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의 품격
신노 다케시 지음, 양억관 옮김 / 윌북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일본의 여행사에서 일하는 남성이 나리타 공항에서 근무하면서 겪은 일들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인천 공항에 가보면 여행사들이 번듯한 사무실도 없이 공항 귀퉁이에 마련된 탁자에서 여행객들을 안내하는 인솔자가 탑승권을 건네고 인원을 확인해서 수속을 안내하는 정도입니다만, 일본의 여행사는 공항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규모가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엔도씨는 상사의 눈밖에 나는 바람에 공항으로 쫓겨난 상황입니다. 그렇게 공항에 근무하는 사람을 아포양이라고 한다는데, 여행업계에서 공항을 APO로 줄여 부르는 데서 온 멸칭이라고 합니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공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기대했던 것처럼 공항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연들이 적절하게 소개되고, 공항 근무하는 분들의 애환이 잘 그려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국제선 공항의 환승로를 통하여 밀항을 하는 수법도 소개되는데 조직이 개입하지 않으면 가능할 것 같지 않았습니다. 하긴 세상에는 믿을 수 없는 일을 해치우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가하면 해외여행을 나갔다가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도 있을 여행객을 보호하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아주 인간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객의 처지를 십분 생각하는 일본 회사원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아들, 딸과 함께 홍콩으로 가는 부부는 여권을 챙겨오지 않은 아들을 공항에 남겨두고 비행기를 타는 장면을 읽으면서 황당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저 역시 꼭 필요한 것을 집에 두고 공항에 간 적이 있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그렇게 남은 아이의 기분을 챙겨주기 위하여 애를 쓰는 엔도씨의 모습에 감동이었습니다. 특히 최근에 만나기 시작한 연인과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까지도 감수하면서 말입니다.


자정에 연인과 만나기로 한 엔도씨는 11시반에 나리타 공항에서 벌어지는 유도등 점검작업을 소년에게 보여주기로 합니다. 알랭 드 보통이 쓴 <공항에서 일주일을>에서도 언급되지 않은 일이라서 저도 흥미로웠습니다. 그 대목을 소개합니다. “하루의 업무를 마친 공항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푸르스름한 스포트라이트가 반짝거리는 가운데 긴 활주로는 어둠의 바닥에 잠겨 있었다. 청초한 아름다움이라고나 할까. 그 풍경만으로 나름 사람의 눈길을 끌 만했다. () 너무도 갑작스러웠다. 콘서트의 오프닝처럼 눈부신 라이트가 일제히 켜졌다. 주위의 숲과 뚜렷한 대조를 보이며 활주로가 빛 속에 떠올랐다. () 일직선으로 뻗은 세 줄기 오렌지색 라이트. 그 주변을 둘러싼 녹색, 청색, 보라색 유도등이 보석을 뿌려놓은 듯 흩어져 있었다. 그저 아름다웠다.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해주기위한 장치는 아니었지만 그 아름다움에서 예술성마저 느꼈다. 아니, 이것은 예술이다!(167)”


심야에 비행기를 타러 인천공항에 나간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만, 공항의 밤풍경을 왠지 모르게 쓸쓸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둠이 내려 적막강산 같은 활주로 풍경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가 하면 엔도씨가 몇 년을 사귄 연인과 헤어지고 새롭게 만나기 시작한 고가씨와 다시 헤어지는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여성 특유의 자아찾기 병으로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느라 여념이 없는 고가씨가 영국으로 떠나는 바람에 헤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회적 풍조가 확산되는 데 언론이 한 몫을 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특별한 일로 주목을 받으면 특별하지 않은 다수의 사람들이 특별한 누군가를 따라가는 현상이 생기는 것입니다. 자아찾기라는 멋진 말로 포장을 하지만 일종의 허세에 불과한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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