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 - 르네상스 천재들의 치열한 각축전과 그들의 삶
로스 킹 지음, 신영화 옮김 / 도토리하우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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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에서 시스티나 경당을 구경한 것이 벌써 4년이 지났습니다. 바티칸 측은 천장화는 사진을 찍을 수 없도록 금하고 있습니다. 천장화가 그려진 예배당에 들어갔더니 걸음을 옮길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하나 같이 목을 한껏 뒤로 꺾어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겨우 자리를 잡고 고개를 꺾어 천장화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천장화는 생각보다 작았고, 천장이 너무 높아서 그림의 세밀한 점을 구별할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시스티나 성당을 보지 않고서는, 한 사람의 인간이 해낼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상상할 수가 없다”라고 했던 괴테의 심중을 알 듯 말 듯합니다.

 

 

<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을 읽은 것은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대성당의 천장화를 그리게 된 과정을 담았다고 해서였습니다. 스스로를 ‘르네상스 시대 덕후’라고 주장하는 김지윤 박사는 ‘천정화를 둘러싼 거대한 르네상스 시대의 대하드라마’라고 이 책의 성격을 정의합니다. 나아가 저자인 로스 킹의 작품들 가운데 <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은 ‘치밀한 고증을 거친 역사적 사실의 역동적인 배치는 이 작품에서 가장 빛을 발한다.(5쪽)’라고 정의하였습니다.

 

 

바티칸은 14세기 중반부터 각종 미사와 의전을 마조레 경당에서 치렀는데, 15세기 들어 건물이 노후화되면서 212대 교황 식스투스 4세(Sixtus PP. IV; 재위 1471~1484년)는 마조레 성당을 헐고 새 경당을 지었다. 공사는 1473년에 시작하여 1483년 성모승천대축일에 축성되었다. 경당의 크기는 길이 40.23m 너비 13.41m로 구약성서에 기록된 솔로몬의 예루살렘 성전의 치수에 따른 것이다. 이는 바티칸이 예루살렘을 대신하는 새로운 성전으로 자리매김했음을 의미한다고 했다. 새로 지은 경당은 교황의 이름을 따서 시스티나 경당(Capella Sistina)이라고 했습니다.

 

 

시스티나 경당 내부의 프레스코 벽화는 1480년, 교황청과의 껄끄러운 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으로 라파엘로의 스승 페루지노, 미켈란젤로를 가르쳤던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산드로 보티첼리, 루카 시뇨렐리 등 로렌초 데 메디치가 후원하던 피렌체 화가들을 보내 그렸다. 모세와 예수의 생애에서 공통된 부분을 골라 남쪽과 북쪽 벽에 각각 6개, 동쪽과 서쪽에 각각 1개씩 도합 14개의 성화를 그렸다. 다만 서쪽 벽에 그려진 ‘강에서 발견된 모세’와 ‘그리스도의 탄생’은 미켈란젤로가 ‘최후의 심판’을 그리기 위하여 지워졌습니다.

 

 

시스티나 경당은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를 비롯하여 카펠라 파파리스(Capella papalis), ‘교황의 제식에 참여하는 단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예배 장소인데, 미사에는 교황을 비롯하여 추기경, 구죠 등 200여명의 고위 성직자들이라고 합니다. <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을 읽어보면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경당의 천장화를 그리게 된 배경부터 모종의 음모가 개입되었다는 주장입니다. 미켈란젤로는 그때까지 프레스코화를 그려본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제216대 교황 율리우스2세(Iulius PP. II, 재위 1503~1513년)는 미켈란젤로에게 자신의 영묘를 건설하는 일을 맡겼다가 중간에 시스티나 경당의 천장화를 그리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세상사란 참 미묘한 힘이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원래 시스티나 경당의 천정에는 파랑색으로 바탕을 칠하고 금빛별을 그려 넣었던 것인데, 1504년 건물 구조에 문제가 생겨 천정에 금이 갔고, 보수작업을 하던 중에 천장화에 손상이 가해졌다. 교황은 이참에 천장화를 새로 그리기로 하고 미켈란젤로에게 맡겼던 것입니다. 교황은 12사도를 그려달라고 주문했지만, 창세기, 예수의 조상, 예언자와 시빌라, 이뉴디와 메달리온 등에 이르기까지 장대한 내용을 반영하겠다는 미켈란젤로의 구상을 승인하여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경당의 천장화를 그리는 사이에 율리우스2세 교황은 교황청이 권한을 강화하기 위하여 베네티아 공화국, 프랑스 등과의 전쟁에 나서는 등 우여곡절이 이어졌고, 건강상의 문제까지 겹쳐 천장화 작업이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율리우스2세가 죽음을 맞기 전인 1512년 완성하여 교황의 축하미사 뒤에 일반에 공개되었습니다. 시스티나 경당의 천장화의 상세한 설명은 나무위키의 <시스티나 경당; 시스티나 경당 - 나무위키 (namu.wiki)>을 참조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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