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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일리아스 - 트로이의 노래 ㅣ 한빛비즈 교양툰 22
동사원형 지음 / 한빛비즈 / 2023년 2월
평점 :
<만화로 보는 일리아스>는 그야말로 구름에 달 가듯 단숨에 읽어 내렸습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제가 참여하고 있는 고전독서회에서 읽은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야기의 흐름에 익숙한 까닭도 있겠습니다만, 이야기가 잘 요약되어 있으며,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잘 정리되어 있어서였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고전독서회에서 내놓은 첫 번째 질문이 <일리아스>를 읽은 소감을 말하는 것이었는데, ‘한 마디로 지루한 느낌이 들었다’라고 답했습니다. 정말 지루했습니다. 전투과정에서 누구와 누가 붙어서 누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반복되다보니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이고, 왜 인간의 전쟁에 신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판을 좌지우지 하는 것도 못마땅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신들이 인간과 별다를 것이 없어보여서 실망이었던 것 같습니다.
<만화로 보는 일리아스>에서는 신의 비중을 많이 줄여 인간의 문제로 좁혀놓은 것도 만화를 보는데 몰일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만화는 읽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라고 하는 게 옳다는 생각입니다.) 워낙이는 <일리아스>가 이야기꾼이 청중에게 들려주는 형식이라서 운률을 맞추고 고저장단을 맞추어 읽어야 하겠습니다만, 우리말로 옮겨진 이야기에서는 그런 느낌이 충분히 살아나지 않는 것도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화는 총천연색으로 그려진 그림을 통하여 장면마다의 분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는 장점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또 하나는 원전의 이야기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번역서에서 주석을 달아놓은 것처럼, 혹은 서사시를 무성영화 시절 변사가 상황을 설명하여 청중의 이해를 돕는 것처럼 설명을 달아놓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일리아스>에 대한 설명을 첫 번째 이야기로 삼았는데, 그중에서도 <일리아스>의 주제가 ‘분노’라고 적시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건곤일척의 전쟁이 ‘분노’ 때문에 발발하였다는 설명이 제일 그럴 듯하다는 생각입니다. 문제는 그 분노의 발단이 펠레우스라는 인간과 테티스라는 님프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의 분노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 파리스가 젊은피의 욕망으로 아프로디테를 황금사과의 주인으로 정한 잘못이 있다고 하더라고, 작가는 파리스를 ‘트로이 전쟁의 원흉’으로 지목한 것이 옳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파리스와의 약속의 대가로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와 인연을 맺도록 한 것이 결국 전쟁이 발발하게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트로이전쟁의 원인(遠因)은 불화의 여신 에리스이며, 근인(近因)은 헬레네를 파리스에게 소개해준 아프로디테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트로이전쟁은 올림포스의 신들의 장난에 인간들이 놀아난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신들의 오락거리에서 전쟁이 시작되었고, 전쟁 중에서도 올림포스의 신들이 각각 그리스와 트로이 편에 서서 전쟁에 개입하였던 것입니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목숨이 오가는 절체절명의 전쟁상황이지만 불멸의 존재인 신들에게 있어 전쟁은 한낱 오락거리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그리스 사람들은 왜 올림포스의 신들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화를 자초하였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파리스를 ‘트로이 전쟁의 원흉’으로 지목한 것처럼 여러 상황에 대한 설명이 작가 나름의 기준에 따라 분명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실은 이런 의견, 저런 의견이 있다는 정도로 모호한 입장을 취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런 입장은 작가의 철학에 맞지 않았던 가 봅니다. 어떻든 <일리아스>의 등장인물은 물론전개되는 상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구성하고 있어서 요즈음 젊은 독자들이 어렵다는 고전 <일리아스>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