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김부장을 죽였나 - 다시, ‘저녁 없는 삶’에 대한 문제 제기
김영선 지음 / 한빛비즈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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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장성해서 일을 시작하게 되니 자연 제가 일을 시작할 때와 비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졸업을 하고 처음 인턴으로 병원 일을 시작할 때만해도 과목에 따라서는 한 달 당직을 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당직을 서는 동안은 병원의 어느 부서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숙소에서 쉬어도 긴장을 풀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요즈음에는 당직근무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직이 아닌 사람은 칼퇴를 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병원에서 일할 때는 주말에도 출근해서 밀린 일을 하는 경우도 꽤 있었습니다. 하지만 병원을 떠나서 조직을 관리하는 중간관리자로 일할 때는 정시퇴근을 원칙으로 하였습니다.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눈치를 보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인지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를 읽으면서 긴가민가하는 느낌이 한 켠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장시간 노동의 문제점을 짚은 사회학자 김영선님의 전작 <과로 사회>의 후속작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주52시간 근무제도가 정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제도가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 노동현장은 여전히 장시간 근무가 일상처럼 이루어지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야근이라는 형태의 초과근무를 하는 이유로, 업무량이 많아서, 업무의 특성상, 야근을 강요하는 회사분위기, 업무분장이 제대로 안되어서, 상사가 퇴근하지 않아서, 퇴근시간에 임박한 업무요청이 많아서 등의 순서였다고 합니다. 저와 일했던 분들은 적어도 ‘상사가 퇴근하지 않아서’라는 이유를 들지는 않을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의 강도를 두고 이야기할 때는 하고 있는 일의 특성을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즉 직장을 결정할 때 통상적인 근무형태 등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파악하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런데 일을 시작해보니 야근을 밥 먹듯 한다는 볼멘소리는 어쩌면 그 직장에서 일할 기회를 잡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공허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책의 전반을 통하여 야근을 밥 먹듯 하는 직장의 사례로 게임개발업체를 많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즉 보편적인 근로현장의 현상을 두루 살펴보지 않고 특정한 작업장의 현상을 보편적인 것으로 단정짓는 것을 적절치 않아 보인다는 점입니다. 혹시 게임개발업계에서는 일년 열두 달이 온통 야근으로 점철되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그러니까 개발과정의 막바지에 야근이 집중되어 있지만, 그런 시기가 지나면 전체적으로 근무시간의 운용에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또한 외국의 근로현장의 사정과 곧바로 비교하는 것도 적절치 않을 수 있습니다. 노동의 강도나 근무시간의 철두철미한 관리 등 노동문화가 우리의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시간 근무가 반드시 효율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본다면 적절한 근무환경을 조성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하겠다는 점에는 저도 분명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죽음 혹은 자살이 지나친 업무로 인한 피로가 누적된 결과인지는 명쾌하게 정의할 수 없다는 한계는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그러한 죽음은 최대한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겠다는 점도 충분히 공감되는 부분입니다.

과로가 유발하는 신체적, 정신적, 관계적, 사회적 오류를 ‘시간마름병’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정의한 것이 독특하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다만 아일랜드에서 18세기 중반 아일랜드에서 있었던 대기근의 원인이 된 감자마름병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감자마름병은 유럽전체를 휩쓸었지만 유독 아일랜드에서만 대기근이 발생한 것은 아일랜드 사람들이 감자를 주식으로 하게만든 정치적, 인종적, 종교적, 사회적 요소들 때문이라고 하는데, 저자는 이를 영국의 착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고, 과로사를 유발하는 시간마름병 역시 착취구조에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우리사회의 장시간 노동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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