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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살았던 날들 - 죽음 뒤에도 반드시 살아남는 것들에 관하여
델핀 오르빌뢰르 지음, 김두리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월
평점 :
<당신이 살았던 날들>을 쓴 델핀 오르빌뢰르는 랍비이자 철학자 그리고 작이다. 예루살렘의 히브리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중에 라빈 총리 암살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로 돌아와 언론인으로 인생의 방향을 바꾸었다. 그러다가 뉴욕으로 이주하여 맨해튼의 히브리 유니온 칼리지에서 탈무드를 공부하고 랍비가 되었다. 그녀는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돕는다는 점에서 의학과 저널리즘, 유대교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당신이 살았던 날들>은 그녀가 랍비로서 장례식을 주관하면서 죽은 사람과 남아 있는 사람을 만나면서 느낀 점들을 정리하였습니다. “나는 장례를 진행할 때마다 우리 안에 사라지지 않는 흔적을 남기고, 죽은 자에게서 살아 있는 자에게로 이어지는 이 이야기의 힘으로, 그 자리를 빛내고, 확장하려고 노력한다.(25쪽)”라고 적은 대목이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느낌입니다.
<당신이 살았던 날들>에는 죽음과 관련한 이스라엘 민족들의 다양한 관습을 소개합니다. 예를 들면 이 책의 서문에 해당하는 ‘아즈라엘-손안의 생명과 죽음’에서는 죽음의 천사 아즈라엘이라는 존재를 이야기합니다. 유대 사람들은 아즈라엘은 한 손에 검을 쥐고 목숨을 노리는 사람들 주변을 서성인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환자에게 다른 이름을 붙여 아즈라엘을 속이려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장례식에 참석했더라도 집에 곧장 가지 않고 다른 장소에 들러서 죽음을 떼어놓는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글을 엘자를 비롯하여 장례식을 의뢰한 사람들의 사연을 통하여 죽음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정리하는데, 뒤에서는 자신의 장례식을 생전에 치른 미리암의 사연을 비롯하여 죽고 싶지 않았던 모세에 관한 이야기, 그녀의 조국 이스라엘에 관한 이야기를 거쳐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로 마무리합니다.
이 책에서는 죽음에 대한 유대인들의 생각과 관습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책을 읽다가 표시를 해둔 부분을 몇 곳 소개합니다. 히브리어로 묘지는 베트 아하임(Beit ahH’aym)이라고 하는데 ‘생명의 집’ 혹은 ‘살아있는 자들의 집’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이는 죽음을 부정하려는 의미가 아니라, 죽음이 그곳에 뻔히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이 그의 승리이 징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리고 보면 유대인들은 죽음에 대하여 아주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또한 유대인들의 건배 구호는 레하임(LeH’ayim)인데 ‘삶을 위하여’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건배를 할 때마다 질병을 조롱하자는 뜻이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유대 전통에 따르면 사람이 죽으면 매장되는 순간까지 고인의 시신 가까이에 초를 켜두어야 한다는데, 이는 아직 살아 있는 영혼의 존재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람이 죽으면 관에 담겨 장례식장을 떠날 때까지 촛불과 향불이 끊어지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14살이 되던해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향불을 꺼뜨리지 않으려고 밤새 애썼던 기억이 납니다. 요즈음의 장례식장에서는 자정이 되기 전에 상주들이 장례식장을 정리하고 잠을 청하는 분위기라고 하는데 촛불과 향불이 끊이지 않게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유대교에서는 사후세계에 대한 분명하게 정리된 바가 없다고 합니다. 유대교에서 나온 기독교가 사후세계와 부활을 강조하는 것과는 다른 점입니다. 유대인들이 토라라고 하는 모세오경에는 죽은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스올(shéol)이라는 곳이 언급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곳이 어디인지는 분명치 않다는 것입니다. 스올이라는 단어는 ‘질문’을 의미하는 어근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죽음에는 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만이 남게 된다는 뜻일까요?
앞서 미리암의 사례가 사전에 장례식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처럼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죽음을 수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한 것은 우리네 생각과는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옛날 어른들은 나이가 들면 자신이 입을 수의를 미리 장만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죽음을 수용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