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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격언집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ㅣ 잘난 척 인문학
김대웅.임경민 지음 / 노마드 / 2021년 5월
평점 :
저도 가끔 우리말 속담을 끌어와 글을 시작하곤 합니다만, 번역서를 읽다보면 라틴어 격언을 흔히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말로 쓴 책에서도 라틴어 격언을 만나는 경우가 드물지가 않습니다. 그럴 때는 있어보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라틴어가 유럽어들의 원형이라는 생각과 고전을 많이 읽었구나 싶은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쓰임새가 있는 라틴어 격언집을 만났습니다. 제가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은 생각이었는지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이라는 부제가 달려있습니다. 우리말 속담사전이 있는 것처럼 서양에도 라틴어 격언집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라틴어 격언집은 에라스뮈스가 만든 <아디지아>라고 합니다.
에라스뮈스는 1,500년에 그리스․로마의 철학자, 작가, 정치가 등의 명언을 모아 <고전 격언집(Collectanea Adagiorum)>을 선보였다고 합니다.1,508년에는 항목을 3천개로 늘리고, 주석을 단 논평과 단상을 덧붙인 <수천 개의 격언집(Adagiorum Chiliades)>라는 제목으로 출간했고, 증보가 이어져 최종적으로는 4,151개의 항목을 담아냈습니다.
<라틴어 격언집>은 로버트 블랜드가 1814년에 펴낸 <에라스뮈스의 아다지아에서 주로 고른 격언집>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골라 뽑아 우리말로 번역한 책입니다. 모두 262개의 라틴어 격언들을 ‘나를 부끄럽게 하는 것들’ 등 열 두 개의 주제 아래 분류해놓았습니다. 대부분의 라틴어 격언들의 출처와 그 의미, 라틴어 격언과 관련된 유럽 각국의 속담을 같이 소개해놓았습니다. 번역자들은 라틴어 격언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 우리말 속담을 주석에 달아놓기도 하였습니다.
라틴어 격언을 본디의 라틴어 의미에 따라 직역을 해놓아서 그런지 그 의미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도 없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모래땅에 씨뿌리기(Harenae mandas semina)'라는 경구는 실행 불가능한 일에 헛되이 많은 노력을 쏟아 붓는 사람이나 아무런 보답도 기대할 수 없는 배은망덕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을 빗대 표현한 것이라는 설명을 읽어야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 사이에서 늙은이(Inter Pueros Senex)'라는 격언은 애늙은이라는 우리말이 어울릴까 싶었습니다만, 실제보다 더 똑똑하고 학식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허울만 그럴듯한 사람을 빗댄 것이라고 합니다. 애늙은이라는 우리말이 나이보다 더 의젓한 어린이를 의미하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유럽의 고사를 모르면 이해가 불가능한 것들도 없지 않습니다. 이런 격언을 끌어다 쓰면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무슨 소리?”라고 할 것니다.
하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것들도 많습니다. 제 경우는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나,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더 나은 곳은 없다(In omnibus requiem quaesivi, et nusquam inveni nisi in angulo cum libro)’라는 격언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독일의 수사이자 영성 저술가인 토마스 아켐피스의 말이라고 합니다. 토마스 아켐피스는 <그리스도를 본받아>로 만나보았습니다. 영어권에서는 성서 다음으로 많이 읽혀 제2의 복음서로 칭송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주당들은 자주 쓰는 말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제 술을 마실 때가 되었다(Nunc est bibendum)’이라는 말은 호라티우스의 <송가>에 나오는 구절인데 <클레오파트라 송가>라고도 한답니다. 클레오파트라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로마로 전해진 뒤에 지어진 것으로 여왕의 패배와 죽음에 대한 축배를 들자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본문에 있는 262개의 라틴어 격언 이외에도 12개의 주제를 적어놓은 쪽에 대표적인 라틴어 격언이 설명 없이 소개되었고, 책의 말미에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라틴어 관용구와 격언’이 덤으로 더해졌습니다. 그야말로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그런 쓸모있는 책읽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