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이라는 책
알렉산다르 헤몬 지음, 이동교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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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보스니아의 모스타르를 찾았을 때, 보스니아 내전의 상처가 여전히 남아있는 모습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도시 곳곳에 무너진 집들이 남아있고, 총탄의 흔적이 그대로였습니다. 그나마 내전 당시 크로아티아군에 의하여 파괴되었던 스타리 모스트는 세계인들의 관심 덕에 복원이 되어 다행이었습니다.

보스니아 내전은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세르비아가 보스니아의 이탈을 막기 위하여 무력을 사용하면서 인종청소와 문명파괴행위가 자행된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는 세르비아군에 의하여 장기간 포위되어 있었는데, 분지 안에 들어있는 사라예보의 시가를 감시하는 세르비아 저격수에 의하여 희생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는 저격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던 사라예보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나의 삶이라는 책>은 보스니아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쓴 일종의 자서전입니다. 네 살반이 되던 1969년의 시점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여동생이 태어나던 날의 기억을 적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저 역시 네 살반이 될 무렵 막내 동생이 태어났던 것은 기억이 나는 것 같습니다. 집안 분위기 이외에 세사한 정황은 기억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가 당시 사라예보에 갇혀있던 보스니아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면, <나의 삶이라는 책>의 작가는 운 좋게도 사라예보가 포위되기 전에 미국을 방문 중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국외자의 시각으로 사라예보 사태를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성장과정에서부터 50 중반에 이르는 동안의 저자의 삶에 대한 기록을 보면 철저하게 삼자적 시각을 유지합니다. 자신을 미화하려는 것 같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만한 대목도 가감 없이 적은 것 같습니다.

책의 제목에는 묘한 사연이 숨어 있습니다. 저자는 대학시절 시와 비평을 강의하던 콜제비치교수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만남이 있었다고 합니다. 콜제비치교수의 다섯 살 난 딸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제목이 바로 ‘나의 삶이라는 책’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책은 첫 장을 쓴 것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2장부터는 인생경험을 더 쌓은 뒤에 쓸 예정이라는 것입니다. 콜제비치교수와의 인연은 보스니아 내전을 계기로 완전히 끊어졌다고 합니다. 교수가 세르비아 맹렬민족주의 단체인 세르비아 민주당의 고위당원이 되었고, 당을 이끌던 라도반 카라지키를 수행하면서 매사가 세르비아를 옹호하는 발언으로 점철되어갔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야기의 후반에서는 1살도 되지 않은 어린 딸이 비정형 기형 횡문근 종양(Atypical teratoid rhabdoid tumor; 이 책에서는 비정형 유기형 간상 종양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만, 의학용어로는 적절한 번역이라 하기 어렵습니다)에 걸려 세상을 하직하는 과정을 다루었습니다. 지식을 먼저 보내는 일은 부모로서 정신적으로도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과정을 겪으면서 느끼는 심리적 고통을 생생하게 적은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종교가 저지르는 가장 야비한 오류는 바로 고통을 무슨 깨달음이나 구원에 이르는 한 단계쯤으로 숭고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사벨의 고통과 죽음은 이사벨 본인에게도, 우리에게도, 이 세상도 아무런 이득이 되지 못했다. 이사벨의 고통이 한 게 있다면 그건 오직 아이를 죽음으로 이끈 것뿐이다. 우리는 배울 만한 교훈을 배우지 못했고 누구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경험도 얻지 못했다. 무엇보다 이사벨이 더 나은 어딘가로 날아갈 수 없을 거란 사실만 더 분명해졌다.(242쪽)”라는 대목이 오히려 인간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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