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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뒷면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9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4월
평점 :
달의뒷면 / 온다리쿠
교이치로는 무엇을 겁내는 걸까. 실종된 세 여자. 돌아온 세 여자. 세 사람의 집은 수로에 면했다. 실종된 동생 부부. 돌아와 지금은 하카타에있는 모양이다. 다카야스의 테이프에 녹음되어 있던 그 소리. 방금 자신이 이 방에서 본것. 다몬은 비로소 자신이 참가한 것이 현실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P.80-
1.
(스포有)
2007년 개봉했던 영화중에 인베이젼 이라는 작품이 있었습니다. 니콜 키드먼의 열연으로 더욱 빛을 발했던 영화는 국내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척 흥미롭게 봤던 작품들 중 하나였습니다. 질서정연하게 변해버린 거리를 무표정한 얼굴로 오가는 사람들. 그들은 모두 외계생명체에 감염되어 ‘신체 강탈’을 당해버렸습니다. 별로 무서울것도 없는 영상이였건만 서늘했던 그 느낌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혹시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존재도 사실은 어느순간 내가 아니게 된다. 단순히 시각적인 공포가 아닌 뇌 깊은곳에서 서늘하게 펼쳐지는 공포랄까요.
생각해보면 비슷한 이야기는 동양에도 존재합니다. 어릴적 유행했던 괴담중에는 자신과 똑같은 도플갱어를 발견하면 죽는다라는 이야기도 있었고, 거울속 나랑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이겼다라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아를 비롯한 '신체강탈'은 인간의 본질적인 공포를 나타내준다는것을 보여주는 예이죠.
문득, 공포와 애정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몇십 분전에 눈앞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자신과 아이코는 가치관이 달라질 만큼 큰 공포를 맛보았을 터였다. 그런데도 이 한가로운 대화란. 자기들이 이야기해야 할 것은 따로 있을 텐데. 그러나 아닌 게 아니라, 영화에서나 소설에서나 공포는 애정을 낳는게 정석이다. 공포를 같이 체험함으로써 사랑 에너지가 증강된다. 공포에 관해 이야기하다보면 그 반동으로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사람들은 공포를 이야기함으로써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P.148-
2.
여기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달의 뒷면'. 이야기는 '신체강탈'이라는 공통된 소재를 삼고 있지만 좀더 철학적이고, 진지한 고민을 독자에게 던져줍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달의 일정부분만을 보게 됩니다. 자전과 공전이라는 지극히 지구과학적인 이론들이 이를 뒷바침 해주고 있지요. 때문에 우리는 보지못하는 달의 뒷면에 대해 호기심이 생길수 밖에 없습니다. 아마 온다리쿠는 달의 뒷면처럼 보고싶지만 볼수 없는 인간의 또 다른 모습을 그리고자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거미줄 같이 얽혀 있는 수로가 도시 전체를 가로지르는 후쿠오카의 유명한 물의 도시 야나쿠라. 그곳에서 연쇄 실종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불가사의하게도 실종됐던 사람들은 실종 당시의 기억을 잃은 채 다시 돌아오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으로 돌아온 사람들. 전직 대학교수 교이치로는 그들의 집이 수로에 면해 있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제자 다몬, 딸 아이코, 신문기자 다카야스와 함께 사건의 진상을 추적해나가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등장인물 '다몬'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단편집 <불연속 세계>가 너무나 환상적이였던 탓일까요. 기대했는 장편은 사실 너무 철학적이였습니다. 중반부까지 공포와 미스터리 분위기를 적절하게 잘 잡아 나가나 싶더니만, 마지막에 너무나 무겁고 상징적인 이야기로 끝을 마무리해버려 조금은 벙찐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그만큼 깊이있는 작품임은 확실한것 같았습니다. 묘하게 중독성있는 분위기가 책을 덮은 뒤 스믈스믈 올라왔거든요.
"우리는 '하나'가 되고 싶어하는 중인지도 몰라. 아니면 무의식 중에 인간이란 생물의 전략이 도저히 수습 불가능한 상태에 이른걸 깨닫고 다시 한번 '하나'로 되돌아가려고 하는지도 몰라"
두 사람은 서로를 외면하며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
-P.217-
3.
그들이 변해가는 이유는 명확하게 나와있지 않습니다. 무의식중에 '하나'로 돌아가려는 노력일지도 모르고,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에서 처럼 환경 파괴에 대한 자연의 보복일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아니면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처럼 인간이 인간을 학살하는데 대한 신의 재앙일 지도요. 하지만 그렇게 '하나'가 되어가는 인간의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출판사 서평에는 완전한 개체가 되고 싶어하는 인간의 모습이라고 설명하고있지만. 글쎄요. 저는 그 신체의 조각들이 강을 따라 둥둥 떠다니는 모습의 찝찝함을 왠지 지워버릴수가 없네요.
조금은 생각의 정리가 된 뒤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온다월드의 새로운 주인공 '다몬'이라는 캐릭터가 무척이나 마음에 듭니다. 아마 묘하게 나와 닮은듯한 느낌이 들어서일지도 모르겠네요. 앞으로도 만나볼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조금은 섬뜩한 느낌의 미스터리, SF, 호러, 판타지 소설 <달의 뒷면>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