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로코 행정기관의 비효율성은 물론 공무원들의 부조리, 공사관계자들의 느려터진 공사진행 등, 부부의 메디나 리아드 재건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렵사리 만난 인연들의 도움으로 통상적으로 진행되는 과정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이 된 것은 수잔나 클라크의 저돌적인 추진력에 힙입은 것으로 보입니다. 더하여 20세기 초까지 조화롭게 성장하던 페스의 메디나는 전통적인 가치를 파괴하는 변화의 물결이 거세진 것에 반하여 저자 부부는 모로코의 전통 건축양식을 살려서 리아드를 재건하겠다는 의지가 돋보이는 이야기입니다. 여기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14세기처럼 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