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 지음, 윤진 옮김 / 엘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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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들어간 기억이란 단어에 끌려 읽게 되었습니다. 사실 기억한다는 사실은 누구에게 말하지 않는다면 은밀할 수밖에 없는 현상인데 굳이 가장 은밀한이라는 수식을 붙였는지 궁금했습니다. 이 책의 원제목이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La plus secrète mémoire des Hommes)>이나 과연 어떤 기억이 가장 은밀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습니다.


책을 열자마자 로베르토 볼라뇨의 소설 <야만스러운 탐정들(Los Detectives Salvajes)>의 한 대목이 소개됩니다. 세상에 나온 책이 어떤 과정을 밟게 되는가에 대한 작가적 추론입니다. 작품이 공개되면 한동안 비평이 나오고 비평이 사라진 뒤에는 독자들이 작품을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독자들이 사라져도 작품은 혼자 계속 길을 가는데, 다른 비평이 오고 다른 독자들이 나오는 과정이 계속 이어지다가 궁극적으로는 작품이 홀로 무한한 여정을 이어가다가 어느 날 죽는다는 것. 그 대목에서 로베르토 볼라뇨는 세상의 모든 것이 죽듯이, 언젠가 태양이 꺼지듯이, 그리고 지구가, 그리고 태양계가, 그리고 은하계가, 그리고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이 꺼지듯이.”라고 설명한 것입니다.


이 책은 모두 세 개의 책으로 구성이 되었습니다. 첫 번째 책에서는 화자인 세네갈 출신의 작가지망생 디에간이 T.C. 엘리만이라는 작가가 발표한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라는 소설이 아프리카 흑인의 걸작! 프랑스에서 본 적이 없는 책! 그로 인해 논쟁이, 프랑스인들만이 그 비밀과 맛을 알고 있는 문학적 논쟁이 일어났다라는 평을 받았다는 사실만 남겨졌을 뿐 책도 저자도 세상에서 사라지고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작가와 소설을 뒤쫓는 과정이 소개됩니다.


두 번째 책에서는 화자가 바뀌는데 식민통치를 받던 시절의 엘리만 부모 세대의 유년 시절의 이야기, 엘리만이 파리에 도착해서 책을 출간하기까지의 과정, 표절 논란이 제기된 후에 문단에서 사라진 엘리만의 행보 등이 펼쳐집니다. 두 번째 책의 화자는 엘리만의 여동생으로 밝혀진 시가 D.였습니다. 중간에 엘리만의 어머니로 화자가 바뀌기도 합니다. 세 번째 책에서는 다시 디에간이 화자가 됩니다. 첫 번째 책에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고향 세네갈로 잠시 귀국한 디에간은 세네갈의 민중정치에 휘말렸다가 빠져나와 엘리만을 찾는 여정을 마무리하기 위하여 그가 태어난 마을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엘리만이 자신에게 남겨둔 편지를 받게 됩니다.


화자가 바뀌고 당연히 등장인물이 바뀌는 과정에서 세 가지 이야기를 연결하는 고리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아서 혼란스러웠습니다. 또한 등장인물들이 프랑스에서 네덜란드로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서는 엘리만이 숙부라고 생각했던 우세누 쿠마흐가 신비로운 능력을 가진 마술사였고, 그의 피를 물려받은 엘리만 역시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만듭니다.


결과적으로 저자가 끌어온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이 꺼지듯이사라진 책은 엘리만의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였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아주 복잡하고 짐작에 불과하지만 충격적일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책을 읽어가면서 새겨두었으면 하는 대목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 책의 2부 여름 일기의 시작부분입니다. “일기. 내가 널 쓰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가 나를 얼마나 궁핍하게 만들었는지 말하기 위해서다. 위대한 작품들은 우리를 궁핍하게 만든다. 영원히 그래야 한다. 위대한 작품들은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가진 것을 앗아간다. 위대한 작품들을 읽고 나면 우리는 늘 벌거벗게 된다. 더 풍요로워지지만, 가진 것을 빼앗겨서 풍요롭다.(51)” 이 대목은 제가 몇 달 전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한 이유를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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