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으로 가는 길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윤석헌 옮김 / 레모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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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화두로 삼고 있는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라고 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2021년에 발표된 <기억으로 가는 길>은 파트릭 모디아노의 서른 번째 소설입니다. 파트릭 모디아노는 기억의 예술을 통해 불가해한 인간의 운명을 소환하고 독일 점령기 프랑스의 현실을 드러냈다는 찬사와 함께 201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옮긴이의 말에서 망각이라는 거대한 흰 종이 앞에서, 반쯤 지워진 단어들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이 바로 소설가의 사명일 것입니다.”라고 한 작가의 말을 인용한 것을 보면, 모디아노 역시 기억과 망각을 화두로 삼고 있는 모양입니다.


화자인 보스망스는 슈브뢰즈 계곡을 지나 독토르퀴르젠 가에 있는 오퇴유라는 곳에 있는 아파트에 관한 기억을 반복해서 이야기합니다. 어렸을 적 살았던 적이 있고, 15년 뒤에 찾아간 적이 있으며 다시 50년이 흐른 시점에 옛 기억을 되살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옛 기억을 회상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 점에 관하여 장소에 대한 그의 기억과 정밀지도가 다른 까닭은 아마도 그가 생의 여러 시기에 그 지역에 여러 번 머물렀으며, 기산이 거리를 단축시켰기 때문이리라.(18)”라고 설명합니다.


보스망스가 어렸을 적에 겪었던 일을 세밀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일부러 기억에서 몰아내려는 노력의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보스망스가 어렸을 적이 살던 오퇴유의 아파트에서 벌어진 모종의 사건에 이어 경찰의 수색에 이르기까지의 광경을 목격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이 보스망스를 찾아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래된 옛날의 기억을 되살리는 방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했다. () 다른 이에게는 하찮아 보일 법한 디테일 하나면 충분했다. 바로 그것, 디테일. ‘생각이라는 단어는 도무지 적합하지 않았다. 너무 거창하다. () 일관성이 없어 보이는 디테일이 하얀 종이에 쌓여갈수록, 훗날 그가 상황을 밝혀낼 기회가 더 많아질 것이다. 그는 그렇게 확신했다. 쓸모없어 보인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었다.(12-13)”


작가가 <기억으로 가는 길>에서 기억과 망각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렸을 적의 기억으로부터 소환된 무엇 때문이라고 합니다. 작가는 일곱 살이 되던 해, 순회공연을 하는 어머니가 친구집에 동생과 함께 맡겨 살았고, 몇 해 뒤에는 공립학교의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주말에는 동생과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동생이 갑자기 죽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작가에게는 어린 시절이 끝나는 사건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친구집에서 동생과 함께 지낼 무렵에는 수상한 사라들이 밤낮으로 오가는 낯설고 무서운 분위기를 <기억으로 가는 길>에 담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작가는 저는 제 어린 시절의 몇 가지 사건들이 나중에 제가 쓸 책의 기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작가에게 있어 기억으로 가는 길은 향수에 젖어 지난날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몽유병자처럼 살아온 과거를 이해하겠다는 욕망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고통스러운 여정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살아온 날들을 정리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예 태어났을 때부터의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합니다. 직접 겪어서 기억하고 있거나 들어서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바탕으로 써야하겠습니다만, 세월이 흐르면서 기억이 희미해진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겪은 일들은 기억형성이 잘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만 20여년 전에 시작한 누리사랑방에 한 주일 동안 있었던 일들을 간단하게 요약하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그런 기록을 바탕으로 잊혀진 기억을 다시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억을 담아내는 방식은 살아오면서 거처했던 공간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적어가고 있어서 경관기행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만, 아직도 현업을 이어가고 있고, 책읽고 독후감 쓰기를 비롯하여 다녀온 해외여행의 기록을 정리하는 일이 적지 않아 경관기행이 지지부진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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