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영혼의 편지 2 반 고흐, 영혼의 편지 2
빈센트 반 고흐 지음, 박은영 옮김 / 예담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반 고흐, 영혼이 편지2>는 <반 고흐, 영혼이 편지>에 이은 기획으로 동생 테오의 소개로 브뤼셀에서 처음 만나 뜻이 통한 안톤 반 라파르트에게 보낸 편지들을 엮은 것입니다. 처음에는 거리가 있었지만 이내 서로에게서 동일한 취향과 사고방식을 발견하고는 견고하 우정을 쌓게 되었다고 합니다. 라파르트는 귀족 출신의 네덜란드 화가로 암스테르담 아카데미에서 수학하다가 파리와 브뤼셀에 체류하였지만 결국은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와 작품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그의 화풍에 대하여 HJ 하베르만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고 합니다. “그는 애써 환심을 사려 하지도 이기적이지도 않았다. 뿐만 아니라 꾸민 태도로 치장하지도 않았다. 그의 작품들이 증언하듯이, 그는 보여주어야만 할 모든 진실을 사실주의에 함몰하지 않고 진솔한 작품들을 통해 정직하게 표현하려 했다. 그는 순수한 의도로 인물화 작업만을 과감히 고집한 최초의 네덜란드 화가들 중 한 사람이었다.(8-9쪽)”


옮긴이는 1881년부터 19885년까지 고흐가 라파르트에게 보낸 53통의 편지를 이 책에 담았습니다. 편지들 사이에는 라파르트와 주고받은 편지에 관한 내용을 담아 테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가 요약되어 있습니다. 두 사람의 우정은 꽤 오래 이어져 5년에 걸쳐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하는데, 1885년에 빈센트가 라파르트에게 절교를 선언하면서 끝이 났다고 합니다. 라파르트가 암스테르담 아카데미에서 수학한 것이 바탕에 깔려있었다고 합니다. 라파르트가 고흐의 작품에 대하여 솔직한 의견을 피력했던 것에 대하여 평소에 아카데미를 경멸하던 고흐가 라파르트의 지적이 아카데미적인 시각에 매몰되어가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파르트는 고흐의 작품들을 높게 평가했다고 합니다. 라파르트는 하베르만에게 보낸 편지에서 ‘비록 빈센트의 난폭함이 결별의 원인이었지만 (…) 삶에 대한 그의 가치관은 예술과 마찬가지로 숭고하고 순수했네. 그 점에 있어서 그는 진실로 굳건했으며 아름다웠네. 그는 미치광이가 되었네 (…) 그의 광적이고 폭발적인 기질에 대해 우정보다는 존경심을, 동지애보다는 숭매감을 느꼈네(12-13쪽)’라고 적었습니다.


고흐가 라파르트와 결별을 결심하게 된 이유를 암시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라파르트, 내 생각에 자네는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가운데 점점 더 진정한 사실주의자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듯하네. 비록 아카데미에서 작업하면서 현실에 만족할 때라도 말일세. 하지만 불행한 것은 아카데미란 하나의 정부(情婦)에 불과하다는 점이네. 그것은 자네 속에서 깨어나는 진지하고 따듯하며 발전적인 사랑을 가로막지(53쪽)” 교육기관에서의 교육이라는 것이 일정한 틀 안으로 고착화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고흐는 라파르트에게 아카데미의 틀을 뛰어넘으라고 조언했던 것 같습니다. 그림들이 곁들여 있을 뿐 아니라, 그 작품을 그리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그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그림을 그리는 기법 등에 관해서도 서로 조언을 주고받은 것으로 보입니다.그런가 하면 고흐가 그림을 그리는 것 말고도 다양한 책을 읽었을 뿐 아니라 영향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에 관해서는 ‘훌륭한 데생 주제들을 발견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했다’거나, 위고가 <레미제라블>에서 묘사한 것들을 통하여 할아버지나 아버지 시대에 대하여 상상을 펼치게 된다고도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반 고흐, 영혼이 편지>에서 언급되었던 졸라의 작품에 대하여도 ‘그 책은 나로 하여금 졸라를 알게 했고 졸라의 취약한 면을 가르쳐주었다’고 한 것을 보면 딱히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것만은 아니지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졸라가 회화에 대해 그리 잘 알지 못한다고 평가한 것은 약간은 뒤끝이 있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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