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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밀 이삭처럼 - 고흐, 살다 그리다 쓰다 ㅣ 열다
빈센트 반 고흐 지음, 황종민 옮김 / 열림원 / 2024년 11월
평점 :
‘고흐, 살다 그리다 쓰다’라는 부제가 달린 제목이 눈길을 끌어 읽게 된 책입니다. 그런데 막상 읽기 시작하자 고흐가 쓴 편지 가운데 골라낸 글들을 짜깁기 한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글들을 묶고 있는 제목들, ‘1. 열정과 희망의 밀알을 품다, 2. 미술과 자연의 밀 이삭을 틔우다, 3. 사랑과 죽음의 밀밭에 서다’를 보면 그림에 대한 열정을 가지게 된 계기에서부터 실행에 옮기는 과정 그리고 그림을 그리면서 느끼는 감정을 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그림그리기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그림을 어떻게 팔아야 할 것인가 등 현실적인 고민도 다루고 있어서 그와 같은 대목이 주제와 어떻게 부합하는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고흐의 편지들을 묶어낸 <반 고흐, 영혼의 편지; https://blog.naver.com/neuro412/221891524633>와 <반 고흐, 영혼의 편지2; https://blog.naver.com/neuro412/221893112125>를 이미 읽었기 때문에 <싱싱한 밀 이삭처럼>에 나오는 글들이 익숙할 것이라고 짐작했지만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옮긴이가 <고흐의 편지를 우리말로 옮길 기회를 마련해주어 출판사대표에게 감사하다고 언급하였기 때문에 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만, 어떠한 원전을 우리말로 옮겼는지도 궁금해졌습니다. 옮긴이가 독일어를 전공했다고 해서입니다. 누리망의 자료를 찾아보면, 반 고흐는 1886년까지 거의 모든 편지를 네덜란드어로 썼고, 그 이후부터는 거의 항상 프랑스어로 썼다고 합니다.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의 비율은 대략 2:1이었습니다.
편지 역시 쓴 이의 주관에 따라 쓰여지기 때문에 편지의 내용이 사실일 것이라는 믿음도 편견일 수 있습니다. 옮긴이에 따르면 고흐를 치료한 가셰 박사에 관해서도 고흐 역시 초기에는 ‘가셰 박사는 절대 믿어서는 안될 것 같다. 첫눈에 박사는 나보다 더 아파 보인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곧 ‘준비된 친구이자 새 형제 같은 존재’라고 호의를 나타냈다고 합니다. 심지어 가셰 박사는 고흐이 병을 잘못 진단하고 그림을 선물로 달라고 부탁하여 고흐를 착취하였고, 궁극적으로는 죽음으로 이끈 위선자라는 연구결과도 소개합니다.
옮긴이가 뽑은 대목 가운데 인상적인 대목을 꼽아보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나는 그림을 배운 적이 없어서 다행이다.(109쪽)”이라는 글에 이어 화판을 놓고 풍경을 바라보면 자연이 나에게 말을 걸었고, 자연이 내게 이야기한 내용을 내가 속기로 받아썼음을 깨닫는다고 했습니다. 자연을 보고 느낀 바를 붓가는대로 그려냈다는 설명입니다. 고흐가 기존의 화법에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표현방식을 창조해냈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당시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그림이었기 때문에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세월이 흐른 뒤에 새로운 사조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연을 오랫동안 열심히 관찰한 뒤에야 비로서 확신이 생긴다. 위대한 거장이 더없이 감동적으로 그린 걸작은 삶과 현실 자체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신념이다. 삶과 현실을 깊이 파고들어 탐색해야만 영원히 사실로 존재하는 확실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112쪽)”는 설명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평온하고 규칙적인 삶이 반드시 필요하다.(126쪽)’라는 대목이 있고, ‘화가는 색뿐만 아니라, 희생과 극기와 비애로 그림을 그린다.(137쪽)’라는 대목도 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인기를 끌던 일본 화가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일본 화가들에게서 부러운 점은 이들의 작품에서는 모든 것이 매우 선명하다는 것이다. 칙칙하거나 서둘러 그린 듯한 작품이 전혀 없다. 이들의 작업은 호흡처럼 단순하다. 조끼의 단추를 끼우듯 손쉽게 몇 번 쓱쓱 붓을 놀려 인물을 그린다.(178쪽)’라고 했는데, 처음 보는 사조에 대한 관심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아마도 죽는 것은 사는 것만큼 어렵지 않을 것이다.(254쪽)’라는 대목은 그의 말년에 정신적 혼란 속에서 적은 글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고 느꼈는지 공감이 가면서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우리네 속담을 기억했어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