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0 - 갇힌 여인 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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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르다보니 마르셀 주변에서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듯합니다. 마르셀은 스완의 죽음이 커다란 충격이었다고 적었습니다. 오데트와 스완의 사랑 이야기가 이 책의 초반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한 만큼 스완은 마르셀의 삶에서 중요한 배역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스완의라는 표현은 소유격을 떠나서 운명이 스완을 위해 특별히 보낸 죽음을 뜻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죽음에 대한 프루스트의 생각이 독특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전속력으로 모든 방향에서 달려오는 죽음, 이런저런 사람을 향해 운명이 보낸 능동적인 죽음,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것을 볼 수 있는 감각이 없다라고 적은 것을 보면 죽음이 예측불가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스완이 신장암으로 사망한 듯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이런 죽음은 빠른 속도로 달려와서, 이를테면 스완 같은 사람의 옆구리에 암덩어리를 심어놓고는 다른 곳으로 작업하러 떠났다가, 외과의사가 수술을 마치고 나면 다시 암 덩어리를 심기 위해 돌아온다.(11)” 프루스트 시절 만해도 수술이 암의 유일한 치료법이었을 터인데 초기단계를 지난 암은 수술로 제거한다고 해도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암시하는 표현입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0>갇힌 여인2부입니다. 알베르틴과 함께 보낸 시간들 가운데 그녀가 자신과 함께 살면서도 다른 여성과 성애를 즐기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혹이 커져가는 시간을 기록하였습니다. 물론 이야기 전반에 등장하는 살롱에서의 이야깃거리도 빠지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는 샤를뤼스의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은, ‘갇힌 여인에 앞서 소돔과 고모라에서 다루었던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와 연결하려는 뜻으로 보였습니다.


알베르틴의 의심스러운 행적으로 괴로워하던 마르셀은 결국 이별을 통보합니다. 사랑이 식었을 때 이별을 통보하는 것도 어려운 법입니다. 마르셀은 대놓고 말했군요. “당신도 알다시피, 이곳에서 보내는 삶이 당신을 따분하게 하고 있으니 헤어지는 편이 나아요. 또 가장 멋진 이별을 가능한 빨리 이루어지는 법이니, 내가 느낄 그 커다란 슬픔을 단축하기 위해서라도, 오늘 밤 작별 인사를 하고 내일 아침 나를 만날 필요도 없이 내가 자는 동안 그냥 떠나 주었으면 좋겠어요.(262)”


분명해서 좋기는 하지만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알베르틴의 행적을 뒤쫓으면서 알베르틴이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던 마르셀이 선수를 친 셈이 됐습니다. ‘갇힌 여인의 끝부분에서 알베르틴은 마르셀의 말에 따라 집을 나가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갇힌 여인의 화두는 질투입니다. 질투는 사랑하는 감정의 극단적인 표현이라는 생각입니다. 문제는 사랑하는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고 의심하는데서 시작되는 경우에는 진실을 왜곡하는 까닭에 비극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갇힌 여인에서 고조되었던 알베르틴과의 갈등은 알베르틴의 사랑을 자신만이 소유할 수 없고 그것이 여성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와 알베르틴의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출발한 것이었습니다.


마르셀이 알베르틴에게 이별을 통보하였던 것은 사랑의 극단적인 표현은 아니었을까요? 알베르틴은 마르셀의 이별통보가 진심에서 나온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마르셀의 곁을 순순히 떠났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진심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사단은 알베르틴의 모호한 행적에서 출발한 것이고 보면, 알베르틴 역시 진심을 다해서 마르셀을 사랑한 것일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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