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마노, 달의 여행
나서영 지음 / 심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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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마노 달의 여행 / 나서영

 

"그러나 제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한 걸음 한 걸음 포기하지 않고 오른다면 못 오르겠느냐? 그렇단다. 힘이 세고 마술을 부릴 줄 아는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아르토스산을 올라 정상을 차지했단다. 사람들이 왜 하늘까지 솟아 이는 아르토스산을 오르려는지 짐작되느냐? 그것은 바로 영롱한 빛을 뿜어내는 달의 흙에 젊음을 유지시켜주고 청춘으로 돌아가게 하는 힘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란다."

 

-P.23-

 

1.

 

(스포 有)

 

어릴적 소원이 있었습니다. 과자 공장에 들어가 내가 원하는 모든 과자들을 맛보고 즐기는 꿈이요. 아침은 초콜릿 우유에 말아먹는 과일 시리얼, 점심은 비스킷에 곰돌이와, 지렁이모양 젤리, 저녁은 띠부띠부 씰이 들어 있는 포켓몬 빵. 과자 공장에서 일한다고 과자를 실컨 먹는건 아니라는걸 알 정도로 성숙해 지면서 이 소원은 잊혀져 갔는데요. 가끔 철없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면 빼놓지 않고 이야기 하긴 합니다. 웃긴것은 제가 이 얘기를 해보면 다들 한번쯤은 비슷한 생각을 해봤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지만 보편적인 상상 그리고 꿈. <찰리의 초콜릿 공장>이 그토록 인기를 끌었던 이유도 아마 이런 보편적인 상상력 때문이 아니였을까요? 


 

달을 향한 꿈을 믿고 그것에 도전하는 용기란 저처럼 보잘것없는 사람은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조그만 세계가 찢어지며 넓은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꿈에 대해 생각해보았고, 꿈을 위해 단 하루라도 뜨거워본 적이 있었던가를 살폈습니다. 그러자 회오를 느껴습니다. 노력해야 할 때 그러지 못했습니다. 꿈을 저 하늘의 달을 바라보듯 멀게만 바라봤습니다. 그런 제게 달에 다가가는 두 분은 뭔가를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게 무엇인지는 훗날에 알겠지만 두 분께 감사했습니다.

 

-P.99-

2.

 

여기 또 다른 소원을 가진 남자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알로마노. 걸어서 달에가겠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남자입니다. 알로마노가 어릴적 그의 할아버지는 달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곤 했습니다. 멀리솟은 아스트로산에 오르면 달에 닿을수 있고,  달의 흙에 젊음을 유지시켜주고 청춘으로 돌아가게 하는 힘이 깃들어 있다는 이야기는 어린 알로마노로 하여금 언젠가 달에 닿고 말겠다는 꿈을 키우게 합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 꿈을 놓지 못하는 알로마노는 그의 친구들과 함께 달을향한 여정을 떠납니다. 그 여정은 무척이나 험난합니다. 사기꾼을 만나기도하고, 난폭한 추격자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들은 많은 이들의 격려와 부러움을 받습니다. 꿈을 찾아나선 용감한 사람들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말이죠.


 

아르토스산은 세상 어떤 산보다도 높았습니다. 저는 정말 기적적으로 정상에 오르는 데 성공했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정상에 오르자 달은 하늘 위에 솟아 있고 그 뒤론 드넓은 세계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넓은 것 같습니다. 저의 생각과 꿈이 얼마나 작은 것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넓다고 하나 사람의 마음이 그보다 작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저의 꿈은 세상보다 작았을 뿐 입니다. 실패와 성공, 어느 쪽에도 치우칠 필요가 없습니다.

 

-P.275-

 

3.

 

책의 마지막 부분 알로마노는 아스트로산의 정상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산의 정상에서도 달은 멀리서 영롱하게 빛나고 있을 뿐닿을수도 만질수도 없습니다. 결국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전설속의 이야기였던거죠. 하지만 산을 오르기까지의 과정에서 알로마노와 친구들은 많은것을 얻었습니다. 물론 잃은것들도 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것들이 새롭게 얻은것으로 인식됩니다. 알로마노가 살던 세상은 참으로 작았습니다. 그는 그 작은 한계점을 벗어나 더 큰 세계로 나갔고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더 큰 세계에서도 그것보다 더 큰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사는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안정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발전이 있을수 없습니다. 불가능한 꿈이라 생각되는 틀을 깨기 전에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혹자는 알로마노를 현실적이지 못한 이상주의자라 칭할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상주의자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세상이 변화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무척이나 단순한 동화같은 이야기였지만, 이야기가 주는 울림은 상당히 강렬했습니다. 동갑내기 작가의 다른이야기가 무척이나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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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게 될 거야 - 사진작가 고빈의 아름다운 시간으로의 초대
고빈 글.사진 / 담소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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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나게 될 거야 / 고빈

 

그래서 나의 여행은온통 동물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었다. 큰 뿔을 가진 소가 커다란 눈을 껌벅이며 다가와 히말라야의 설산으로 나를 데려갔고, 사막에 밤이 내리면 어디선가 파란소가 나타나 내게 사막의 밤하늘을 펼쳐 보여 주었다. 강가에서 만난 길거리 개 한 마리는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내 품을 파고들어서는 눈물이 되어 강으로 사라져갔다. 그렇게 우리는 설산을 넘고 사막을 지나 큰 강을 건넜다.

 

-P.13-

 

1.

 

밀레가, 만나게 될거야.

 

평상시라면 바로 골아떨어졌을 시각. 왠지 모르게 카페에 접속해 이런저런 소식들을 접하다,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소녀와, 아기 그리고 당나귀와 꽃. 순수한 모든것들을 하나에 모아놓은 사진은 왠지 모르게 마음을 움직이더군요. 거기에 '고빈'이라는 작가의 이름까지. 모든것이 완벽했습니다. 나를 위한 책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꼭 보고 싶었습니다.

 

동물과, 이국적인 세계의 순수한 사람들. 그 모든것들을 자신만의 앵글에 담은 '고빈'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달콤했습니다. 그러다 문뜩 이 달콤함이 꿈이란걸 알아버린 아이처럼 슬퍼지기도 했습니다. 현실과는 전혀 이질적인 공간에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마치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았습니다. 그 다른 세상 속 이야기에는 사람과, 동물이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신령한 파란 소가 나왔고, 인간을 잘 따르는 영리한 개와, 순박한 당나귀가 주인공 '고빈'과 함께였습니다.


 

"좋은 말씀이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신의 숨결이 깃든 존재들이지요. 모두가 알라의 다른 모습들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나라와 종교에 상관없이 우리는 모든 것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서로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알라를 존중하지 않는 것과 같지요. 서로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이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오."

노인은 마치 내 생각을 읽은 듯이 말해주었다. 속이 시원했다. 주위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모두들 진지한 눈빛으로 노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P.136-

2.

 

'고빈'이라는 이름은 사실 인도에서 얻은 저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릭샤를 타고 바라나시의 가트를 이동할 때, 늙은 릭샤꾼이 지어준 이 장난같은 이름을 아마 잊고 있었을 겁니다. '귀한 손님'이라는 뜻을 담은 이 이름이 '사랑의 신'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것은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입니다. 고맙게도 책은 바라나시 강변의 개들을 이야기하며, 내가 겪은 인도의 이야기를 다시한번 곱씹어보게 만들었습니다.

 

바라나시 일급 호텔의 방에는 도마뱀이 기어다녔습니다. 가운데 손가락만한 녀석이 방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닐때 정말이지 식겁했습니다. 가트를 돌아다니던 피부병 걸린 개들을 저는 피해만 다녔습니다. 병이라도 걸리면 어쩌나 걱정하며 말이죠. 아마 전 인도에서 정작 봐야할 것들은 놓쳤던것 같습니다.

 

제가 본 인도인들은 조화를 참으로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종교 역시 이런 저런 신앙을 포용하고 자신들의 문화로 재창조한 힌두교가 우세합니다. 길거리에는 소들이 아무데나 누워있고, 개와 원숭이가 활보합니다. 그리고 여기 사람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동물원에 가서야 동물을 볼 수 있는 한국과는 다른 분위기 입니다.


 

파란소는 숲이 시작되는 지점에 서 있었다. 마지막 보았을 때에 비해 덩치도 훨씬 커졌고, 훨씬 더 신비로워진 모습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파란소를 불렀다. 파란소는 더 이상 다가오지도 멀어지지도 않고 여전히 그곳에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깨달았다. 여기서 우리 둘의 시간은 끝났다. 각자의 삶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파란소는 처음 그가 왔던 신성의 숲으로 나는 이곳을 찾는 수많은 여행자 중의 하나로 돌아가야 했다. 그것이 더 이상 카르마를 쌓지 않을 방법이었다.

 

-P.213-

 

3.

 

마지막 사진인 티베트의 밤하늘. 하늘과 땅의 공평한 조화처럼, 책은 내내 인간과 동물의 교감을 주제로 삼고 있었는데요. 이 조화의 한복판에는 너무나 아름다워 거짓말 처럼 느껴지는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행을 하다보면 그 거짓말같은 일들이 우리앞에 실제로 펼쳐지곤 합니다. 저 역시 여행길에서 그런 나만의 이야기를 체험했었기에 그의 이야기를 마음 깊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책의 뒷편 류시화의 말처럼 '고빈'은 자신이 여행한 장소들을 기억하는 여행자가 아니라 그 장소들이 그를 기억하는 여행자입니다. 나는 어떤 여행자였을까요. 아마 그 장소들을 담기에 급급했던 다수의 여행자가 아니였나 반성해 봅니다.

 

밀레가(MILEGA), 만나게 될 거야. 이 말처럼 언젠가 나 역시 그들을 만나게 될 지도 모릅니다. 이 책을 우연히 만나게 된 것 처럼요.

그때 꼭 환하게 웃으며 인사할겁니다.

 

밀레가 ! 만나게 될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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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는 맛있다 - 군침 도는 이스탄불 뒷골목 맛집 기행 여행인 시리즈 7
안셀 멀린스.이갈 슐라이퍼 지음, 나은희 옮김 / 시공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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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는 맛있다 / 안셀 멀린스. 이갈 슐라이퍼

 

현재의 터키를 대표하는 음식문화는 오스만튀르크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데, 중앙아시아와 중동, 그리고 발칸지역의 음식을 혼합한 퓨전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세력권에 속했던 여러 나라는 물론 주변에 위치하던 다양한 나라들의 음식 전통을 흡수하면서 형성한 것이다.

 

-P.10

 

1.

 

휴학을 하고 터키를 여행중인 친구가 있습니다. 내 연락이 안되었는데 페이스북을 통해 근황을 전하며 사진을 몇장 올렸더군요. 이스탄불 광장의 멋진 풍광과, 터키 대학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 젊음을 누리고 있는 녀석이 대견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부러웠습니다. 그런 녀석의 담벼락엔 허름한 케밥집의 사진도 올라와 있더군요. 돈도 많은 녀석이 궁상맞게 이런데서 밥을먹나 하며 글을 읽어보니 우연히 알게된 그곳의 맛집이라고 써있더군요. 트라브존의 뒷골목에 위치한 작은 케밥집. 그 숨겨진 골목길 속에서 녀석은 보편화된 맛이아닌 진짜 터키의 맛을 느꼈다고 합니다.

 

음식이라는건 한 나라의 문화입니다. 수많은 프랜차이져가 들어오고 문화의 특수성이 사라져가지만, 각국의 골목엔 아직까지 그 나라의 전통이 살아있습니다. 특히나 터키라는 나라는 자신들의 전통을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생각해 프랜차이져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몇안되는 나라라고 하더라구요. 녀석은 아마 그 후비진 뒷골목에서 진짜 터키를 경험했을 겁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터키의 맛을요.


 

특히나 터키 동부의 간 요리에 대한 열정은 너무나 대단해서 간 소비량이 언제나 다른 부위의 소비량을 능가한다. 그리스 및 불가리아와 접경 지역인 에디르네의 간 요리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그곳의 간 요리를 먹기 위해 일부러 몇 시간씩 여행을 무릅쓰는 이스탄불 사람들까지 있다고 하니 그 맛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P.114-

2.

 

터키에는 '여행중에 돈이 부족해 밥사먹기가 힘들다면 한적한 레스토랑에서 스프 하나만 시켜라'라는 조크가 있다고 합니다. 스프 하나만을 시켜도 빵을 줄정도로 정이 많기 때문에, 돈이 없는데 배는 채워야겠다는 뜻으로 이런말을 사용한다고 하네요. 이걸 본 터키사람 대부분은 스프값을 지불해주고, 자기 집으로 밥먹으러 오라고 초대까지 해준다고 합니다. 사실 터키 여행을 해본적이 없어 진실인지 확인을 해볼수는 없지만, 이런말이 통용되는걸로 봐서는 정말이지 매력적인 나라가 아닐수 없습니다.

 

책은 이렇게 매력적인 터키의 음식문화와, 숨겨진 맛집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스탄불에 거주하는 두 사람이 만든 책은 가게의 역사는 물론이거니와, 주요메뉴에 대한 상세한 설명까지 빼곡히 채우고 있는데요. 먹음직 스러운 사진들의 향연에 읽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천국에 어울리는 음식을 상상해볼까? 터키 음식 중에서 제일 적당한 후보는 바로 카이막이다. 하얀 상을 치렁치렁하게 걸친 천사들이 콜레스테롤 수치나 심장병 등의 질병에서 자유로운 천국의 영혼들에게 한 그릇 한 그릇 카이막을 팔고 있다.

 

-P.152

 3.

 

구시가지에서, 베이오울루, 갈라타 탑과 항구, 보스포루스, 아시아와 섬 지역등 터키 곳곳에 숨겨진 맛집을 찾아다니는 여행은 무척이나 즐겁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케밥과, 아이스크림 외에도 간요리와, 시미트 등 메인 메뉴부터 디저트까지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어 보고만 있어도 먹고있다는 기분이 들 정도니까요.

 

언제쯤 터키라는 나라를 가볼지 모르겠습니다. 이집트, 그리스와 더불어 꼭 가보고 싶은 나라중 하나인 터키. 그곳의 문화인 식습관을 미리 알아볼수 있어 좋았습니다. 아직 저에게 먼 나라 터키와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고 할까요. 나중에 터키를 여행할때 꼭 가져가서 체크해둔 음식점들을 찾아가 보고 싶습니다. 여행에 있어 새로운 재미가 될 것 같아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

 

맛있는 터키를 즐기게 해주는 책 <터키는 맛있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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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맨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7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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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 맨 / 요 네스뵈

 

 

 

곧 첫눈이 내리고 그가 다시 나타나리라. 눈사람. 그리고 눈사람이 사라질 때 그는 누군가를 데려갈 것이다. 당신이 생각해봐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누가 눈사람을 만들었을까? 누가 눈사람을 만들지? 누가 무리를 낳았지? 눈사람은 모르기 때문이다."

 

-P.105-

 

1.

 

(스포 有)

 

지구 온난화로 세상이 점점 더워지기 때문일까요. 작년 하반기부터, 올 상반기까지. 출판계에 새롭게 떠오르는 키워드는 '북유럽 소설'입니다. 얼마전 읽은 <우아한 제국>부터, 서평을 미뤄둔 밀클의 <최면전문의>까지 출판사의 간판 도서들을 죄다 이 '북유럽 소설'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식의 빠르고 전형적인 스릴러의 성격에서 벗어나 인물의 내면을 관찰하는 순문학적 성격까지 갖춘 '북유럽식 스릴러'는 기존에 우리가 읽던 구조와 다르기 때문에 독자에게 낯설게 느껴질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낯섬의 고비를 넘겼을때 독자는 작품에 좀 더 몰입할수있게 됩니다. 그리고 언제 읽었냐는듯 600페이지가 넘는 책을 훌쩍 넘기게 되죠.

 

비채에서 야심차게 출간한 요 네스뵈의 <스노우 맨>은 이 '북유럽 스릴러'의 특징과 구조를 매우 잘 이용한 스릴러의 정석과 같은 책입니다. 특별한 반전이라던지 할만한 내용은 없지만, 자근자근 심장을 조여오는 이야기의 구성과, 작품 전반에 풍기는 서늘함은 전형적인 스릴러에 '요 네스뵈'만의 개성을 살려 넣은 멋진 작품이였습니다.

 

 

 

내 영혼의 도플갱어로군. 뮐레르 닐센의 설명을 들은 해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위험한 음주 습관과 까다로운 성격, 외톨이, 믿을직스럽지 못하며 의심스러운 도덕성, 그리고 오점투성이의 인사 기록까지 그와 똑같았다.

 

-P.244-

 

2.

 

이야기는 첫 눈이 내리는 오슬로의 풍경으로 시작됩니다. 불륜을 저지른 여자가 아이가 기다리는 차로 돌아왔을때, 그녀는 눈사람을 보게됩니다. 왠지 모르게 스산한 느낌의 눈사람. 그리고 여자들이 하나씩 실종됩니다. 그리고 잔혹하게 살해된채 발견되지요.

 

북 트레일러의 내용을 요약한 출판사의 소개문이 무척이나 소름끼쳤고, 먼저 읽은 주변분들의 극찬에 사실 책넘기기가 많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스릴러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독서 취향때문에, 극찬받은 스릴러물도 실망하기 일수였기 때문이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척이나 좋은 작품임은 분명하지만 저한테는 맞지않는 책이였습니다.

 

이웃인 훙치님의 말을 빌리자면 '상당히 영리하게 플롯을 짜내려간 책'이 바로 이 <스노우 맨>입니다. 어느 장면 하나도 버릴것 없는 모든 장면이 결국 하나의 이야기를 위해 연결되는 구조의 완벽함은 읽는내내 심장을 조여왔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예상 가능한 범인과, 납득하기 힘든 소시오패스의 살인동기, 거기에 전형적인 형사 캐릭터는 아쉬움이 남는 요인이였습니다. 스릴러라는 장르의 특성상 빼놓을 수 없는 소재인것은 어쩔수 없었겠지만 말이죠.


 

요나스는 식탁 의자에 올라가 밖을 내다보았다. 정말로 집 앞 잔디밭에 눈사람이 있었다. 엄마의 말처럼 커다란, 대형 눈사람이었다. 눈과 입은 조약돌로 코는당근으로 만들었다. 모자도, 목도리도 두르지 않은 채 산울타리에서 꺾은 나뭇가지로 만든 듯한, 앙상한 팔 하나만 있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이상했다. 바라보는 방향이 잘못됐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눈사람이란 원래 길가 쪽, 그러니까 열린 공간을 바라보며 서 있는 법인데.

 

-P.39-

 

3.

 

'해리 홀레'라는 주인공의 이미지가 상당히 강렬했기 때문일까요. 책을 덮은 뒤 시리즈의 다른 이야기가 궁금해졌습니다. 위험한 음주 습관과 까다로운 성격, 외톨이, 믿을직스럽지 못하며 의심스러운 도덕성, 그리고 오점투성이의 인사 기록을 지닌 주인공. 그가 그토록 열정적으로 사건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때문일까요. 작품에 언급되는 다른 인물들과의 이야기를 함께 찾아가면 답을 찾을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릴러가 아닌 다른 장르의 작품도 무척이나 잘 소화해 낼 것 같은 '요 네스뵈'. 만능이라 불리는 그의 다음 이야기가 무척이나 궁금해집니다. 더운 여름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서늘한 북유럽의 스릴러 <스노우 맨>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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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뒷면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9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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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뒷면 / 온다리쿠

 

 

교이치로는 무엇을 겁내는 걸까. 실종된 세 여자. 돌아온 세 여자. 세 사람의 집은 수로에 면했다. 실종된 동생 부부. 돌아와 지금은 하카타에있는 모양이다. 다카야스의 테이프에 녹음되어 있던 그 소리. 방금 자신이 이 방에서 본것. 다몬은 비로소 자신이 참가한 것이 현실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P.80-

 

1.

 

(스포有)

 

2007년 개봉했던 영화중에 인베이젼 이라는 작품이 있었습니다. 니콜 키드먼의 열연으로 더욱 빛을 발했던 영화는 국내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척 흥미롭게 봤던 작품들 중 하나였습니다. 질서정연하게 변해버린 거리를 무표정한 얼굴로 오가는 사람들. 그들은 모두 외계생명체에 감염되어 ‘신체 강탈’을 당해버렸습니다. 별로 무서울것도 없는 영상이였건만 서늘했던 그 느낌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혹시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존재도 사실은 어느순간 내가 아니게 된다. 단순히 시각적인 공포가 아닌 뇌 깊은곳에서 서늘하게 펼쳐지는 공포랄까요.

 

생각해보면 비슷한 이야기는 동양에도 존재합니다. 어릴적 유행했던 괴담중에는 자신과 똑같은 도플갱어를 발견하면 죽는다라는 이야기도 있었고, 거울속 나랑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이겼다라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아를 비롯한 '신체강탈'은 인간의 본질적인 공포를 나타내준다는것을 보여주는 예이죠.

 

 

 

문득, 공포와 애정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몇십 분전에 눈앞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자신과 아이코는 가치관이 달라질 만큼 큰 공포를 맛보았을 터였다. 그런데도 이 한가로운 대화란. 자기들이 이야기해야 할 것은 따로 있을 텐데. 그러나 아닌 게 아니라, 영화에서나 소설에서나 공포는 애정을 낳는게 정석이다. 공포를 같이 체험함으로써 사랑 에너지가 증강된다. 공포에 관해 이야기하다보면 그 반동으로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사람들은 공포를 이야기함으로써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P.148-

 

2.

 

여기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달의 뒷면'. 이야기는 '신체강탈'이라는 공통된 소재를 삼고 있지만 좀더 철학적이고, 진지한 고민을 독자에게 던져줍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달의 일정부분만을 보게 됩니다. 자전과 공전이라는 지극히 지구과학적인 이론들이 이를 뒷바침 해주고 있지요. 때문에 우리는 보지못하는 달의 뒷면에 대해 호기심이 생길수 밖에 없습니다. 아마 온다리쿠는 달의 뒷면처럼 보고싶지만 볼수 없는 인간의 또 다른 모습을 그리고자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거미줄 같이 얽혀 있는 수로가 도시 전체를 가로지르는 후쿠오카의 유명한 물의 도시 야나쿠라. 그곳에서 연쇄 실종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불가사의하게도 실종됐던 사람들은 실종 당시의 기억을 잃은 채 다시 돌아오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으로 돌아온 사람들. 전직 대학교수 교이치로는 그들의 집이 수로에 면해 있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제자 다몬, 딸 아이코, 신문기자 다카야스와 함께 사건의 진상을 추적해나가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등장인물 '다몬'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단편집 <불연속 세계>가 너무나 환상적이였던 탓일까요. 기대했는 장편은 사실 너무 철학적이였습니다. 중반부까지 공포와 미스터리 분위기를 적절하게 잘 잡아 나가나 싶더니만, 마지막에 너무나 무겁고 상징적인 이야기로 끝을 마무리해버려 조금은 벙찐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그만큼 깊이있는 작품임은 확실한것 같았습니다. 묘하게 중독성있는 분위기가 책을 덮은 뒤 스믈스믈 올라왔거든요.


 

"우리는 '하나'가 되고 싶어하는 중인지도 몰라. 아니면 무의식 중에 인간이란 생물의 전략이 도저히 수습 불가능한 상태에 이른걸 깨닫고 다시 한번 '하나'로 되돌아가려고 하는지도 몰라"

두 사람은 서로를 외면하며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

 

-P.217-

 

3.

 

그들이 변해가는 이유는 명확하게 나와있지 않습니다. 무의식중에 '하나'로 돌아가려는 노력일지도 모르고,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에서 처럼 환경 파괴에 대한 자연의 보복일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아니면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처럼 인간이 인간을 학살하는데 대한 신의 재앙일 지도요. 하지만 그렇게 '하나'가 되어가는 인간의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출판사 서평에는 완전한 개체가 되고 싶어하는 인간의 모습이라고 설명하고있지만. 글쎄요. 저는 그 신체의 조각들이 강을 따라 둥둥 떠다니는 모습의 찝찝함을 왠지 지워버릴수가 없네요.

 

조금은 생각의 정리가 된 뒤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온다월드의 새로운 주인공 '다몬'이라는 캐릭터가 무척이나 마음에 듭니다. 아마 묘하게 나와 닮은듯한 느낌이 들어서일지도 모르겠네요. 앞으로도 만나볼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조금은 섬뜩한 느낌의 미스터리, SF, 호러, 판타지 소설 <달의 뒷면>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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