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 호텔 - 시간과 공간에서의 여행
세스 노터봄 지음, 금경숙 옮김 / 뮤진트리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네덜란드 작가 세스 노터봄은 50여년에 걸친 수많은 여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9편의 소설과 여러 권의 여행서를 발표했습니다. 노터봄을 처음 만난 것은 <이스파한에서의 하룻저녁; http://blog.yes24.com/document/9337823>이었습니다. 기행소설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가진 기행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여행경험에 대하여 노터봄은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쯤에 시작된 이 여행은 내게는 언제나 쓰기, 읽기, 특히 관찰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곤 했다. 거기에서 본질은 결코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떠돌이 인생은, 아마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또한 어떤 사람이 아닌지 가르쳐준 성싶다”고 했습니다.

이 책의 서문에서 알베르토 망구엘은 ‘나는 여행 그 자체를 위해서 여행한다’라고 한 로버트 루이 스티븐슨의 말을 인용하면서 <유목민 호텔>을 읽지 않는 테가 역력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유목민 호텔>을 다 읽고 나서 “나는 노터봄이 다녀온 장소들이 내가 발견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내가 너무 늙고 생물의 위로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방문하기 어렵다고 느낀 곳들이라 기뻤다(11쪽)”라고 하였습니다.

<유목민 호텔>에는 베니스, 감비아강, 뮌헨, 아란, 사하라, 캔버라, 이스파한, 만토바, 취리히, 말리, 카나리아제도 등 11곳의 여행지에서 느낀 점과 여행지의 숙소에 관한 노터봄의 호텔 1 & 2를 비롯하여 여행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담은 ‘폴풍의 눈 안에서’ 등 14꼭지의 글을 담았습니다. 그는 “여행은 역시 우리가 배워야 하는 무엇이다. 여행이란 혼자인 동안에도 끊임없이 타인과 접촉하는 일이기 때문이다.(19쪽)”라고 여행에 대한 철학을 피력하였습니다. 여기 실린 여행기를 보면 여행지에서 작가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적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작가는 여행지에서 소소한 것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고 짚어낼 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하여 자신의 생각을 잘 비벼놓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감비아강에서 배를 타고 가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매우 공감한 대목이 있습니다. “배는 완연한 어둠 속에서 앞으로 나아간다. 전조등도 탐조등도 없고, 아무 것도 없다. (…) 누가 식당실의 문을 열어 빛 한줄기가 밖으로 빠져나오면, 위의 조타실에서 새된 고함소리가 난다. 강물이 내륙 깊숙한 곳까지 조수로 남아있을 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수로와 제방을 식별하려면 날카로운 매의 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72쪽)” 이 대목에 공감한 이유는 지난해 말에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아스완 로우댐 안에 있는 필레신전을 야간에 보기 위하여 모터보트로 들어갈 때의 분위기가 딱 이랬기 때문입니다. 멀리 깜박이는 가로등 불빛이 전부이고 어둠을 뚫고 질주하는 보트가 물속으로 빨려드는 듯한 착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이슬람지역의 새벽을 깨우는 아잔소리에 대한 생각이 저와 다른 점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새벽 다섯 시부터 알라의 닭이 울기 시작하니, 하도 시끄러워 나는 화들짝 잠에서 깬다. 기도 시간까지 지루하게 이어지는 안내방송, 끊임없이 새되게 꺾어지는 목소리는 고문인 동시에 일상적인 소리다. 이 소리를 도무지 피해갈 도리가 없다. 하루가 시작되었고, 알라는 경배받기를 원한다.(167쪽)” 제가 새벽 아잔소리를 처음 들었던 것은 세르비아의 모스타르였습니다. 유고내전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는 그곳에서 묵은 다음날 새벽에 도시를 깨우는 아잔소리에는 깊은 슬픔이 배어있는 듯했던 것입ㄴ지다.

그런가 하면 작가가 인용한 즈바르트의 <시간의 신비>의 마지막 문장, “우리가 예전에 머물렀던 곳으로 돌아가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예전에 체험했던 순간으로 돌아가는 일은 유감스럽게도 불가능하다”라는 대목은 제가 생각하고 있는 저의 삶을 정리할 때 꼭 인용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밖에도 여행에 관한 작가의 다양한 생각들은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곱씹어 볼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책읽기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