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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의 철학
라르스 스벤젠 지음, 이세진 옮김 / 청미 / 2019년 10월
평점 :
70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근력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걷는 것만으로는 빠지는 근육을 채울 수 없다고 해서입니다. 운동을 도와주는 선생님은 수업 때마다 어느 부위에 힘이 들어가는지 느껴지는지 묻습니다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감각이 무딘 탓인가 봅니다.
감각이 무딘 것은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젊었을 적에 미국에서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을 떠나 만리 이국에서 생활하는 만큼 한국에서 오신 분들이 자주 모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내 그 모임에서 빠지기로 했습니다. 그 모임에 참석하는 것도, 순서가 되어 모임을 주관하는 것도 부담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 모임에서 빠지기로 했다고 해서 외롭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외롭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외로운 상황을 이해해보기 위하여 <외로움의 철학>을 읽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앞으로 남은 생에서 외로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잘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구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외로움에는 여러 가지 정의가 있지만, “고통스럽거나 슬픈 느낌, 자신이 고립되었거나 혼자라는 지각, 자신이 타인들과 가깝지 못하다는 지각” 등의 공통점이 있다.(23쪽)라고 합니다. 사실 외로움의 정의에 공통적으로 포함되는 느낌을 경험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고통스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그런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외로움은 고질적 외로움, 상황적 외로움, 일시적 외로움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합니다. 고질적 외로움은 타인과의 유대가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에 고통스러워하는 경우라고 합니다. 상황적 외로움은 가까운 친구나 가족과의 사별, 연인과의 이별, 자녀의 독립 등 인생의 변화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일시적 외로움은 혼자이건 다중 속에 있건 상황과 무관하게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외로움으로 원인은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혼자라서 외롭다는 생각은 개인적 성향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혼자이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외롭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에밀 시오랑은 글쓰기의 순간을 “지금 이 순간, 나는 혼자다.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으랴? 이보다 강렬한 행복은 없거늘. 그렇다, 고독에 귀 기울이는 행복은 침묵의 힘을 받아 한층 더 불어난다.(33쪽)”라고 적었습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혼자 있을 때에만 집필이 가능했던 모양입니다. 『고독한 글쓰기』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고 합니다. “글쓰기의 고독, 그 고독 없이는 글이 나오지 않거나 써야 할 것을 찾느라 흐트러지고 창백해진다. (…) 책을 쓰는 사람은 항상 타인과 분리에 싸여 있어야 한다. 그것은 일종의 고독이다. 저자의 고독, 글쓰기의 고독.(185쪽)” 문학작품을 쓰는 작가의 경우에는 이야기를 창조해야 하므로 특히 환경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많은 자료를 정리해야 하는 글을 쓸 때도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 하지만 굳이 고독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습니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것도 개인적인 성향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외로움을 호소한다는 것은 인간의 기본 욕구가 충족되지 못해서 괴롭다고 호소하는 것이다.”라고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외로움의 고통은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다고 인식하는데서 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각자가 충족되기를 원하는 욕구의 수준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목표 수준을 낮게 잡으면 쉽게 달성할 수 있어 만족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달성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수준의 목표를 세우면 당연히 실망을 하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서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좌절감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타인의 시선을 피하기 위하여 자신을 고립시키게 되고 외로움이 깊어질 것입니다. 자신이 가진 능력의 범위에서 삶을 즐길 수 있다면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저자 역시 말미에서 “우리는 자기 안에 머무르는 법을 배움으로써 외로움을 줄일 수 있다. 그러면 여러분은 타자의 인정에 그렇게까지 목숨을 걸지 않으면서도 타자들을 찾아 나서고 그들에게 자기를 열어놓을 수 있다.(208쪽)”라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