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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제인의 모험
호프 자런 지음, 허진 옮김 / 김영사 / 2025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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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 자런이 처음으로 선보인 소설 《메리 제인의 모험》은 《랩 걸》에서 보여준 섬세한 관찰력과 자기 탐구의 시선을 서사 속으로 옮겨온 작품이다. 자런은 19세기 미국을 배경으로,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 잠시 등장하는 ‘메리 제인’이라는 주변적 인물을 다시 불러내어 한 사람의 성장 서사로 확장한다. 기존 고전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 인물을 중심에 세웠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문학 내부의 공백을 다시 쓰는 시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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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메리 제인은 당시 여성에게 주어진 좁은 역할과 사회적 기대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선택해 나가려는 인물로 그려진다. 미시시피 강을 따라 이어지는 여정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타인의 이야기에 휩쓸리던 소녀가 자기 목소리를 갖는 과정이다. 자런은 이 여정을 지나치게 영웅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두려움, 망설임, 판단의 실패 등을 세심하게 담아내어 ‘성장’이란 완성의 문제가 아니라 끊임없는 질문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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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드워드 요새까지 아직 반도 못 갔는데 발밑에서 세상이 변하는 것을 이미 봤다. 나무가 다르고, 새들이 다르고, 심지어 사람들도 내가 북부에서 알던 사람들과 전혀 달랐다. 가는 곳마다 돈도 달라지는 걸까? 모파는 왜 나한테 경고해주지 않았을까?⠀
그 때 그 이유를 깨달았다. 모파도 몰랐나 보다! 엄마도 몰랐을지 모른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두 사람이 모르는 무언가를 알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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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서 하고 싶은 걸 미래를 해. 우리는 힘들게 배웠잖아. 애들아. 세상이 우리에게 다른 미래를 들이밀기 전에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먼저 붙잡아야 해."(p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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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자런 특유의 성찰적 문장이다. 《랩 걸》에서 자연과 과학을 통해 인간을 바라보았던 시선이, 이번에는 역사와 인물을 통해 번져 나온다. 메리 제인의 사유와 감정은 시대적 제약 속에서도 자신을 이해하려는 한 인간의 내밀한 기록처럼 읽힌다. 또한 당대 사회의 모순, 불평등, 성 역할의 압박이 과도하게 드러나거나 현대적 해석으로 덧칠되지 않고, 19세기라는 맥락 안에서 균형감 있게 배치된 점도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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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메리 제인의 모험》은 ‘무대 밖에 있던 인물에게 삶을 돌려주는’ 이야기다. 잊힌 이름 하나가 어떻게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며, 오래된 문학 속 공백을 발견하고 새길을 만들어가는 호프 자런의 문학적 실험이자 따뜻한 응답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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