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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밤 산책자 - 나만 알고 싶은 이 비밀한 장소들
이다혜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3월
평점 :
거의 3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만, 교토에 다녀온 이야기를 정리하기 위해서 <교토 밤 산책자>를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영화 전문지 시네21의 이다혜기자가 쓴 책인데, 영국에 갔을 때, 입국 심사관이 여권을 보더니 “한국에 살아, 일본에 살아?”라고 물었을 정도로 일본을 자주 가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영국의 입국 심사관이 ‘그런 질문을 했을까?’싶었습니다. 일본 입국 필증이 붙어있다는 것은 일본에 자주 간다는 것이지 일본에 산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아서요.
어떻든 그렇게 일본을 자주 가보았다고 하면서도 교토를 가장 많이 가보았다고 했습니다. 하기는 본문을 읽다보면 굳이 교토에 가게 된 이유는 분명치 않은 듯합니다. “교토는 내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방문한 도시이지만, 교토에 가서 뭘 하느냐고 하면 하는 게 거의 없다. 가던 곳에서 식사를 하고, 좋아하는 정원에 다시 가고, 시내를 어슬렁거리며 좋아하는 커피숍을 다니고 빵을 고른다. 그릇을 사고, 또 사고, 엇…… 또 그릇을….(183쪽)”이라고 적은 것과 심심하기 위해 여행한다고 하는 것을 보면 분명하게는 정리되지 않지만 알 듯하기도 합니다.
‘나만 알고 싶은 이 비밀한 장소’라는 부제는 책을 통해서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은 장소를 대공개하는 것을 보면 ‘나는 이런 장소도 알고 있어’라고 자랑하는 듯하기도 합니다.
교토만의 특징적인 장소와 무엇은 무려 34곳이나 됩니다. 그것들을 꽃, 정원, 특색 있는 장소와 먹거리 등 네 가지의 주제별로 묶어 놓았습니다. 사실 저는 먹는 것에 대하여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네 번째 장소에 대한 이야기는 크게 와 닿지 않았습니다만, 꽃과 정원 그리고 특별한 장소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아무래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글이 참 매끄럽게 읽히는 것 같습니다.
30년 전에 오사카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했다가 함께 일했던 친구와 교토를 당일치기로 다녀왔기 때문에 킨가쿠지(金閣寺)와 기요미즈데라(淸水寺)만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교토 밤 산책자>에 긴가쿠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지만, 기요미즈데라에서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 더 덧붙인다면 철학의 길이 있습니다. 긴가쿠지에서 시작하여 난젠지(南禪寺)에서 끝난다는 철학의 길은 일본의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가 즐겨 산책했다고 해서 이름을 붙였다고는 합니다만, 사실은 하이델베르크의 네카 강 북쪽의 산비탈에 있는 철학자의 길(Philosophenweg)에서 왔다고 합니다.
교토의 도시샤 대학에 윤동주 시인과 정지용 시인 유학했다는 이야기도 처음 들었습니다만, 정지용시인의 <향수>가 일본 유학시절 고향을 그리워하면 썼다는 것과 교토를 남북으로 흐르는 가모가와(鴨川)에서 「압천」이라는 시를 지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기요미즈데라에 있는 오토와(音羽)라는 폭포에 관한 이야기도 처음 들었습니다. 아마도 ‘맑은 물의 절’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폭포인데 세 갈래로 나뉘어 떨어지는 물줄기는 각각 장수, 사랑, 학업의 운을 상승시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도 왼쪽부터인지 오른쪽부터인지 헷갈려서 세 줄기 물을 모두 조금씩 받아서 마시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 물줄기를 모두 탐내면 효험이 없다는 도시전설도 있다고 합니다. 본당 뒤편에 있는 기슈진자(地主神社)에 있는 두 개의 돌이 3미터 간격으로 서 있는데, 하나의 돌에서 다른 돌까지 눈을 감고 걸어서 똑바로 도착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작가는 다양한 문학적 소재를 인용하여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특히 각각의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붙여놓은 짧은 인용문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일본 문학에 대한 작가의 깊이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기요미즈데라의 말사인 죠주인(成就院)을 소개하는 대목이 대표적입니다. 죠주인은 사진촬영이 금지된 죠주인에는 ‘달의 정원’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고 합니다. 이곳을 소개하는 글에서는 마스다 미리의 <영원한 외출>의 “고요했다. 바람도 없고 나무도 흔들리지 않고, 그림 앞에 있는 것 같았다.”라는 구절을 인용해놓았습니다.
누군가는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이 아쉬웠다고 했는데, 이 책을 화보집으로 보았던 모양입니다. 사진을 곁들인 수필집이라고 해야 할 책인데 말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사진도 충분히 훌륭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