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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부르크 이야기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8
고골리 지음, 조주관 옮김 / 민음사 / 2002년 9월
평점 :
지금 읽고 있는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가 눈에 띈 고골의 <뻬제르부르그 이야기>를 먼저 읽었습니다.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1809~1852)은 요즈음 전란에 휩싸여 있는 우크라이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1935년부터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작품 활동을 했는데, 우크라이나의 민담에 등장하는 다양한 귀신과 정령에 관한 이야기를 작품에 녹여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고골은 러시아제국의 농노제도를 비롯하여 부패하고 타락한 관료제도를 비판하는 작품을 썼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고골의 <외투>를 읽고 러시아 작가들은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라고 선언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그의 작품들은 후배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이야기한 <외투>를 비롯하여 <코>, <광인 일기>, <초상화> 그리고 <네프스키 거리> 등 다섯 작품이 <뻬쩨르부르그 이야기>에 실려 있습니다. 책 이름을 <뻬쩨르부르그 이야기>라고 한 까닭은 책에 실려 있는 다섯 작품이 모두 뻬제르부르그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뻬제르부르그는 당시 러시아제국의 수도였습니다. 지금은 상트 페테르부르크(Санкт-Петербург)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뻬쩨르부르그 이야기>는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이야기>와 흡사한 구조입니다.
안타깝게도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아직 가보지 않아서 이야기에 등장하는 장소나 건물 등이 낯설었습니다. 책을 읽을 때 배경이 되는 장소가 가본 곳일 경우에는 책을 읽을 때 집중도 잘 되고 이해도 쉽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섯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현실과 환상이 뒤섞여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코>에서는 8급 관리 꼬발표프 소령이 코가 자고났더니 사라졌을 뿐 아니라 이발사 이반 야꼬블레비치가 아침식사로 먹으려는 빵에 끼워져 있다거나, 코가 아예 사람처럼 행세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우리 몸에서 어느 한 부위가 사라지면 모양새가 우스워지게 됩니다. 특히 코는 얼굴을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코가 사라지게 되면 크게 눈에 띄지 않을 것 같지만 이상한 모습을 하게 됩니다. 코가 없는 대표적 인물로는 조앤 롤링의 <해포터> 연작에 등장하는 볼드모트가 코가 없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작품 <외투>는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고골의 작품 가운데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낡은 외투로 겨울을 나야하는 처지인 아까끼는 우여곡절 끝에 새 외투를 장만하게 됩니다. 새외투를 장만한 뒤에 초대받은 만찬에 참석했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 강도를 만나 외투를 빼앗기게 됩니다. 억울한 마음에 경찰에 신고도 하고, 경찰이 무관심하자 서장, 그리고 고위층에 외투를 찾아달라고 청탁을 넣어보지만 무시만 당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정신착란 상태에 빠진 아까끼는 죽음을 맞고 말았습니다. 한이 맺힌 아까끼는 유령이 되어 거리를 배회하다가 사람들의 외투를 강탈하게 됩니다.
세 번째 이야기 <광인 일기>는 9급 관리인 뽀쁘시리친이 국장의 딸을 연모하다가 정신착란 상태에 빠져 자신이 스페인 국왕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야기는 모두 20편의 일기를 통하여 뽀쁘시리친의 정신상태가 무너지는 과정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앞의 두 작품에서처럼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충분히 있음직한 이야기였다는 생각입니다.
네 번째 이야기 <초상화>는 가난한 화가 차르뜨꼬프가 미술상에서 사들인 노인의 초상화로 인하여 궁핍한 생활에서 탈출하게 되지만 화가로서의 재능이 따라서 사라지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초상화에 깃들인 악마성이 여러 사람의 운명을 뒤바꾸어놓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이야기 <네프스끼 거리>는 <뻬쩨르부르그 이야기>의 종합완결편이라고 하겠습니다. 19세기 말 러시아제국의 수도 뻬쩨르부르그에 살고 있던 보통 사람들의 삶을 무겁지 않게 보여주었습니다. <뻬쩨르부르그 이야기>에서 고골은 무너져가는 러시아제국의 보통사람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는 생각입니다. 언젠가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에도 가볼 기회가 있겠습니다만, 이 책에 등장하는 풍경은 아마도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