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다는 것의 의미 동문선 현대신서 16
존 버거 지음, 박범수 옮김 / 동문선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영국 출신의 존 버거의 책은 우리나라에 많이 소개되어 있다는데, 저는 <본다는 것의 의미>가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에 이어 두 번째 읽는 책입니다.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리스본과 크라쿠프의 모습이 너무 생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본다는 것의 의미>는 1966년에서 1979년 사이에 썼던 본다는 것의 의미에 관한 글을 모은 것 같습니다. 출판사에서는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 속에 존재하는 새로운 의미의 층위들을 드러내도록 만드는 관찰자로서의 우리의 역할을 탐구한다’라고 이 책의 성격을 정리하였습니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다양한 것들을 보게 되는데, 저자는 특히 동물원의 동물들을 어떤 시각에서 보아야 하는지를 짚었습니다. 두 번째 글 묶음은 사진술에 관한 내용의 글로 모두 4꼭지의 글을 담았고, 체험된 순간들은 여행 등을 통하여 만난 장소 등에 관한 18꼭지의 글을 수록했습니다.

먼저 동물원의 동물을 대상으로 한 글에서 저자는 동물과 인간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거론합니다. 사람이 동물들을 지켜보는 것처럼 동물도 사람을 지켜봅니다. 물론 동물이 사람을 지켜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서로 뜻을 통할 수 없으니 알 수가 없습니다. 동물원에 가보면 우리 안의 동물들을 바라보는 사람들마다의 생각이 다를 것입니다. 저자는 동물원에 수용된 동물들이 원래 살던 곳에서 우리와 가까운 곳으로 다가왔지만, 사실은 강제로 주류에서 밀려난 존재로 이해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빈민가, 감옥, 정신병원, 강제수용소 등에 수용된 사람들 역시 주류에서 밀려난 존재로 이들과 비슷한 처지라는 공통점을 발견합니다.

두 번째의 글 묶음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하여 ‘우회적으로 봄’을 주제로 합니다. 독일 사진작가 아우구스트 잔더의 사진들, 특히 베스트발트의 시골 농부가 연주회에 가기 위하여 양복을 쫘악 빼입은 사진, 혹은 폴 스트랜드가 찍은 루마니아 농촌의 부부의 모습 등의 사진에 담긴 의미를 살펴봅니다. 이는 사진작가의 직접적 관찰에 의하여 얻는 사진을 타인이 봄으로서 얻는 느낌이 작가의 의도와 얼마나 일치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베트남 전쟁 시기에 미 공군의 폭격을 받은 하노이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신문에 게재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추적합니다. 어찌 보면 인간이 저지른 폭력의 결과를 외면함이 맞을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고통이 담긴 사진을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도록 신문에 게재하는 것은 결국 신문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라고 할 것이며, 생각 없는 독자는 신문사의 꼬임에 넘어가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주제, ‘체험된 순간들’은 미술작품에 관한 글입니다. 대상이 되는 작품을 그린 화가도 밀레, 프랜시스 베이컨, 쿠르베, 마그리트, 로댕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생소한 화가와 작품들이라서 실감이 덜했던 것 같습니다. 미술작품 역시 우리가 ‘본다는 것’의 대상이 됨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미술작품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가 생긴다고 합니다. 특히 화가가 유명을 달리하는 시점을 경계로 하여 확연한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세케르 아흐메드의 <숲속의 나무꾼>이라는 작품에 표현된 숲속 공간의 의미에 대한 설명이 인상적입니다. “철학의 책무는 베그[weg: path 오솔길], 즉 숲을 통과하는 나무꾼의 소로를 발견해 내는 것이다. 그 소로는 리히퉁[Lichtung: clearing 숲속의 공터], 즉 바로 공간이야말로 빛과 통찰력에 개방되어 있고, 존재에 대한 가장 놀라운 것이며, 바로 존재자의 조건인 숲속의 공터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127쪽)” 즉, “이 공터는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모든 것에 개방되어 있다.”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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