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기생충 열전 - 착하거나 나쁘거나 이상하거나
서민 지음 / 을유문화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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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조국흑서라 불리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나라; https://blog.naver.com/neuro412/222083815869>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동안 수구세력의 적폐를 청산하자고 앞장섰던 분들이 보이는 행태가 비판의 대상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아니 더하는 것 같은 행태를 보면서 좌절했던 분들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진보의 탈을 쓴 사람들에게 속았다는 생각이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장 진보주의자들을 떠받드는 비이성적인 지지자들의 위세에 눌려 올곧은 소리를 내는 것조차 눈치를 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른바 진보가 위기를 맞은 순간에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나라>의 필진으로 참여하신 다섯 분들은 진정한 진보의 가치를 지켜야겠다는 사명감으로 제목소리 내기에 나섰다는 결의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 분들 가운데 서민 교수님의 <서민의 기생충 열전>을 다시 읽었습니다. 2013년에 초판이 나왔으니 꽤 오래된 책입니다. 기생충을 전공하시는 분들이 갇혀있던 자기들만의 세계의 문을 일반 대중에게 활짝 열어놓은 기념비적인 책이라는 점을 새삼 일깨우는 책읽기였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해도 봄 가을에는 기생충검사를 하고 기생충약을 먹었습니다. 의과대학에 다니던 70년대에도 무의촌 봉사를 가면 기생충검사를 하고 약을 나누어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시절이 있었는데, 언젠가부터는 기생충 이야기가 시나브로 사라져버렸습니다. 기생충을 전공하시는 분들은 요즈음에는 무엇을 연구하시나 궁금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기생충의 세계에서도 과거의 주연들이 퇴진하고 새로운 주연들이 등장하는 큰 변화가 생겼을 뿐이었습니다. 우리와 함께하는 기생충들은 여전히 있었던 것입니다. 2020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기생충>에서 다룬 인간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서민의 기생충 열전>은 기생충의 정체를 설명하고, 우리 몸 곳곳에서 서식(?)하고 있는 기생충들을 소개합니다. 아주 쉽게 말입니다. 최근에 알레르기 질환이나 자가면역질환이 늘고 있는 것이 기생충감염이 줄어든 탓이라는 것도 틀리지 않았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기생충학을 깊이 공부한 것은 아닙니다만, 병리학과 진단검사의학을 전공한 저도 기생충을 볼 기회가 꽤 되었습니다. 기생충이 문제를 일으켜 수술을 받은 조직 안에서 기생충이나 충란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어가다보니 서민교수님이 경험하신 장모세선충 사례가 저와 연결될 뻔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1993년에 경험하셨다는 남원에서 확인된 장모세선충의 사례입니다. 제가 남원의료원 병리과에 부임한 1994년에 이 기생충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조금만 일찍 남원의료원에 갔더라면 그때 서민교수님을 만날 기회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최근에 어느 분이 소설 쓰시네라는 말씀으로 세인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만, 소설을 쓰는 일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것 같습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으면 쉽지 않을뿐더러, 많은 소설들이 이미 일어난 일을 토대로 써진다는 사실을 모르셨던 모양입니다. <서민의 기생충 열전>에서도 저자의 소설가적 상상력의 일면을 엿보는 대목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맹장에 사는 요충이 알을 낳으러 항문으로 이동하는 경로를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맹장에서 항문까지는 서민교수님의 말대로 1.5m인데, 맹장은 우리 몸의 오른쪽 아래에 있고, 이어지는 결장은 간과 위장이 있는 위쪽으로 돌아서 왼쪽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맹장에서 오른쪽 결장을 거치는 과정을 사람으로 치면 20m의 암벽을 등반하는 일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기생충이라고 해도 장 내용물인 이상 스스로 움직여 올라갔다고 하기 보다는 장운동에 떠밀려가는 내용물, 거칠게 말씀드리면 똥 덩어리와 함께 밀려갔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암벽등반으로 표현하신 것은 교수님의 상상력이 얼마나 풍부한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떻든 일반 독자들과의 돈독한 관계가 힘이 되어 진보의 가치를 지키는 일에 성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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