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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클럽
이원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3월
평점 :
뒷표지에 적혀있는 “너는 기억하고 있을까. 늘 궁금했고 그걸 좀 물러보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라는 구절에 끌려 읽게 되었습니다. 무언가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에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보다’라고 탓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까마귀는 아주 영리한 새라고 들었는데 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까마귀 탓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땠거나 이원석 작가의 <까마귀 클럽>에는 모두 표제작 ‘까마귀 클럽’을 포함하여 모두 7편의 단편이 담겨있습니다. 아무래도 표제작이고 저의 관심을 끌었던 ‘까마귀 클럽’ 이야기를 먼저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까마귀 클럽은 죽음과 여행이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는 다른 단편들과는 결이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제작으로 택한 이유는 분명치가 않은 것 같습니다.
‘까마귀 클럽’은 제 추측과는 달리 까마귀와 기억력에 관한 속설과는 무관하게 까마귀의 소란스러움을 비유한 것으로 보입니다. 트위터를 통하여 [화 못 내는 사람. 억울하면 눈물부터 나오는 사람. 이제 더는 참고 살 수 없다고 다짐한 사람.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함께 믿고 함께 분노할 사람을 찾습니다. 당신을 노력형 분노스터디 <까마귀 클럽>에 초대합니다.]하는 모집공고에 응모한 주인공을 포함하여 모두 4명의 회원이 분노하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기울이는 각고의 노력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책을 읽다보니 최근에 방영되어 화제를 모았던 연속극 <해방일지>가 생각났습니다. 이러저런 이유로 직원들과 교류가 원활하지 않은 네 명이 모여 해방클럽을 만들고 각자 일지를 써 공유하는 방식의 동호회 활동을 해나가는 모습이 바로 까마귀 클럽과 겹쳐보였다는 생각입니다.
이야기는 ‘내게 그날은 이런 문장들고 기억되고 있다’로 시작되어 앞서 적은 트위터 글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끝은 ‘내게 오늘은 또 이런 문장으로 기억될 것이다’라고 마무리가 되지만 어떤 문장인지는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까마귀 클럽’을 제외한 다른 단편들은 여행과 죽음이 주요 소재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그 여행이라는 것을 훌쩍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수고한 당신, 떠나라!’라는 광고문구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던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일에 치어 하루하루를 근근히 살고 있는 직장인들에게는 꿈일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기 위하여 심사숙고를 하는 모습을 <까마귀 클럽>의 단편들에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남녀가 함께 떠나는 여행 이야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행을 두고 남자와 여자는 쉽게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지나치게 작위적인 설정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작가가 여행과 죽음을 엮어 이야기를 풀어낸 것에 대하여 문학평론가 이소는 ‘여행은 삶의 은유가 아니라 삶을 감당하느라 망각해버린 죽음을 은유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합니다. 이어서 ‘죽음에 대한 사유만이 우리에게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는 법이니, 여행의 궁극적 목표는 끝을 경험해보는 것이고, 여행은 작은 종결이나 작은 죽음을 삶에 선사한다.(265쪽)’라고 합니다. 제 경우는 여행을 떠남에 있어 죽음과 같은 거창한 의미를 부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여행을 떠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까마귀 클럽>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평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첫 번째 이야기 ‘없는 사람’에서는 빌라에 살고 있는 주인공은 몇 시간 뒤에 떠날 여행을 두고 연인과 다투는 와중에 누군가로부터 ‘차를 빼달라’는 전화를 받습니다. 자신에게 할당된 구역에 주차하고 있는 차를 빼달라는 무례한 요구를 하는 사람은 그 장소로 떨어져 세상을 하직하려고 합니다. 전화를 받은 주인공은 상대를 말리다가 옥상을 찾아가지만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을 만나지 못합니다. 그런가 하면 예정된 여행을 두고 연인과 싸우던 가운데 회사 상사로부터 연락을 받고 문상을 모시고 가기로 하고 여행을 없었던 것으로 정리해버립니다. 그렇다면 일찍 출근을 하느라 차를 빼게 되면 자살을 예정하고 있는 사람에게 투신의 기회를 주는 셈이지만, 그에 대한 대책 역시 여행과 마찬가지로 대안을 두지않습니다. 즉 관계당국에 연락을 해서 자살을 막도록 하는 구체적인 조치가 필요하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