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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거스미스 ㅣ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3월
평점 :
박찬욱 감독의 2016년작 영화 <아가씨>는 2018년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는 등 여러 비평가협회상에서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였다고 합니다. 제가 영화는 보지 못했습니다만, 이 작품으로 제37회 청룡영화상에서 신인여우상을 받은 김태리 배우가 출연한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을 열심히 보았던 기억은 있습니다.
마침 읽게 된 영국 작가 새라 워터스의 <핑거 스미스>가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의 원작소설이라고 해서 관심이 가게 되었습니다. 1860년대 영국의 런던의 래트 거리와 런던에서 40㎞ 떨어진 브라이어를 무대로 전개되는 ‘레즈비언 역사 스릴러’ 소설이라고 했습니다. 런던의 래트 거리는 도둑들의 소굴이었다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브라이어에 사는 젊은 아가씨 모드를 꼬여내는 결혼사기극을 준비합니다. 핑거스미스란 도둑을 의미하는 빅토리아 시대의 속어라고 합니다. 삼촌의 집필을 도와주는 세상물정 모르는 모드가 젠틀먼이라고 부르는 사기꾼 리버스에 홀려서 사랑의 도피행을 하도록 수가 지원하게 된 것입니다.
이야기의 초반에는 래트 거리에 사는 하층민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이어서 브라이어에서는 부자 삼촌과 함께 사는 아가씨를 모시는 과정을 묘사하면서 부자들의 삶을 그려냅니다. 빅토리아시대의 다양한 계층의 영국 사람들이 사는 모습, 그 속에 숨어있는 민낯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무려 832쪽에 이르는 만큼 이야기의 구조가 다양하게 변주됩니다. 변주라는 표현이 적절치 않은 것 같습니다. 전혀 예상치 않은 반전이 거듭되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그 이야기는 사기꾼들이 사전에 모의한대로 진행이 되어 모드 아가씨와 리버스는 사랑의 브라이어의 성을 빠져나가 사랑의 도피행에 오르고, 근처의 교회에서 결혼식까지 올리는데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모드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이었는데, 그 장면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을 두었던 것입니다.
당시 영국의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은 불과 얼마 전까지 아니면 지금도 어느 정신병원에선가 벌어지고 있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환자 개인의 인권을 짓밟고, 형식적인 치료로 정신과적 문제는 전혀 개선될 것 같지 않은, 그저 정신질환자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전근대적 정신의료의 전형을 보는 듯했습니다.
반전이 일어났다는 것은 사전에 독자들에게 알려진 음모와는 다른 새로운 음모가 기획되었다는 것인데, 새로운 음모를 기획한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이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신분이 몽땅 바뀌는, 그러니까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되는 셈입니다. 새로운 음모 속에는 또 다른 사연이 숨어있고, 그런 정황을 알게 된 음모의 희생양들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발버둥이 시작되고 그런 시도가 무산되는 등, 음모의 기획자들의 뜻대로 전개되는 양상입니다. 이 정도가 되면 반전에 새로운 반전이 생긴 셈입니다. 그리고 끝났더라면 주인공을 바꾸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상황을 다시 꼬아서 새롭게 전개시키게 됩니다. 정신병원에 갇혔던 주인공이 탈출에 성공하고 자신을 정신병원에 가두었던 범인을 뒤쫓기 시작합니다.
매사는 사필귀정이라고 했던가요. 결국 음모를 꾸민 장본인들이 살해되거나 처형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서로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레즈비언 취향을 살리게 된다는 결말에 이르는 것 같습니다. 모드의 삼촌을 비롯하여 브라이어의 저택에 모여드는 사람들은 요즘 말로 19금 이야기책을 만들어 은밀하게 유통시키는 사람들이었다는 사실도 특이했습니다. 역시 어느 사회에서나 성에 관한 관심은 은밀하면서도 뿌리가 깊었던 모양입니다.
다만 이야기의 전개가 늘어지는 느낌이라서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간결하면서도 빠르게 가져갈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만, 중언부언하는 느낌도 없지 않아 아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