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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물쇠가 잠긴 방
기시 유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자물쇠가 잠긴 방 / 기시 유스케
"음. 그랬군요. ㆍㆍㆍㆍㆍ그게, 나는 종교라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요. 존재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고, 특히 불교의 타락은 차마 눈뜨고 못 볼 지경이거든요. 불교식 장례다 뭐다 하면서 계명에 등급을 매겨서 돈을 얼마나 뜯어낼 수 있느냐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한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불단 따위는 일절 집안에 놔두지 않았습니다. 고인을 애도하는 기분은 각자가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으면 되는 것 아니겠어요?"
-P.115-
1.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유독 '밀실'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합니다. 얼핏 불가능해 보이는 현장에서 하나의 실마리를 찾아 문제를 해결하는 탐정들의 모습은, 현실에서도 이런 탐정들이 존재한다면 정말 '완전범죄'란 존재하지 않을텐데 라는 아쉬움을 남기도 합니다.
'기시 유스케'의 신작 <자물쇠가 잠긴 방>역시 이러한 '밀실'을 다루고 있는 4편의 단편집입니다. (사실 분량으로 봤을때는 중편에 가깝습니다.) 방범탕멎 에노모토 케이와 변호사 아오토 준코 콤비는 작가의 전작 <유리망치>와, <도께비불의 집>에서 홈즈와 왓슨을(조금 많이 엉성한....) 연상케 하는 멋진 추리를 보여준 바 있는데요. 이 활약은 <자물쇠가 잠긴 방>에서도 유감없이 나타납니다.

기울어진 데다 바닥이 비에 젖어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뒤통수를 부딪쳐 사망. 아주 자연스러운 시나리오다. 이 사건은 불행한 사고로 처리되리라.
이건 전부 밀실에서 벌어진 일이니까.
이 불쾌한 결함 주택, 비뚤어진 상자야말로 이 남자에게 가장 어울리는 관이다.
-P.241-
2.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책은 모두 '밀실'이라는 트릭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때문에 마지막 작품인 <밀실극장>을 제외하고는 '범인들이 누구냐' 보다 '어떻게 밀실을 만들었고, 그 안에서 범죄를 저질렀는지'가 관건입니다. 도입부부터 범인이 밝혀지는 작품들은 사실 이야기로서의 매력은 없습니다. 본격을 좋아하지 않는 저로서는 이 풀이 과정이 사실 무척이나 지루하게 느껴졌는데요. 완성도 있는 트릭임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설명해 가는 과정이 지나치게 길게 느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였던 이야기는 첫번째 이야기 <서있는 남자>였습니다. 장례회사를 운영하는 사장이 밀실의 방안에서 시체로 발견됩니다. 발견된 유서에는 자신의 처조카인 세이치 전무에게 회사를 물려주겠다 써있지만 시체가 서있었고, 불필요한 백막이 현장에서 발견되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점들이 존재합니다. 시체를 발견한 오이시 사장의 법무사 마사토코는 이 사건을 에노모토에게 의뢰하고, 에노모토와 파트너 준코는 파렴치한 범죄의 전말을 밝혀냅니다.
4편의 이야기 중 <밀실극장>을 제외한 나머지 이야기들은 돈과, 욕심이 불러온 비극적인 살인사건입니다. 그 과정에 있어 조금 더 스토리를 가미했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지만, 앞서 리뷰한 <수수께끼는 저녁식사 후에> 처럼 옴니버스 형식의 드라마로 만들어져지기에는 좋은 구성이였던것 같습니다. 실제로 후지TV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져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하니, 한번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정상참작이고 뭐고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걸로 카나를 영원히 잃었으니까.
그뿐이랴, 인생 그 자체를 망치고 말았다.
이 비뚤어진 상자, 일그러진 복수심에 사로잡혀서
-P.298-
3.
개인적으로 북홀릭이라는 출판사의 표지를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모양이 잘 변하지 않는 양장판인것도 마음에 들지만,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을 함께 세워놨을때 그 높이가 일정해 장식용으로도 손색없기 때문입니다. '에노모토 케이' 시리즈인 <유리망치>와 <도깨비불의 집>은 각기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되어 책의 모양이 다른데요. 한 출판사에서 나와서 책 모양이 일정했으면 더욱 좋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사실 '기시 유스케'라는 작가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검은 집>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 부터입니다. 국내에 영화화 되며 충격적인 소재와 이야기로 인기를 끌었던 작품은, 제게도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는데요. <자물쇠가 잠긴 방>의 소개를 보고 <검은 집>의 느낌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트릭위주의 이야기에 사실 좀 실망했습니다. 본격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읽어봐야 겠지만, 사회파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굳이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