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회사의 독서동아리에서 세 번째로 읽은 책입니다. 첫해이니만큼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문학 분야의 책으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박완서 선생님의 <그 남자네 집>을 고른 분은 선생의 작품을 여럿 읽어왔기 때문에 작가에 대한 이해가 깊었습니다. 선생의 작품을 읽다보면 언젠가 읽은 것 같다는 기시감이 드는 것은 해방 이후, 6.25동란을 지나는 신산한 시절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반복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보다도 한 세대는 앞서 사신 분의 글이라서 지금은 잊혀져가는 우리말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참 좋습니다. 외래어를 섞어서 이야기를 하거나 글을 써야 먹물 들어 보인다는 생각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정겹고 예쁜 우리말을 맞게 사용하는 사람이 더 유식하다고 인정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 우리말을 익히는 길은 옛 분들이 남긴 글을 많이 읽어, 생각에 스며들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하면서, 저 역시 말을 하고, 글을 쓸 때도 외래어보다는 우리말을 찾는 노력을 강박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책읽기 동아리활동을 시작하면서 다시 느낀 점입니다만, 같은 책을 읽는 시선이 많이 다르구나 하는 것입니다. 제가 놓쳤던 부분을 짚어주는 분도 계시고, 미처 몰랐던 점에 대하여 보충설명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저도 전후세대인 만큼 전쟁의 참상은 그저 기록을 통하여 알고 있는 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철이 든 뒤의 전후 사정은 조금 알 듯도 합니다. 그러니까 북한군 치하에 있던 서울의 사정은 잘 모릅니다만, 수복 후 재건이 진행되던 때의 사회적 분위기는 조금 알 듯도 합니다.


<그 남자네 집>은 작가의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만큼, 젊은 시절과 첫 아이를 낳을 때까지의 신혼시절까지 첫사랑과의 인연을 이야기합니다. 요즈음에는 양 다리는 기본이고 여러 다리를 걸치는 것조차 거리낌이 없는 세상이 되었다고들 합니다만, 정비석 선생님의 <자유부인>이 장안의 화제가 되어 지탄을 받던 시절에 새댁시절에 첫사랑을 만나고 다녔다고 고백(?)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특히 남자는 첫사랑을 가슴에 품고, 여자는 마지막 사랑에 목을 맨다는 속설도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첫사랑에 대한 추억이 기억의 심연에 잠들어있었다는 선생의 고백이 놀랍기도 합니다.


궁금한 것은 첫사랑이 아닌 분과 결혼을 하게 된 동기에 대하여 선생은 ‘그때 난 새대가리였구나’라고 말합니다. ‘작아도 좋으니 하자 없이 탄탄하고 안전한 집에서 알콩달콩 새끼 까고 살고 싶었다.(101쪽)’는 것입니다. 체면을 따지면 첫사랑이 나아보이는 면이 있지만, 씀씀이는 부군이 나아보였더라는 것인데, 막상 결혼하고 속내를 알고 나서 후회하는 장면도 있습니다. 겉보기와는 다른 것이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다만 부군께서 처가 쪽을 본가만큼 챙겨주었다고 하니 나름 속이 깊은 분이었다는 생각에 그 선택이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지 싶기도 합니다. 그런 것들을 오래 살아봐야 느끼게 되는 점이라서 결론을 말하면 그 남자보다 내 남자가 낫더라는 이야기가 되는 셈인가요?


선생이 책머리에 적은 ‘그때 문학은 내 마음의 연꽃이었다. 진흙탕에서 피어난 아름다움이었고, 범속하고 따분한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는 힘이었다.(5쪽)’라는 대목을 짚은 분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신혼초 시집살이를 할 무렵이던 50년대 초반 사시던 동네에 ‘현대문학사’가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동네 구멍가게 같던 집은 물론 골목까지도 찬란해진 느낌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전후 삭막하던 시절임에도 문학이 살아있음을 천명한 셈이니, 현대문학사에 대한 지극한 헌사처럼 보이는 이 대목이 너무나도 당연해보인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먹고사는 것이 어렵던 시절에도 문학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 선조들의 뒷심 덕분에 오늘날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부흥을 일구어냈는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생기는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오랫동안 담금질을 하고 산고를 겪어야 무언가 만들 수 있는 것인데, 요즈음 세상은 도깨비 방망이를 휘둘러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세상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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