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디의 연
로맹 가리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20년 9월
평점 :
품절


로맹 가리의 마지막 작품 <노르망디의 연>을 고른 것은 긴 꼬리를 매단 연이 노란 하늘에 떠있는 표지 그림이 독특하다는 느낌이 들어서였습니다. 물론 지난해 다녀온 노르망디에 대한 추억 한 자락도 깔려있지 싶습니다.


이야기는 클레리(Clary)라는 프랑스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노르망디에 속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오히려 벨기에에 가까운 아주 작은 마을로 보입니다. 이야기는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부모를 여의고 연을 만드는 장인 앙브루아즈 플뢰리와 함께 사는 뤼도비크의 성장소설처럼 시작합니다. 뤼도는 비상한 기억력과 뛰어난 암산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선생님들의 걱정거리가 됩니다.


열 살이 되던 해 어느 날 뤼도는 숲에서 금발의 소녀 릴리를 만나게 됩니다. 폴란드 귀족가문의 딸입니다. 두 사람을 엮은 인연의 고리가 단단했던가 봅니다. 4년의 기다림 끝에 재회하게 되면서 가까워지게 되고, 폴란드에 있는 릴리의 집을 방문하기도 합니다. 브뤼노, 한스 등과 함께 릴리를 둘러싸고 경쟁하게 됩니다.


그러는 사이에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뤼도가 사는 클레리 마을에도 독일군이 진주해옵니다. 독일군에 협력하는 프랑스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만, 드러나지 않게 독일군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도 적지 않았던가 봅니다. 뤼도 역시 기억력과 암산의 재능을 바탕으로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가하는데,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세평으로 독일군을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삼촌 앙부루아즈 플뢰리와 가까운 요리사 마르슬랭 뒤프라는 자신이 식당 클로 졸리를 지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합니다. 클로 졸리는 금세 독일군 고위층이 모이는 장소가 됩니다. 마을 사람들은 뒤프라가 독일에 부역을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뒤프라의 목표는 프랑스 요리의 영속성을 지키는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뤼도가 파리에 잠시 머물 때 만났던 쥘리 에스피노자부인은 신분을 세탁하고 독일군 고위층과 긴밀하게 접촉하면서 기밀을 빼내 뤼도에게 전합니다. 그 정보는 런던으로 보내지고...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면서 좌절과 피로가 극에 달하는 순간마다 뤼도는 폴란드에서 헤어진 릴리를 소환하곤 합니다. 꿈속에서 뤼도가 릴리에게 건네는 모르겠어. ‘희망으로 산다라는 오래된 표현이 있잖아. 그런데 난 희망이 우리로 인해 산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233)”라는 말은 독일군에 저항하던 프랑스 사람들의 절박한 심정을 나타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릴리가 한스와 폰 틸러 장군과 함께 클레리 마을에 나타났습니다. 릴리의 가족이 폴란드를 탈출해서 프랑스에 오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릴리는 뤼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선 살아남아야 했고, 내 가족을 구해야 했어..... 이해하지, 뤼도?300)” 뤼도는 릴리를 이해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마을 사람들은 릴리의 머리카락을 잘라냅니다. 전후 독일에 부역한 사람들에 대한 처벌이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노르망디의 연>을 읽다보면 당시 프랑스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독일군에 저항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지어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독일군에 부역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것은 기밀을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인 경우도 있었던가 봅니다. 실제로 독일군 내부에서도 광기의 전쟁을 멈추기 위하여 특별한 노력을 기울인 사람들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전후 프랑스에서는 부역자 처단의 광풍이 불었지만 그리 오래 가지 않았던 것은 부역의 진실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떻게 보면 부역자 처단에 앞장 선 사람들이 오히려 부역자일수도 있었지 않았을까요?


로맹 가리는 이야기를 더 잘 말할 수는 없겠기에라고 끝을 맺습니다. 로맹 가리는 이 작품을 발표하고 얼마 뒤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는 죽기 직전에 남긴 글에서 자신의 죽는 이유를 더 잘 말할 수는 없겠기에에서 찾으라 했답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나는 마침내 나를 완전히 표현했다”(431) 그러니까 <노르망디의 연>은 로맹 가리가 스스로를 완성한 작품인 것입니다. ‘노르망디의 연은 독일군에 점령된 프랑스 사람들이 띄운 희망을 이야기하려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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