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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일하고 있는 사무실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었습니다. 내놓은 책은 많지 않았습니다만 언젠가 들여다보니 누군가 내놓은 책들이 있었습니다. 작은 도서관 만들기에 동참하는 동료들이 생겨 기뻤습니다. 그들이 내놓은 책들 가운데 처음 읽은 책이 정이현 작가의 <너는 모른다>입니다.
5월의 어느 일요일 오전 10시 강가에 놀러온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 셋이서 강가에 떠밀려온 남성의 사체를 발견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변사체가 등장했다고 하니 일단은 범죄의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이야기는 2008년 2월 24일 방배동 서래마을의 한 가정으로 이어집니다. 이 가정은 재혼 가정입니다. 무역업을 한다는 김상호와 대만출신 화교인 진옥영 부부, 부부가 낳은 딸 유지, 그리고 김상호가 전처와의 사이에서 얻은 맏딸 은성과 아들 혜성 등이 이들 가족의 일원입니다. 열한 살인 유지는 바이올린 영재이고, 스무 살인 혜성은 함께 살고 있지만 스물네 살인 대학생인 은성은 학교 앞에 방을 얻어 따로 살고 있다고 합니다.
눈발이 흩날리는 이날은 일요일이었습니다. 김상호는 골프장으로 진옥영은 대전 친정에 다녀오겠다고 했지만 사실은 대전이 아니라 대만으로 출국한 것이었습니다, 혜성은 누이 은성이 자살소동을 벌인다해서 은성의 집에 갔다가 여자 친구를 만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유지가 사라진 것입니다.
유지의 실종으로 느슨하게 엮여있던 이들 가족들의 관계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빈틈이 없는 옥영은 속내를 드러내는 법이 없는 것과는 달리 전처 미숙은 북받치는 감정을 다스리는 법이 없었습니다. 사소한 일로 시작한 다툼이 격렬하게 펼쳐지곤 했습니다. 김상호는 그런 강미숙이 미치도록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작가의 김상호의 그런 심리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밍밍한 기내식을 연이어 세 끼 받아먹고 있는 장거리 비행자가 어마어마하게 달고 맵고 신 맛을 그리워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 것이다.(63쪽)”
옛 남자친구를 만나러 대만에 갔던 진옥영은 급히 귀국합니다. 사라진 유지의 행방이 묘연하지만 김상호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탐정을 고용해서 유지의 행적을 뒤쫓습니다. 한편 은성은 철없던 시절 친구들과 작당하여 유지를 납치하려는 계획을 세웠던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진옥영은 결혼 전에 만나던 남자친구 밍과의 관계가 미심쩍은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김상호는 사업과 관련하여 의심이 가는 사람이 있고, 그래서 점점 사건을 미궁에 빠트립니다.
김상호가 하는 사업 내용은 후반에 가서야 드러나는데, 우리나라에서 장기이식을 받아야 하는 사람의 의뢰를 받아서 중국에서 이식 장기를 구하는 사업이었습니다. 당연히 우리나라나 중국 모두 장기매매는 불법입니다.
강력사건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분위기로 흘러가던 유지의 실종사건은 누리망에서 알게 된 사람을 찾아 나섰다가 길이 엇갈리면서 행적이 묘연해졌던 것입니다. 결국 7월에 가서야 유지의 소재가 밝혀집니다. 그간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는 모르나 유지가 집을 나선지 이틀 만에 청주와 조치원 사이의 국도변에서 발견되어 응급수술을 받는 등 생명이 오가는 극한의 상태에 빠졌다가 겨우 목숨을 구한 상황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태입니다.
가족의 실종이라는 심각한 사태가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이들이 가족이 맞는지 알쏭달쏭합니다. <너는 모른다>라는 제목처럼 이들 가족은 서로에 대하여 아는 것이라고는 피상적인 것에 불과하고 속내는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어 남만도 못한 것 같습니다. 가정의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는 듯하여 정말 이럴 수가 있을까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