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술사
H.W. NOEL BAHK 지음 / 우주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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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외상을 입은 뒤에 불안장애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외상후 (정신적) 압박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입니다. 전쟁, 자연재해, 교통사고, 화재, 타인이나 자신을 향한 폭력 등으로 인하여 정신적 충격이 심한 경우입니다. 환자는 외상과 관련된 사항들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이며, 신체적 이상증상이 나타나기도 하며 과민반응 등 정신적으로도 이상증상을 보이게 됩니다. 환자입장에서는 원인이 된 상황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기억이 신의 선물이라면 망각은 신의 축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억하는 일이 너무 많아도 삶이 피폐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래된 기억들은 점차 잊혀져가는 것이 신의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충격의 강도가 컸던 경험은 잊어버리기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기억을 지울 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적지 않은 듯합니다.


H.W. NOEL BAHK<기억술사>는 원하는 기억을 지워주는 치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직은 임상실험단계로 설정이 되어있습니다만, 기억영상 재현(MIR; Memory Image Reconstruction)과 기억수정술(MAP, Memory Alteration Procedure)이 개발되면서 가능해졌습니다. 물론 오래된 기억이나 많은 양의 기억을 지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서 사례에 따라서 세 가지 시술 가운데 하나를 권장한다고 합니다. 기억의 망각(DEM, Deletion of an Episodic Memory), 무관심(NEER, Negative Effect Emotion Reduction) 그리고 왜곡(Replacement of an Episodic Memory) 등입니다.


<기억술사>에서는 서울 강남의 압구정역 근처에 있는 기억클리닉에서 이 시술을 시행하는 것으로 설정했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전 남친과의 사이에 있었던 사건을 지우러 온 여성으로부터 아내와 딸을 캐나다로 유학 보낸 뒤에 오랜 세월을 기러기 아빠로 버텨왔지만 정작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은 남성, 말기에 접어든 췌장암으로 고통이 심한 남성은 자신이 췌장암으로 진단 받은 순간을 지우고 싶어 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기억클리닉을 찾아오는 사람들 가운데는 연쇄살인범도 있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범행에 대한 기억을 지우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례의 경우는 수사기관과 공조하기도 하는데,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기억클리닉에 와서 자신이 저지른 범행을 담당의사에게 보여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건지는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동성의 친구와 서로 호감을 느끼게 된 남자아이가 어머니의 손에 이끌여와서는 기억을 지우게 되었지만 그 결과는 썩 좋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사례를 다룬 것은 최근들이 성적 소수자들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도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려서 외국으로 입양되었던 젊은 여성이 고국에 온 김에 부모를 찾아보려 시도한 끝에 어머니와 연결이 되었지만, 어머니로부터 만남을 거절당한 채 부모를 찾아보려던 과거의 생각을 지우려 찾아온 사례가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보면 사람들마다 저마다의 이유로 지우고 싶은 과거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지웠으면 하는 기억이 있나 짚어보았지만, 특별하게 지우고 싶은 기억은 아직까지 떠오르는 것이 없습니다.


기억클리닉에서 기억을 지우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일단 정보처리기술을 획기적인 발전에 따라 착안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아직까지는 기억을 지우거나 인위적으로 왜곡시키는 것이 가능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억이라는 것이 개인만의 것일수도 있지만, 당사자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사이에 공유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혼자서만 기억을 지우거나 왜곡시킨다고 해서 끝나는 일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어떻든 흥미로운 소재로 이야기를 잘 버무려 놓은 것 같습니다. 지하철에서이 책을 읽다가 내려야 할 역을 그만 지나치는 일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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