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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여학생 ㅣ 다자이 오사무 컬렉션 3
다자이 오사무 지음, 전규태 옮김 / 열림원 / 2014년 10월
평점 :
1월에 다녀온 일본근대문학기행에서 언급되었던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읽었습니다만, 얼마 전에 읽은 야기사와 사토시의 <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에서 여주인공 다카코씨가 읽었다는 ‘여학생’을 읽어보았습니다. ‘여학생’은 동명의 소설집에 실려 있는 중편소설입니다. <여학생>은 14편의 중단편소설들을 모은 책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14편의 소설의 화자가 모두 여성이라는 점입니다. 100엔짜리 화폐가 화자인 단편 ‘화폐’의 경우에도 여성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성인 작가가 여성을 화자로 삼은 것은 그만큼 여성의 심리를 꿰뚫고 있지 않으면 여성독자들의 호응을 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남성 독자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여성의 시각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가 않기 때문에 긴가민가하게 될 것 같기도 합니다. 결국은 14명의 여성을 통하여 다양한 여성들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실격>에서도 짚었습니다만, 이 책에 실린 화자들은 대체적으로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가 원만치가 않은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작품 ‘등롱’의 경우 “말을 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나를 믿으려 들지 않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나를 경계하고 있으니까요.(9쪽)”라고 시작하는데, 사람들 사이에 믿음을 주는 일도 상호적인 것이라서 내가 상대를 믿어줘야 상대도 나를 믿어주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결국 화자는 상대를 믿지 못한다는 느낌을 심어주었던 것이겠지요. 뿐만 아니라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려는 노력보다는 자신의 선입견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상대로부터 오해를 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표제작인 ‘여학생’의 화자는 감정의 기복이 심한 듯합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데 문제는 책의 내용에 감정을 이입하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나는 책에 쓰인 것들에 지탱하며 살고 있다. 한 권의 책을 읽다 보면 금세 그 책에 골몰하게 되어, 신뢰하고 동화되고 공감하면서 거기에 내 삶을 얹어버리고야 만다. 또 다른 책을 읽으면 순식간에 그 책에 동화돼버린다. 남의 생각을 도둑질하여 내 것으로 슬그머니 고쳐내는 재능은 나의 유일한 특기다.(34쪽)” 비판적 책읽기가 필요하지 싶습니다.
이야기 중에는 <퀴리 부인>, 나가이 가후의 <묵동 기담>, 이탈리아 작가 에드몬드 데아미치스의 소설 <쿠오레>, 프랑스 작가 조제프 케셀의 소설 <메꽃> 등을 인용하고 있는데 <메꽃>은 아직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나가이 가후의 <묵동기담>에 대하여 “내용은 결코 못마땅하거나 불쾌하지 않았지만 작가의 거들먹거리는 꼴이 군데군데 눈에 띄어, 마음에 들지 않고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이다.(65쪽)”라고 적고 있는 것은 작가가 화자의 입을 빌어 슬쩍 비꼬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살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또 모진 마음을 먹고 순간 자살해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되면 ‘아아, 조금만 더 살았더라면 알게 될 것을, 조금만 더 커서 어른이 되면 자연히 알게 될 인데…….’하고 아쉬워하곤 한다.(74쪽)”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작가는 스스로 삶을 마치는 선택을 한 것이니 언행이 일치하지 않은 오류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율배반적이라는 것이지요.
세 번째 작품 ‘벚꽃잎과 마술피리’는 언젠가 한번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자매 간의 사랑이 진하게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단편 ‘지요조’에 한국인이 등장하는데, 길을 묻는 화자에게 길안내를 하는 장면입니다. “그는 부자연스러운 일본어로 열심히 설명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설명은 혼고(本鄕)의 가스가초에 가는 길 안내였습니다. 얘기를 들으면서, 그분이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만, 그 때문에 나는 한결 더 고맙다는 느낌이 들어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일본 사람은 알고 있으면서도 귀찮으니까 그저 모른다고 지나쳐버리곤 하는데, 이 한국인은 잘 모르는데도 내게 어떻게든 뭔가를 가르쳐주고 싶어 진땀을 마구 흘려가면서 열심히 알려주려고 있으니까요.(168쪽)” 어찌되었건 다자이 오사무는 한국인들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지 않았었구나 싶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벚꽃잎과 마술피리’에서 도고제독의 일본 해군이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일거에 격멸하는 격전을 벌이는 중이라고 표현한 반면, ‘12월 8일’에서는 전후 일본에 주둔한 미군에 대한 불편한 시각도 읽을 수 있습니다. “짐승 같이 아둔한 미국 군대가 이 다소곳하고 아름다운 일본 국토를 어름어름 걸어 다닌다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못 견디겠다. 이 신성한 땅을 한 치라도 밟는다면 녀석들의 다리는 썪어 문드러지리라(219쪽)” 이런 시각은 군국주의 일본에 대한 지지를 나타내는 듯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