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증명 증명 시리즈 3부작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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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증명 / 모리무라 세이이치

 

 

옥상의 냉각탑 역시 등롱을 연상케 하는 작은 빛들로 둘러싸여 있다. 저곳이 호텔의 '스카이 다이닝'이다. 아름답고 화려한 광경이었다. 무네스에는 먼 이국땅에서 칼에 찔린 채 저 휘황찬란한 호텔 건물을 바라보았을 이방인의 심정을 떠올렸다. 절망을 담은 눈동자에 세상 모든 행복을 모아놓은 듯한 하늘의 식당은 마치 별세계처럼 아름답게 비쳤으리라. 그것은 다 죽어가는 피해자를 충분히 끌어당기고도 남을 반짝이는 빛의 윤곽을 도시의 밤하늘에 아로새기고 있다.

 

-P.33-

 

1.

 

 왜 저는 이 책을 이제서야 읽게 된 걸까요. <제노사이드> 이후 이렇게 마음을 설레게 만든 소설은 처음이였습니다. 취향이 사회파 미스터리에 편중되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책을 읽고난 후 그 울림이 아직까지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듭니다.

 

 <인간의 증명>, <야성의 증명>, <청춘의 증명> 세편의 증명 시리즈가 정식 한국어판으로 한국에 출간되었습니다. (기존에 해문에서 나왔던 책은 정식 계약이 되지 않은 해적판이라고 하네요.) 작가인 '모리무라 세이이치'는 '마츠모토 세이초'와 더불어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유명 작가라고 하는데, '마쓰모토 세이조'에 비하면 아직 낯설게 느껴지는 작가입니다. 하지만 드라마 '로얄 패밀리'의 원작이 작가의 작품이였다는 이야기는 작가를 좀 더 가깝게 느끼게 도와줬습니다.

 

 책의 배경은 70년대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일본입니다. 물질적 풍요와는 대조적으로 서서히 사라져 가는 인간성은, 작가의 눈에 무척이나 인상적이였나 봅니다. 인간의 가치가 돈으로 환원되는 물질 만능주의 사회의 폐해를 무척이나 잘 나타내는 작품은 오늘날 읽어도 위화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마 이러한 문제가 최첨단 지식정보 사회를 살아간다는 우리에게도 일상적이기 때문일 겁니다.

 

 

 

 

 

돈은 그야말로 제 의지를 가진 것처럼 사람 사이를 오가고, 인간은 무기물로 변한다. 오로지 돈만이 존재한다. 아무도 그 사실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고도로 발달한 물질문명 속에서 인간의 정신과 온기는 저 멀리 뒤쳐졌고, 물질만이 앞서 나갔다. 이리저리 날뛰는 이 물질의 악마에 가장 영향을 받기 쉬운 것이 바로 미국 같은 다민족 국가다. 애초에 같은 땅에서 살던 같은 민족이 만든 국가가 아니다. 성공의 기회를 찾아, 또는 고향에서 살 길이 막막해진 이들이 모여 이룬 집단이라 모두가 경쟁자다.

 

-P.323-

 

2.

 

 부를 상징하는 화려한 호텔 레스토랑에서, 한 흑인사내가 시체로 발견되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호텔의 아름다움과는 대조적으로 추례한 옷차림의 시체는 어울리지 않는 그림처럼 보입니다. 어릴적 억울하게 아버지를 잃은 후 인간에 대한 믿음을 져버린 형사 무네스에는, 외국인의 이상한 죽음을 수사해 나가는데요. 풀리지 않을것 같던 사건은 우연히 발견된 낡은 밀짚모자와, 시집 한권으로 반전됩니다.

 

 한편 다른곳에서는 잃어버린 아내를 찾기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내가 있습니다. 자신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접대부로 나선 부인은 어느날 종적을 감췄습니다. 불륜으로 시작된 가출이라 생각하고 아내를 찾아 나서지만, 아내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곳에는 물질로 모든것을 해결하려는 부모에게 질린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히피를 모방하며 자유롭게 성관계를 가지며, 약을 합니다. 부모는 그들을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할 뿐,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베풀지 못합니다. 모든걸 돈만으로 해결하려는 어른들에 질린 아이들은 끝없이 방황합니다.

 

 각기 다른 조각의 이야기들이,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로 짜맞춰지는 과정은 무척이나 짜릿합니다. 이야기를 짜맞추는 과정뿐만이 아니라, 이야기가 담고있는 무거운 주제역시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데요. 인간이 스스로 인간임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해 봤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다른 이를 위해 준비된 인생이었다. 누군가의 기대에 항상 부응하며 엘리트 코스를 차곡차곡 밟아가는 삶, 그 끝에 과연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지금까지 이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모두 자신이 바란 선택이며 삶이었다고 굳게 믿어왔다. 그런 자신을 흔들어놓은 것이 바로 오야마다 후미에였다.

 

-P.424-

 

 

3.

 

 작품속에는 수많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우리가 당연하다 생각하는 도덕성을 반하며 살아갑니다. 책 속에서 가장 정상적으로 보이는 인물이 불륜을 저지른 '니이미'일 정도니까요. 모두 인간의 탈을 쓰고 있지만 그들의 이면엔 욕심과, 불안, 시기가 가득합니다. 어쩌면 우리도 마찬가지일지 모르겠습니다. 인간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것을 어기고, 욕심내며 살아갑니다.

 

 책속의 누군가는 그 욕심에 침식당해, 자신이 소중하다 생각했던 모든것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 모든것을 내려 놓은 순간, 아마 그때가 누군가가 가장 인간적으로 보였던 것은 아마 저만 느낀 감정이 아닐겁니다. 어쩌면 작가는 인간이 인간다울수 있는 '인간성'이라는 선한 마음을 결말에 제시함으로 그 희망의 끈을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봅니다. 나는 과연 자본에 침식된 그들을 욕할 자격이 있는지 말이죠. 무척이나 묵직한 책이였습니다. <야성의 증명>과 <청춘의 증명>역시 무척이나 기대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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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물쇠가 잠긴 방
기시 유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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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물쇠가 잠긴 방 / 기시 유스케

 

 

"음. 그랬군요. ㆍㆍㆍㆍ그게, 나는 종교라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요. 존재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고, 특히 불교의 타락은 차마 눈뜨고 못 볼 지경이거든요. 불교식 장례다 뭐다 하면서 계명에 등급을 매겨서 돈을 얼마나 뜯어낼 수 있느냐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한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불단 따위는 일절 집안에 놔두지 않았습니다. 고인을 애도하는 기분은 각자가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으면 되는 것 아니겠어요?"

 

-P.115-

 

 

1.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유독 '밀실'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합니다. 얼핏 불가능해 보이는 현장에서 하나의 실마리를 찾아 문제를 해결하는 탐정들의 모습은, 현실에서도 이런 탐정들이 존재한다면 정말 '완전범죄'란 존재하지 않을텐데 라는 아쉬움을 남기도 합니다.

 

 '기시 유스케'의 신작 <자물쇠가 잠긴 방>역시 이러한 '밀실'을 다루고 있는 4편의 단편집입니다. (사실 분량으로 봤을때는 중편에 가깝습니다.) 방범탕멎 에노모토 케이와 변호사 아오토 준코 콤비는 작가의 전작 <유리망치>와, <도께비불의 집>에서 홈즈와 왓슨을(조금 많이 엉성한....) 연상케 하는 멋진 추리를 보여준 바 있는데요. 이 활약은 <자물쇠가 잠긴 방>에서도 유감없이 나타납니다.

 

 

기울어진 데다 바닥이 비에 젖어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뒤통수를 부딪쳐 사망. 아주 자연스러운 시나리오다. 이 사건은 불행한 사고로 처리되리라.

이건 전부 밀실에서 벌어진 일이니까.

이 불쾌한 결함 주택, 비뚤어진 상자야말로 이 남자에게 가장 어울리는 관이다.

 

-P.241-

 

 

2.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책은 모두 '밀실'이라는 트릭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때문에 마지막 작품인 <밀실극장>을 제외하고는 '범인들이 누구냐' 보다 '어떻게 밀실을 만들었고, 그 안에서 범죄를 저질렀는지'가 관건입니다. 도입부부터 범인이 밝혀지는 작품들은 사실 이야기로서의 매력은 없습니다. 본격을 좋아하지 않는 저로서는 이 풀이 과정이 사실 무척이나 지루하게 느껴졌는데요. 완성도 있는 트릭임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설명해 가는 과정이 지나치게 길게 느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였던 이야기는 첫번째 이야기 <서있는 남자>였습니다. 장례회사를 운영하는 사장이 밀실의 방안에서 시체로 발견됩니다. 발견된 유서에는 자신의 처조카인 세이치 전무에게 회사를 물려주겠다 써있지만 시체가 서있었고, 불필요한 백막이 현장에서 발견되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점들이 존재합니다. 시체를 발견한 오이시 사장의 법무사 마사토코는 이 사건을 에노모토에게 의뢰하고, 에노모토와 파트너 준코는 파렴치한 범죄의 전말을 밝혀냅니다.

 

 4편의 이야기 중 <밀실극장>을 제외한 나머지 이야기들은 돈과, 욕심이 불러온 비극적인 살인사건입니다. 그 과정에 있어 조금 더 스토리를 가미했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지만, 앞서 리뷰한 <수수께끼는 저녁식사 후에> 처럼 옴니버스 형식의 드라마로 만들어져지기에는 좋은 구성이였던것 같습니다. 실제로 후지TV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져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하니, 한번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정상참작이고 뭐고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걸로 카나를 영원히 잃었으니까.

그뿐이랴, 인생 그 자체를 망치고 말았다.

이 비뚤어진 상자, 일그러진 복수심에 사로잡혀서

 

-P.298-

 

3.

 

 개인적으로 북홀릭이라는 출판사의 표지를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모양이 잘 변하지 않는 양장판인것도 마음에 들지만,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을 함께 세워놨을때 그 높이가 일정해 장식용으로도 손색없기 때문입니다. '에노모토 케이' 시리즈인 <유리망치>와 <도깨비불의 집>은 각기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되어 책의 모양이 다른데요. 한 출판사에서 나와서 책 모양이 일정했으면 더욱 좋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사실 '기시 유스케'라는 작가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검은 집>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 부터입니다. 국내에 영화화 되며 충격적인 소재와 이야기로 인기를 끌었던 작품은, 제게도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는데요. <자물쇠가 잠긴 방>의 소개를 보고 <검은 집>의 느낌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트릭위주의 이야기에 사실 좀 실망했습니다. 본격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읽어봐야 겠지만, 사회파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굳이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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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구르메 - 레미의 오사카 맛집 탐방기
이정애.김광일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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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구르메 / 이정애

 

 

일본의 음식은 지역에 따라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전국에서 오사카를 따라갈 만한 곳이 있을까? 이곳에서는 정말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고,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수준 높은 음식점들이 많다. 이러니 여행자들에게 오사카는 먹을거리의 천국일 것이다.

 

-P.8-

 

1.

 

 날씨가 점점 추워지니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어집니다. 알바가 끝나고 집에오는길,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근처 포장마차에서 우동을 시켰는데 조미료 맛이 강하게 납니다. 거리 음식이 다 그렇지라고 생각하며 위로해보지만 밀려오는 짜증은 어쩔수 없습니다. 반쯤 남기고 집으로 향하는 길 문뜩 오사카에서 먹었던 유부 우동의 담백하면서 깔끔한 맛이 생각나 입가에 침이 고였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중 하나가 '음식'일 겁니다. 맛집 프로그램에서 방송을 탔다 하면 사람들이 몰려 몇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이유도 아마 이런 먹는 즐거움이 인간에게 있어 포기하기 힘든 쾌락이기 때문일 겁니다. 저 역시 이런 쾌락에 무척이나 나약합니다. 때문에 친구를 만나러 갈때,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떠날때 여러가지 매체들을 이용해 '맛집'을 찾아봅니다.

 

 

야키타테 치즈 케이크는 전적으로 1980년대 일본인 입맛에 맞게 만들어졌다. 그리대 맛잇는 것은 시간이 지나도 맛있다. 칯즈 맛이 강한 케이크만 맛본 사람이라면 이 케이크의 맛이 약간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갓 만들어진 치즈케이크는 따뜻하면서 푹신하고 치즈의 향기로운 냄새를 풍겨,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치즈는 덴마크, 유유ㆍ버터는 훗카이도산이다. 한 번에 12개씩만 구워 판매한다. 갓 만들어진 치즈 케이크에 인장을 찍듯이 푸근한 얼굴의 아저씨 그림을 찍는 것도 하나의 볼거리다.

 

-P.86-

 

2.

 

 몇 년전 오사카를 여행할 때도 일본어보다는 일본 음식에 대해 더 많이 준비해 갔었습니다. 히라가나는 몰랐지만, 음식을 주문하는 방법이라던지 음식점의 맛있는 메뉴가 무엇인지는 수첩에 빼곡히 적어뒀었죠. 덕분에 정말 즐거운 식도락 여행이 되었었습니다. 고베의 친절했던 제과점, 교토의 분위기있던 찻집, 나라의 푸짐한 장어덮밥 등 각 지역마다 유명하다는 음식들은 빼놓지 않고 먹으려 노력했었습니다. 모든 음식점들이 인상적으로 기억속에 남아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건 오사카의 도톤보리 였습니다. 오사카의 먹자골목 도톤보리는 '먹다 망한다'라는 말이 있을정도로 먹거리가 다양합니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맛있고, 저렴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이곳은 먹을거 좋아하는 여행자들에게는 정말 천국입니다. 오므라이스, 우동, 오코노모야키, 야키소바 등등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들이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기억을 훑어나가다 보니 무슨 도톤보리 예찬론이 되어버렸네요. 그렇지만 저에게 '미식'이라는 단어와 오사카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생각을 지닌 사람은 저 뿐만이 아니였나 봅니다. <오사카 구르메>는 오사카의 맛집 소개서입니다. 오사카 근교의 소문난 맛집들을 찾아 본인이 검증한 곳들만을 책에 옮겨 소개하고 있는데요. 제가 찾아갔던 '이마이우동'이라던지 '검은 할아버지 케이크'등이 소개되어 있어 더욱 반가웠습니다.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레미의 팁' 부분으로 추천메뉴와 가게의 특징등을 정리한 부분이였는데요. 일본어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쉽게 음식을 주문하고, 음식점의 성격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가게 입구는 고급 일식집 분위기로 주머니가 가벼운 관광객이라면 들어가기가 꺼려지겠지만, 1천 엔 정도로 오사카에서 최고로 유명한 우동을 먹을 수 있다면 그런 부담감쯤은 날려 버려도 좋을 듯하다. 이마이의 키쓰네 우동은 지금 이마이의 명성을 만든 일등 공신이다. 훗카이도산 천영 다시마와, 규슈산 가쓰오를 사용해 독자적으로 만든 우동 국물은 처음엔 약간 싱겁게 느껴질 수 있지만, 국물에서 흘러나오는 감미롭고 품위 있는 맛은 한 번 먹어 본 사람이라면 쉽게 잊을 수가 없다. 더구나 다시 국물은 선도가 생명이기에 이마이는 한 번에 많이 만들어 놓지 않고 여덟 되 정도 들어가는 솥에 하루에도 몇 번이나 국물을 만든다.

 

-P.216-

 

 

3.

 

 맛있는 음식에 대한 기억은 의외로 오래 남아있습니다. 한 예로 몇 년 전에 먹은 '우동의 맛'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우동의 기준이 되어버린 것처럼. 한번 입에 맞는 음식에 중독되 버리면 그 기억이 지워지기 힘듭니다. 더 맛있는 음식을 먹기 전엔 말이죠. 날이 추워지니까 우동이 생각납니다. 직접만들었다는 달달한 유부외에는 딱히 들어간 것도 없었지만 그 한 그릇 우동이 제게는 지워지지 않는 하나의 추억이 되어 남아 있습니다.

 

 일본에 간다면. 그중에서도 음식의 고장 '오사카'에 가게된다면. 미리 소문난 집들을 찾아보세요. 아는만큼 보인다는게 학문에만 포함되는게 아니라, 음식의 도에서도 통용되는 진리입니다. 의외의 '맛'으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수도 있을겁니다. 오사카 여행시 가이드 북 외적으로 꼭 챙겼으면 하는 책 <오사카 구르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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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면 언제 오나 - 전라도 강진 상엿소리꾼 오충웅 옹의 이야기 민중자서전 1
김준수 글.그림 / 알마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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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가면 언제오나 / 글ㆍ사진 김준수

 

 

나는 가네 나는 가네

명정 공포 운아삽이 어서 가자고 재촉을 허니

동네 어르신 우리 일가 친척이든지 우리 자녀들 남은 친구들

날 간다고 설워어 말어라아

 

가도 가도 내 못가는 길

길이 달러서 나는 영원히 가네에

이승의 애기로 탄생하여 또 다시 찾어를 오실라요오

 

-P.18-

 

1.

 

 누군가의 자서전을 읽고 있자면 참 묘한 기분이 듭니다. 타인의 인생을 책을 통해 경험한다는 생각 때문일까요. 제 3자의 입장이 되어 바라본다기 보다는, 주인공 그 자체가 되어 책을 읽어나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출판사 '알마'에서 '민중 자서전'이라는 주제로 우리 주변 이웃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편찬했습니다. 상여꾼, 헌책방주인, 중고 음반가게의 주인, 약재상 같은 우리 주변에서 지금은 흔히 볼 수 없는 직업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말이죠. 그 기획의 첫번째 책이 바로 <이제가면 언제오나>입니다.

 

 '이제가면 언제오나' 어디선가 많이 들어 귓가에는 익숙하지만, 실제로 들어본 기억은 없습니다. 사실 도시에서 살아가며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것이 조금은 특별한 경험일 겁니다. 죽음이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금기시 하는 사회에서 '상엿'이나 '상엿소리'의 존재는 인식하고 싶지 않은 불길한 존재였을 테니 말이죠.

 

 산업화 이전인 60년대까지 우리나라의 대표 산업은 농업이였습니다. 도시에 살고있는 인구보다 농촌에 살고 있는 인구가 훨씬 많았던 시절이였으니까요. 사람들과의 협동이 필수적인 농경 사회에서 장례 문화는 모두가 함께 참여하여 고인이 죽음을 애도하는 공동체적인 의미가 강했을 겁니다. 하지만 점점 개인화 되어가는 사회속에서 예전의 장례문화는 찾아 보기 힘듭니다. 인간의 마지막인 죽음까지도 깔끔하고 편리하게 서비스되는 세상이니까요.

 

 

 

그가 아직도 일본 집 주소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이유가 이제야 납득이 된다. 그의 기억 속에는 유복했던 일본에서의 생활이, 노래를 좋아하고 잘해서 가수를 꿈꿨던 그 시절이 늘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모양이다. 그것은 어쩌면 다시는 건너지 못할 바다를 건너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안타까움고 그리움, 그리고 아무리 애를 써도 그때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는 현실에 발을 디뎌야 하는 애통함과 막연한 원망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각인이 아닐까.

 

-P.52-

 

 

2.

 

 모든것이 빠르고 편리하게 진화해 간다지만, 그래서 상여꾼의 노래역시 기계로 녹음되어 틀어주고 있는 현실이라지만 상엿소리를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존재합니다. 장례만큼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치르고 싶은분들을 위해, 오충웅 할아버지는 요령을 놓지 못합니다.

 

 1936년 일본 오사카에서 부유한 집의 맏아들로 태어난 오충웅 할아버지는 해방 뒤 아버지의 고향인 전라남도 강진 난산마을로 돌아옵니다. 패망한 국가인 일본에서 조선인으로 살아가기란 무척이나 힘들었기 때문에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떠난 길이었습니다. 유독 목소리가 좋았던 오충웅 할아버지는 일본에서도 알아주는 소리꾼이였다고 합니다. 조그만하고, 예쁘장한 사내 아이가 부르는 노래는 무척이나 아름다웠지만 바다건너 한국 사람들에게는 무당 아들이라는 흉으로 불리던 그런 시절이였습니다. 예인이 천대받던 시절이었으니까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음악에 대한 끈을 놓지 못합니다. 가수가 되고 싶어 집을 나와 악극단에 들어가고, 약장수를 쫓아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결국 그는 가수의 꿈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그가 노래를 포기한것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찾아 상엿꾼이 됩니다. 사람들의 죽음을 위로하고, 죽은이의 후생을 기도해주는 그의 역할은 장례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재능이였습니다. 그렇게 당시에는 전국으로 불려다녔던 그였습니다.

 


 

 

 

맑은 하늘을 가르는 요령 소리는 이승을 떠나 저승문에 가 닿기라도 할 듯, 떨리면서도 구슬프게 울려퍼진다. 애절하고도 비통한 곡소리와 담담한 듯 구성진 그의 상엿소리에 산 자와 죽은 자 모두가 위로받는다. 그 시간만큼은 그들 모두, 하나의 소리를 듣고 한 사람을 기억하고, 그렇게 한 사람을 떠나보낸다.

그 길의 시작과 끝에 오충웅 옹이 있었다.

 

-P.212-

 

3.

 

 떨리면서도 구슬픈 상엿소리는 산자와 죽은자 모두를 위로합니다. 삶의 마지막을 위로하는 노래를 기계로 대체하는 현실은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우리내 사회에 안타까움을 느끼게 합니다. 존엄한 인간의 죽음까지도 한통의 전화로 끝낸다는 모 장례회사의 광고는 너무나 차갑습니다. 그렇지만 저 역시 그런 편리함의 시대에서 그 쉬운 유혹을 뿌리치지 못합니다. 삶의 시작과 끝까지 편리하게 서비스되는 유혹을 말이죠.

 

 오충웅 할아버지의 인생은 어찌보면, 무척이나 불행합니다. 자신의 인생에서 후회되는 점을 정확하게 집어낼 수 있으셨으니깐 말이죠. 하지만 그 삶이 후에 오충웅 할아버지께 더 큰 의미를 전달해 주었다면 그건 바라보는 자의 시선일 뿐일까요? 책을 덮고난 뒤 밀려오는 묘한 감정들은 한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아본 듯한 느낌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담담하게 다가오는 이야기들 속에서 '잘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이였다 생각했습니다. 나의 자서전을 썼을때 그것을 읽는 다른 누군가도 비슷한 생각을 해줬으면 좋겠다 생각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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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2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2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현정수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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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 히가시가와 도쿠야

 

 

어둠 속으로 녹아들 것 같은 다크 수트와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은테 안경.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쓸어넘긴 단정한 얼굴의 남자는 레이코 앞으로 걸어오더니 '공손함'이란 단어를 그림으로 그린 듯한 우아한 몸짓으로 인사했다.

 

-P.43-

 

1.

 

 일본은 한국과 달리 추리소설과 같은 장르문학이 드라마나, 영화, 만화등의 영상매체로 많이 제작됩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드라마를 더 좋아하지만 너무 뻔한 레파토리의 로맨스는 이제 실증이 납니다. 추리물을 좋아하는 팬으로서 <별순검>과 같은 작품들이 많이 나와줬으면 하는데, 막장드라마의 시청률을 이기지 못해서인지 국내에서는 여전히 비슷비슷한 드라마들만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비슷한 이유로 미드나, 일드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요. 이런 변화를 눈치챈 케이블 방송에서는 CSI, 김전일 등의 추리물들을 방송해주곤 합니다. 타이밍만 잘 맞추면 좋은 작품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는데요.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는 이렇게 영상을 통해 먼저 알게 된 작품입니다.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는 유머 미스터리로 국내에 이름을 알린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작품입니다.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작품들은 이미 여러 출판사에서 각기 다른 시리즈를 내세우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데요. 시리즈마다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까칠 집사와, 천방지축 재벌집 아가씨 콤비의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를 가장 좋아합니다. 짧막 짧막한 옴니버스 형식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고, 매력 만점의 캐릭터도 마음을 사로잡으니 책 한 권을 금방 읽어버렸습니다.

 

 

아니, 누군가가 아니다. 살인 현장에서 레이코를 아가씨라고 부를 만한 인물은 전 세계에서 단 한사람. 돌아보자 아니나 다를까, 눈앞에 미소 짓고 있는 것은 하얀 양복 차림의 남자. 그는 구니타치 경찰서가 자랑하는 초 엘리트이자 레이코의 직속상사, 가자마쓰리 경부다. 그 정체는 유명 자동차 메이커 '가자마쓰리 모터스' 창업가의 상속자라는 것은 구니타치 경찰서의 전 직원뿐만 아니라 다마지쿠에서 활동하는 범죄자들 대다수가 잘 알고 있다.

 

-P.253-

2.

 

 책은 총 6개의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는 범인의 트릭에서, 불가능한 밀실에서 발생하는 사건들까지 본격추리의 구성을 따라감에도 유머라는 코드를 놓고 있지 않는 이야기들은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장점만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데요 가벼운 마음으로 읽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트릭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첫번째 작품인 <완벽한 알리바이를 원하십니까>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는데요. 억지스러운 면도 없잖아 있었지만, 집사의 독특한 문제해결 방식을 처음 접하게 된 작품이여서인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다카치와역 근처의 한 빌딩에서 한 여성이 사체로 발견됩니다. 흉기와 핸드폰이 없어진것으로 면식범의 살인사건임을 직감하는 레이코 형사는 주변 이웃들의 증언을 통해 그녀의 전 남자친구를 조사합니다. 여러가지 정황으로 보아 범인임이 확실하지만 그에게는 명백한 알리바이가 있습니다. 레이코는 자신의 고민을 집사인 가게야마에게 털어놓는데요. 그는 풀리지 않던 문제를 무척이나 명쾌하게 추리해 냅니다.

 

 

 

레이코의 뺨이 삽시간에 붉어진 것은 소홍주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까지 정보가 새고 있다면 더 이상 감출 이유도 없다. 게다가 이 가게야마라는 집사는 상류층의 가십에는 흥미가 없지만, 난해한 살인사건 이야기에는 이상할 정도로 흥미를 보이는 남자다. 그리고 레이코의 이야기를 들은 것만으로 가자마쓰리 경부가 백 년 걸려도 간파할 수 없는 진상을 한순간에 간파해내는 눈의 소유자다. 레이코는 그런 가게야마를 남몰래 신뢰하고 있었다.

 

-P.284-

3.

 

 사실 똑같은 포맷으로 흘러가는 이야기가 독자에게 지루하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천방지축 여형사 레이코가 사견의 실마리를 잡지 못할 때 집사 가게야마가 완벽한 추리를 해냄으로서 이야기는 마무리 됩니다. 위기감이 떨어지는 단편에서 이런 치명적인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사용된것이 독특한 캐릭터가 아닐까 생각해 보는데요.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을 따라가다보면 비슷한 이야기도 다르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3권까지 나오다면, 음... 그땐 조금은 지겨워 질지도 모르겠네요.

 

 개인적으로 표지의 느낌이 조금 바뀌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같은 디자인에 색깔만 바뀐 채 2편이 나왔습니다. 표지에 목숨거는 저로서는 이부분이 좀 많이 아쉬웠는데요. 두권을 같이 놔두니 나름 모양이 괜찮게 나오네요. 책은 2편을 먼저 읽고 읽고 1편을 읽어도 상관이 없는 옴니버스 형식의 구조입니다. 각 이야기마다 주인공들의 개성만점 캐릭터가 강하게 표출되니 걱정 없이 읽으셔도 됩니다.

 

 3편이 나온다면 레이코와, 가게야마 집사의 달콤한 로맨스가 주축이 되는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생각해 봤습니다. 진지한 미스터리에 실증을 느끼시는 분들에게 추천하는 유머 미스터리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2>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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