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철, 박인하의 펜 끝 기행 디자인 그림책 2
최호철 그림, 박인하 글 / 디자인하우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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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녀와서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하고는 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대부분은 여행지에서 본 것들을 묘사하기보다는, 여행지에서 본 것들에 얽힌 이야기들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여행에서 보고 느낀 점을 묘사하는데 인색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본 것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많이 알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아름다움을 제대로 소유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며, 그것은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스스로 아름다움의 원인이 되는 (심리적이고 시각적인) 요인들을 의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의식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것에 관해 쓰거나 그것을 그림으로써 예술을 통해서 아름다운 장소들을 묘사하는 것이다.(277쪽)”라고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는 저는 여행의 기술을 완성하기에는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행의 기술을 완성하기 위하여 글이나 그림으로 묘사하는 두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그림보다는 글을 선택할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그리는 데는 영 소질이 없기 때문입니다. 전에 같이 근무하시는 분들과 야유회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 일행 가운데 한 분이 조그만 화첩을 꺼내시더니 주변의 풍광을 슥슥 그려내시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선을 몇 개 그은 것으로 눈앞의 풍경이 고스란히 화첩에 옮겨진 듯했기 때문입니다. 존 러스킨은 데생이 우리에게 보는 법을 가르쳐주기 때문에 재능이 없는 사람도 데생을 연습할 가치가 있다고 했습니다.

<최호철, 박인하의 펜 끝 기행>을 읽게 된 것은 러스킨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의 최호철교수와 박인하교수가 힘을 합쳐 만든 책입니다. 제가 만들었다고 하는 이유는 최호철교수는 그리고 박인하교수는 글을 썼기 때문입니다. 두 분이서 같은 대학에서 일하시고 만화를 가르친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같이 여행할 기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제주에서, 가까운 일본, 이탈리아와 스위스, 중국을 거쳐, 울릉도와 독도에서 마무리하는 여행을 같이하면서 보고 느낀 점을 만화로 그리고 글로 풀어내었습니다.

먼저 그림을 이야기하면 앞서 말씀드린 대로 몇 개의 선만으로도 충분히 대상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행하면서 본 광경을 이처럼 간단하게 표현하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저도 다녀온 친퀘테레를 사진처럼 그려낸 것을 보면 세밀화에 가까울 정도로 공을 들인 듯한 그림의 경우는 과연 현장에서 그려낼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친퀘테레는 이탈리아으 달동네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두 번째로 글에 관한 느낌은 보고 들은 것을 일정한 틀에 걸러 느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일본과 우리나라가 참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 것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서구로부터 받아들인 근대적 체계를 우리나라에 이식했던 것과, 5.16쿠데타을 일으킨 세력이 일본군대에서 교육을 받은 인사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도 일본은 적지 않게 다녀왔습니다만 일본은 우리나라와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5.16군사혁명세력이 일본식 사회를 베껴 왔다기 보다는 주로 미국의 체계를 주로 도입했던 것으로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어떻든 데생은 사진보다는 본 것을 붙드는데 효과적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진을 찍으려다 보면 빛의 방향에 따라서, 혹은 걸치적 거리는 것을 치울 수 없어서 마음에 흡족한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데생의 경우는 마음에 들지 않은 것들을 과감하게 버리면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글로 써내는 것 역시 같은 효과를 거둘 수가 있겠습니다. 책을 모두 읽은 결론은 역시 저는 그림으로 승부를 볼 수는 없을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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