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팽이의 속도로
김인선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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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만난 메디치미디어 대표님으로부터 한번 읽어보기를 권유받은 책입니다. 책을 보내주신 것도 아니지만 왠지 꼭 읽어봐야 할 것 같아서 바로 구매를 하고 읽어보기까지 나흘이 걸렸습니다. 출간된지  6일된 따끈한 책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팽이의 속도로>를 제가 지금까지 읽어온 책들과는 차원이 다른 가장 빠른 속도로 읽어낸 셈입니다.

대표님의 말씀에 따르면 글을 쓰신 김인선님은 게으를 자유, 가난할 자유를 추구하며, 책의 제목처럼 ‘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팽이의 속도로’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대표님과 책을 만들기로 약속한 김인선님은 6개월, 1년, 2년이 지나도록 원고를 건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어느 날 ‘내 필히 부채와 신세 갚아요’하는 소식을 전하고는 그만 세상을 하직하셨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팽이의 속도로>는 김인선님의 유고를 모아 묶은 책입니다. 그러니까 김인선님은 김현종대표님과의 약속을 지킨 셈입니다. 김인선님이 <샘이 깊은 물>이라는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하실 적에 쓴 ‘자유롭게 자라는 샛별초등학교 아이들’이라는 기사는 당시 ‘교과서에 실리면 좋을 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팽이의 속도로>에 담은 83꼭지의 수필은 대부분 김인선님이 삶의 마지막을 보내신 경기도 장흥에서의 일상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의 가족, 이웃, 지인, 심지어는 오가다 만난 사람들도 그의 이야기에 주연급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사람들만 출연하는 것이 아니라, 수선화, 진달래, 벚꽃 등 모두 적기에도 벅찰 정도인 꽃들, 호랑지빠귀, 올빼미, 까마귀 등의 새들 - 특히 까마귀의 경우는 김인선님이 그들의 언어를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대화가 가능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 그리고 강아지와 고라니까지 다양한 생명체가 등장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장흥이라는 특정 장소를 중심으로 하는 각각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객체들이 서로 유기적인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야기를 읽어가다 보면 장흥이라는 고장을 그려낸 커다란 그림의 조각조각을 맞추어지는 느낌이 들어 책읽기가 조바심이 날 지경입니다. 그림맞추기가 장소에 대한 2차원적인 놀이라고 한다면,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장흥이라는 장소에 대한 그림맞추기도 시계열로 확장되는 3차원적 놀이가 되는 셈입니다.

저자는 ‘나는 인생에 뚜렷한 목적이 없고, 희망이나 기대도 별로 없는 편이다’라고 대놓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무언가 세상에 특별하게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제호가 된 ‘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팽이의 속도로’라는 구절에 등장하는 달팽이도, 이고 다닐 집조차 없는 민달팽이를 닮은 삶을 뒤쫓은 것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가 남긴 글들을 이렇게 묶어서라도 세상에 남기려는 지인들의 안타까움이 오히려 글쓴이의 생각에 어긋나는 점은 없는지도 생각해볼 일입니다.

글을 읽다보면 글쓴이가 이미 도를 통한 도인의 경지를 넘어 신선의 경지에 이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눈으로 글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중얼거리며 읽게 되고, 그 문장이 혀에 착 감기는 느낌이 생깁니다. 건조하다 못해 바삭거리는 글만 써내는 저와는 달리 촉촉하면서도 달착지근하기까지 한 이런 글을 쓰려면 어떤 훈련을 거쳐야 하는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도무지 고민한 흔적을 볼 수가 없습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으니 책을 읽는 이는 알 도리가 없겠지만, 사연의 주인공은 자기 이야기임을 금세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긴 이미 고인이 되신 분께 쫓아가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니 혼자서만 끙끙 앓으면 되겠습니다. 이웃과의 불편한 관계도 적나라하게 밝혀냈을 뿐 아니라 19금 사건도 꺼리지 않은 것을 보면 글쓴이가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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