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꽃시
김용택 엮음 / 마음서재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두어 해 전에 전국의 한글학교에서 늦깎이로 한글을 배우고 있는 어르신들의 시와 산문 89편을 엮은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뭉클한 기억이 있습니다. 늦게 배운 한글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글솜씨가 놀라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원로 여배우 윤정희님이 출연한 영화 <시>에서도 나이들어 시쓰기를 시작하는 모습이 감동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시를 쓴다는 것은 많은 노력도 필요하지만, 타고난 재능도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느끼는 모든 것을 잘 표현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전국의 문해학교에서 한글을 뒤늦게 깨친 100분의 어르신들이 쓰셨다는 시를 모아 엮은 <엄마의 꽃시>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더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왜냐면 이분들의 시가 한글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는 분들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글솜씨들이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특히 <엄마의 꽃시>에서는 김용택 시인께서 한편 한편에 시를 읽고 느끼신 점을 붙이고 있어 시에 대한 느낌이 더 진솔해지는 것 같습니다. 김용택시인님을 한번 뵐 기회가 있었습니다. 시인님과의 만남의 자리에 돌아가신 어머님과의 옛날이야기를 적어보냈던 것을 평해주셨는데, 사실 중심으로 쓰다 보니 뭔가 느낌이 모자란다는 말씀을 주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쓰는 글은 여전히 감정이 배제된 건조한 느낌이라고 스스로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실을 요약하는 것은 그럭저럭 할 수 있는데, 감정이 살아있는 글은 아무래도 잘 쓰여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백편이나 되는 시 모두가 마음을 움직이는 그런 시였습니다. 그 중에서 박순자님의 ‘한글나무’를 소개합니다. “추운 겨울 /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 글을 모르던 시절이 언제였던지 // 따듯한 봄날 / 앙상한 나뭇가지에 새싹이 돋는 것처럼 / 이제는 내 머릿속에도 한글 싹이 돋아나는 것 같다 // 뜨거운 여름 태양 아래 / 푸른 잎이 짙어질수록 / 내 머릿속에도 한글 잎이 짚어지고 있다 // 울긋불긋 가을 / 저 높은 산이 예쁜 단풍으로 물들어 있듯이 /내 머릿속에도 예쁜 글들로 한가득 물들어 있겠지” 글을 몰라 삭막한 겨울만 같던 할머니의 감성이 한글을 깨치고 늘어가는 모습을 시에서 저절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다시 겨울이 되면 그동안 배운 한글들이 온세상을 뒤덮은 한글처럼 소담하게 쌓이게 될 것만 같습니다.

일본에서 오신 할머니님들도 적지 않게 한글학교에서 한글을 공부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이시카와 스미코님은 ‘내 나이’라는 제목의 시를 쓰셨습니다. “외국에서 사는 것은 / 다시 태어나는 것과 비슷하다 // 인사를 할 수 있다 3살 / 한글을 읽을 수 있다 5살 / 혼자서 버스를 탈 수 있다 7살 / 말하기 대회에 참가했다 10살 / 친구와 여행을 갔다 13살 // 지금도 나는 매일매일 성장하고 있다 /이제 나는 몇 살이 되었을까……?” 시의 내용을 보면 15살은 넘으셨다는 말씀 같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시어로 옮기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김용택시인님은 ‘글자를 처음 배우 어머니들이 쓴 시를 읽고 제 생각을 보태가면서 저는 설레고 떨렸다’고 했습니다. 삶을 이렇듯 생생하게 시로 옮기실 수 있는 감성을 가지고 계셨으면서도 단지 글을 모른다는 이유로 마음속에만 꾹꾹 눌러담고 살아오셨을 터이니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싶어서가 아니었을까요? 김용택시인님이 보탠 느낌은 그저 입에 발린 말이 아닌 정말 가슴으로 느끼고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림은 잘 모릅니다만, 금동원화가님의 삽화도 어르신들의 마음속을 잘 표현해낸 것 같습니다. 시와 그림이 잘 어우러지는 것 같아 좋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