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그림 - 존 버거와 이브 버거의 편지
존 버거.이브 버거 지음, 신해경 옮김 / 열화당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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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의 책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무엇을 배우게 됩니다. 영국 출신의 미술비평가, 사진이론가, 소설가, 다큐멘터리 작가, 사회비평가 등으로 활약한 존 버거는 중년 무렵부터는 프랑스 동부, 알프스 산록에 있는 시골 마을에 살면서 농사일과 글쓰기를 했습니다. 2013년 아내 베벌 리가 사망한 뒤로는 파리 외곽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어떤 그림>을 같이 꾸민 이브 버거는 존 버거의 아들로 아버지의 시골집에 살면서 작품활동을 한 화가입니다.


<어떤 그림>은 존 버거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2015-16년 사이에 아들 이브 버거와 주고받은 편지 묶음입니다. ‘그림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과 나름대로의 답변이 오고 가는데, 주제에 맞춤한 그림들을 인용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아들이 쓴 서문 격의 글 당신 차례야!’는 시골집 헛간에 탁구대를 들이고 부자간에 탁구시합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승부는 우리가 탁구를 치는 진짜 이유의 피상적인 결과일 뿐이었다. 우리를 움직이게 한 것은 우리 운을 어디까지 시험해 볼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주고받는 과정을 얼마나 우아한 한 편의 연극으로 만들 수 있는지 보려는 의지였다. 물론 아주 드물었지만, 때때로 그런 일이 일어났고, 그러면 모든 것이 착착 맞아떨어졌다. 그 리듬, 그 움직임과 몸짓, 그 타이밍,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나 조화로운 단 한 번의 연극이 되었다. 우리는 탁구를 칠 때와 똑같은 기쁨과 희망을 품고 그림을 다루었다.”라고 적은 것을 보면 부자 간에 호흡이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탁구가 부자를 통하게 만드는 장면은 영화 <어바웃 타임>이 있습니다.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는 능력을 가진 아버지와 아들이 탁구경기를 통하여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 <정어리 매장식>은 사순절의 마지막날 벌어지는 정어리 축제를 그린 것으로 거대한 군중이 만들어내는 떠들썩한 소리를 느낄 수 있는 그림입니다. 그런 그림에서 존 버거는 소음과 침묵이라는 대립되는 개념을 설명합니다. “우리에겐 소음과 침묵이 있구나. 소음은 설명을 덮어버리고, 침묵은 계속해서 현재를 따져 묻는 질문들을 내놓지. 둘 다 온전히 살아 있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아(41)”라고 정리하는 것을 보면, 중용을 지킬 필요가 있다는 설명으로 이해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 그림을 눈물과도 연관을 짓고 있습니다. “사육제 군중은 자기들 세상을 모욕하며 프란시스코를 부둥켜안고 그의 웃음을 나누고 있어. 그리고 잠시 후면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지. 웃음과 상실이 모두 눈물을 불러온다는 것이 흥미롭구나(48)” 사실 기쁠 때나 슬플 때 모두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림이란 무언인가?’라는 주제에 대하여 보이지 않는 것들의 복원이라는 화두를 아들에게 건넸습니다. 이에 대하여 이브는 이렇게 답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복원은 정말로 그림이 짊어진 거대한 배낭 같아요. 끔찍하게 무거운 짐이지만, 이상하게도 화가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해요. 경계 너머 보기, 아니 그보다는 외양을 뚫고 내면 보기, 그것을 계속 추구해 나갈 만한 가치가 있는 바람이 아닐까요? 시간을 그 뼛속까지 드러내겠다는 목표를 잡는다면, 일생의 헌신 정도는 치러야 할 사소한 대가 같아야. 그림은 충족시킬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희밍이고여. 가망 없는 희망이죠?(65)” 화가라는 직업을 선택한 사람의 사명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 같습니다.


그림과 서예의 기원이 천상에 있되 그 성취는 인간의 것이라는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천상시각의 관계를 인간촉각의 관계와 비유하면서 이브는 눈을 감고 아버지의 등을 떠올린다고 말합니다. 아버지의 등을 떠올리다보면 그 등을 주무르던 손이 그 장면을 선명하게 만든다고 하였습니다. 이 대목을 읽다보니 어렸을 적에 아버님의 팔 다리를 주물러드리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느낌이 손 끝에도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화가와 미술평론가가 주고받는 그림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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