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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여행
즈느비에브 쉬레 지음, 김은정 옮김 / 작가정신 / 2000년 10월
평점 :
절판
열 살짜리 사내아이가 이야기하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 궁금해서 읽었습니다. 분홍과 푸른 색의 경계를 하얀 연기를 뿜으며 달리는 기차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혼한 엄마와 함께 사는 세 아들 가운데 막내인 또마입니다. 그런데 열 살짜리 또마는 어른들이 생각한 것보다는 훨씬 어른들의 세계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엄마가 어떤 남자와 사귀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자기의 관점에서 새 아빠가 되었으면 하는 인물도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생각에 머물지 않고 그 남자에게 엄마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여 점수를 딸 수 있도록 하는데, 세상 돌아가는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어쩌면 엄마와 주변 남자들의 직업이 기자라는 점에서 보면) 돌발 상황이 발생하여 약속을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또마는 자신의 새 아빠에 관심이 많을뿐더러 그런 경험(?) 바탕으로 부모 사이의 관계 때문에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자문을 해주기도 하더라구요. “그렇지만 너의 부모님은 이제 더 이상 한집에 살아서는 안돼. 그렇게 되면 이제 진짜 골치 아파질거야. 그러니까 너희 엄마한테 부모님들이 이혼하는 게 너한테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을 보여주도록 노력해야 돼.(23쪽)”라고 말하는 대목을 읽다보면 깜짝 놀라게 됩니다.
또마는 안데스 산맥을 횡단하는 열차를 타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어쩌면 열차 노선을 만드는 취미 때문에 여러 나라의 열차모형과 열차가 달리는 주변풍광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생긴 관심사인 것 같습니다. 안데스 산맥 횡단열차는 또마가 새 아빠 후보로 강력하게 밀고 있는 삼 아저씨와 가고 싶어 합니다.
페루기차와 산속으로 가는 여정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니, 또마가 가보고 싶어 하는 안데스 산맥 횡단열차는 혹시 페루의 쿠스코에서 마추픽추까지 가는 열차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열차는 창문이 크고, 천정이 유리로 되어 있어 하늘을 바라볼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양쪽으로 가파르게 솟아오른 산 사이에 있는 계곡을 따라 달리기 때문에 창밖의 풍경이 휙휙 지나가지만 천정의 유리창을 통해 하늘을 바라보면 마음까지 열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열차와 철도모형에 관한 또마의 관심은 대단합니다. 7살 생일에 엄마가 기차와 선로 모형을 선물로 주었던 것이 시작이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객차 두 량을 끄는 기관차와 열두 개의 선로와 교차로 하나에 불과한 기본적인 모형이었는데, 그 이후로 선물을 받을 일이 생기면 반드시 모형을 확대하는데 썼다고 합니다.
모형열차가 선로를 달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카펫 위에 누워서 코를 레일 끝에 대고 있으면, 나는 우선 아주 거대한 하얀 연기가 솟아나는 것을 본다. 그리곤 연기 사이로 범퍼에 보호막이 씌워진 V자형의 기차코가 보이기 시작한다.(59쪽)”라고 적은 것처럼 상상의 날개를 펼치는 것입니다. 아마 열차모형을 파는 가게의 뮈게 할아버지가 선로 주변의 풍광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주었기 때문에 가보지 않은 나라임에도 가본 것처럼 잘 알게 되는 모양입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여행>은 작가의 삶을 적은 자전적 소설이라고 합니다. 책에 등장하는 세 아들은 작가의 아들 이름을 그대로 붙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프랑스판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라고도 하나봅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어느새 이혼이 화제 거리도 되지 않게 되었습니다만,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프랑스 사회에서는 아이들마저도 부모의 이혼을 쉽게 받아들이는 모습인 것을 보면, 우리나라도 조만간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