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
비프케 로렌츠 지음, 서유리 옮김 / 레드박스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평범한 사람들은 누구나 살면서 저지른(?) 끔찍한 일을 두어 가지씩은 가지고 있을 듯합니다. 물론 저 역시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이 헤아릴 수조차 없기도 합니다.


<당신의 기억을 지워드립니다>는 어렸을 적 저질렀던 철없는 짓 때문에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는 여성이 우연한 기회에 과거를 지우고 시작한 새로운 삶이 사실은 겉보기에만 그럴 듯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지워낸 기억을 복원한다는 이야기입니다.


10학년 때 동급생들의 우상이던 남학생 모리츠 리히텐베르크와 관계를 가지는 장면이 공개되면서 우리의 사랑스러운 여주인공 샤를로타 마이바하는 친구들로부터 우스운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때의 충격은 그녀의 삶을 삐딱하게 이끌게 되었던 모양입니다. 다니던 대학도 때려치우고 대학가의 선술집 드링크스&모어에서 일용직으로 근근이 살아가면서도 순간적인 쾌락을 추구하면서 자유롭게 살아갑니다. 자문회사에서 잘나가던 팀이 어느 날 회사를 때려치우고 차린 가게인데, 팀과 샤를로타는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선선히 도와주는 사이입니다.


샤를로타의 고교 동창회가 열린다는 기별이 온 뒤에 모리츠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사단이었습니다. 어렸을 때의 끔찍한 사건 뒤로 접촉이 없던 모리츠가 나타나 관심을 표한 것부터 이상했던 것인데 동창회에서 보자는 말에 이끌린 샤를로타는 동창회에 갔다가 그 옛날의 사건보다 더 끔찍한 사건을 겪게 된 것입니다. 그런 샤를로타를 데리러 온 것도 팀이었습니다.


갈까말까 하다가 동창회에 참석하기로 한 샤를로타를 데려다 주는 길에 팀이 한 말을 새겨둘만 합니다. “내 생각에 행복은 늘 오늘에 달린 거 같아. 어제나 내일이 아니라 오직 오늘이 가장 중요해.(66)” 이 말은 샤를로타의 바뀐 인생에 모르는 사람으로 등장하는 팀에게 뭔가 꺼림칙한 느낌을 남겨 샤를로타와의 만남으로 이어지는 꼬투리가 됩니다.


동창회에서의 끔찍한 사건이 있은 뒤에 우연히 주머니에서 뉴라이프 퍼스널 매니지먼트 사의 명함을 발견한 샤를로타가 인생을 바꿔볼 요량으로 찾아갔다가 시원한 답을 듣지 못하고 나오다가 엘리자라고 하는 여성으로부터 과거의 끔찍한 기억을 지워버림으로써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사실 이 부분은 많이 허황한 점이 많습니다. 샤를로타의 기억을 지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관련된 사람들 모두가 샤를로타의 과거를 잊어버린다는 것인데 과연 가능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엄청난 일이 이루어지는데 샤를로타의 부담은 전혀 없다는 것도 이상합니다. 읽어가면서 예상하기로는 이 부분은 꿈이었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뒤에 기억을 복원하는 작업을 엘리자 없이 샤를로타와 몇몇 친구들이 기계를 작동하게 된다는 설정도 설득력이 없어 보입니다.

샤를로타가 끔찍한 기억을 지우고 마주한 새로운 인생은 고난의 연속입니다. 바로 모리츠와이 결혼식을 불과 몇 시간 앞둔 시점이었던 것입니다. 샤를로타 본인은 지운 기억을 모두 알고 있는 것도 이상하고, 기억을 지운 뒤에 일어난 일을 전혀 모른다는 설정도 황당한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위한 장치라고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는 모리츠가 멋있어 보였지만, 막상 결혼을 해보니 맞지 않는 점이 숱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고용주와 피고용주의 입장에서 티격태격했던 팀이 바뀐 삶에서는 모리츠의 상사가 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일이 그리되고 보니 무심한 듯했던 팀이 얼마나 자상했었는지 새삼 깨닫게 되고 바뀐 인생을 되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지워버리고 싶은 끔찍한 사건으로 인하여 인생이 달라진 바가 있다면, 그 또한 소중한 삶의 한 부분으로 기억해야 하지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