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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부진 나라, 스위스에 가다
구니마스 다카지 지음, 노시내.이덕숙 옮김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언젠가부터 여름에 되면 스위스에 가보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만년설이 덮힌 산에 오르면 더위는 까마득하게 잊을 것 같아서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니 지난달에 남프랑스를 거쳐 밀라노에서 비행기를 탈 때도 멀리서 알프스를 구경했을 뿐더러, 오래 전에 이탈리아의 스트레사에 갔을 때는 멀리서 알프스를 구경하기도 했고, 귀국할 때는 취리히에서 환승을 하기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스위스에 발자국은 남긴 셈입니다.
하지만 스위스의 진면목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다부진 나라 스위스에 가다>는 스위스를 구경하기 전에 사전공부 삼아 읽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경찰출신으로 경찰청 장관을 지낸 바 있는 구니마스 다카지씨가 스위스에서 3년간 대사로 일하면서 경험한 스위스와 스위스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스위스는 지극히 유별난 나라이다. (…)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로 말하며, (…) 프랑스인도 독일인도 이탈리아인도 아닌 스위스인에는 틀림이 없지만 (…) ‘스위스 사람’이란 스위스 어느 구석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라는 묘한 말을 서문에 적었습니다. 우리는 빌헬름 텔(우리는 영어식으로 부르는 윌리엄 텔로 알고 있습니다)이 스위스의 건국과 관련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실존인물이 아니라고 합니다. 실러가 전해오는 빌헬름 텔의 전설과 스위스 건국의 영웅담을 엮어 쓴 서사극의 영향으로 그렇게 믿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스위스에 대하여 일본사람들이 고정관념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을 바로 잡고, 스위스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1장 ‘스위스의 어제와 오늘’에서는 빌헬름 텔을 통하여 스위스의 건국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최근에 유엔에 가입하게 되기까지 스위스의 역사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몇 가지 소개합니다. 오랫동안 유럽을 지배한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가 사실은 스위스에서 출발한 가문이라는 것,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적 뿌리가 되었던 장자크 루소가 스위스 사람이라는 것, 스위스가 영세중립국을 추구하게 된 배경 등을 설명합니다.
2장 ‘스위스를 스위스답게 하는 것들’에서는 스위스의 민병대제도, 민방위제도, 공동체 뷔르거게마인데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3장 ‘스위스의 깊숙한 내면’에서는 스위스와 스위스사람들의 속내에 접근하기 위하여 돈, 유머, 축제 등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스위스사람들이 잘 쓰는 표현이 있다고 합니다. 1. 스위스는 작은 나라입니다, 2. 스위스는 섬나라입니다, 3. 우리는 실용주의적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에 섣불리 맞장구를 쳤다가는 어색한 상황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합니다. 그 말 뒤에 숨어 있는 생각을 잘 읽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오늘날의 스위스가 있게 한 것은 알프스 산맥에 흩어져 사는 스위스 사람들이 북유럽과 이탈리아를 잇는 전략적 요소를 차지하고 있는데다가, 산악지형이라는 독특한 자연적 입지를 바탕으로 합스부르크가의 오스트리아제국, 나폴레옹의 프랑스제국 등과 맞서면서 키워온 용병제도가 바탕이 되었다고 합니다. 외국에 팔려나간 용병들이 벌어들이는 자금과 정보력이 정밀기계와 금융 등 기간산업을 일구는데 기여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스위스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나치 독일에 협력한 부분에 대하여 연합국 측의 곱지 않은 시각도 여전하다는 것입니다. 중립을 표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유럽 제국 가운데 유일하게 스위스는 나치에게 협력했다는 것인데,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설명이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모양입니다. 특히 스위스로 피난하려는 유대인들에게 국경을 폐쇄함으로써 죽음을 맞도록 방치한 점, 그리고 희생된 유대인들이 남긴 휴면계좌를 방치하고 유족들에게 반화하지 않은 것 등이 문제였다고 합니다.
스위스를 공부하기에 좋은 책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번역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부분인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