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증.감정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3
W. G. 제발트 지음, 배수아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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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 솔닛이 <길 잃기 안내서;  https://blog.naver.com/neuro412/223302392453>에서 언급한 것을 읽고 찾아본 결과 <현기증>은 프랑스작가 프랑크 틸리에의 소설이 있고, W.G. 제발트의 <현기증,감정들>이 있었습니다. 대출 중이던 <현기증> 대신 <현기증, 감정들>을 먼저 읽기로 했습니다.


<현기증, 감정들>에서는 독특한 점을 몇 가지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이 책은 두 개의 짧은 이야기와 두 개의 긴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짧은 이야기는 <사랑에 대하여><적과 흑>의 저자인 스탕달과 <변신><심판>의 저자인 프란츠 카프카의 이탈리아 기행에 관한 내용이며, 두 개의 긴 여행은 작가의 여행기인데 외국에서는 오스트리아의 빈과 북이탈리아를 여행한 이야기를, ‘귀향에서는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유년 시절과 소년 시절을 보냈던 고향을 몇 십 년 만에 방문하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세 사람의 여행은 시간적으로 연관이 있습니다. 스탕달의 이탈리아 여행은 1813, 카프타의 이탈리아 여행은 1813, 그리고 작가의 이탈리아 여행은 2013년에 각각 이루어졌습니다. <현기증, 감정들>이라는 제목은 스탕달의 여행에서 마렝고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를 찾았을 때, ‘예전에 한 버도 느껴보지 못했던 모종의 현기증, 어떤 광적인 감정이 그를 엄습했다.(21)’라는 대목과 연관이 있는 듯했습니다.


작가의 여행기를 읽다보면 여행지의 풍경을 아주 면밀하게 관찰하여 기록했다는 점과 관련 자료를 인용하여 여행지와 관련된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베네치아를 방문했을 때 총독관저에 딸려있는 감옥에 자코모 카사노바가 수감되었다가 탈옥했다는 사실을 카사노바 본인이 출간한 책을 인용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카사노바 나의 편력2; 파리의 지붕 밑에서>에 나오는 것 같습니다. 조만간 찾아 읽어볼 예정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저는 베네치아를 두 번 구경했습니다만, 베네치아에서 잠을 자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작가가 베네치아에서 묵었던 모양입니다. “이 도시에서 잠이 깨는 것은 다른 도시에서와는 다르다. 하루가 정적 속에서 밝아오기 때문이다. 그 정적을 깨고 틈입하는 것은 단지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 금속 블라인드를 걷어올리는 소리, 그리고 비둘기들이 날개를 퍼덕이는 소리뿐이다.(63)” , 프랑크푸르트 등 대도시에서는 자동차의 소음 속에서 잠을 깨기 때문에 놀라기 일쑤인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작가는 특별히 미리 정해놓고 여행지를 돌아다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사실 낯선 도시에 갔을 때 어느 식당에서 한끼를 때울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요즈음에는 잘 먹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낯선 일이겠습니다만. “나는 낯선 도시에서 식사를 할 만한 식당을 어떻게 찾아야하는지 모른다. 일단 내가 너무 까다로워서 몇 시간이고 거리와 골목을 돌아다녀도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고, 그렇게 헤매다닌 끝에 대개 아무 생각 없이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서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환경에서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음식을 먹게 되어버리는 탓이다(77)”라고 적었습니다. 장고 뒤에 악수를 둔다는 바둑의 속설대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에서 만나는 독특한 점 가운데 하나는 다양한 사진 자료입니다. 사진은 물론 그림, 신문, 심지어는 영수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상자료를 활용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자료들이 여행에서 일어난 일을 증명하는 역할 이외에도 여행을 설명하는 자료가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고향을 찾아가는 여정을 읽다보면 오래전의 일들을 어쩌면 그렇게도 잘 기억하고 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도 어쩌다 생각이 났을 때 어렸을 적에 겪은 일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만, 이제는 큰 틀만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고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기억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행을 기록하는 전혀 새로운 방식을 공부하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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