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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면 언제 오나 - 전라도 강진 상엿소리꾼 오충웅 옹의 이야기 ㅣ 민중자서전 1
김준수 글.그림 / 알마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이제가면 언제오나 / 글ㆍ사진 김준수
나는 가네 나는 가네
명정 공포 운아삽이 어서 가자고 재촉을 허니
동네 어르신 우리 일가 친척이든지 우리 자녀들 남은 친구들
날 간다고 설워어 말어라아
가도 가도 내 못가는 길
길이 달러서 나는 영원히 가네에
이승의 애기로 탄생하여 또 다시 찾어를 오실라요오
-P.18-
1.
누군가의 자서전을 읽고 있자면 참 묘한 기분이 듭니다. 타인의 인생을 책을 통해 경험한다는 생각 때문일까요. 제 3자의 입장이 되어 바라본다기 보다는, 주인공 그 자체가 되어 책을 읽어나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출판사 '알마'에서 '민중 자서전'이라는 주제로 우리 주변 이웃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편찬했습니다. 상여꾼, 헌책방주인, 중고 음반가게의 주인, 약재상 같은 우리 주변에서 지금은 흔히 볼 수 없는 직업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말이죠. 그 기획의 첫번째 책이 바로 <이제가면 언제오나>입니다.
'이제가면 언제오나' 어디선가 많이 들어 귓가에는 익숙하지만, 실제로 들어본 기억은 없습니다. 사실 도시에서 살아가며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것이 조금은 특별한 경험일 겁니다. 죽음이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금기시 하는 사회에서 '상엿꾼'이나 '상엿소리'의 존재는 인식하고 싶지 않은 불길한 존재였을 테니 말이죠.
산업화 이전인 60년대까지 우리나라의 대표 산업은 농업이였습니다. 도시에 살고있는 인구보다 농촌에 살고 있는 인구가 훨씬 많았던 시절이였으니까요. 사람들과의 협동이 필수적인 농경 사회에서 장례 문화는 모두가 함께 참여하여 고인이 죽음을 애도하는 공동체적인 의미가 강했을 겁니다. 하지만 점점 개인화 되어가는 사회속에서 예전의 장례문화는 찾아 보기 힘듭니다. 인간의 마지막인 죽음까지도 깔끔하고 편리하게 서비스되는 세상이니까요.

그가 아직도 일본 집 주소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이유가 이제야 납득이 된다. 그의 기억 속에는 유복했던 일본에서의 생활이, 노래를 좋아하고 잘해서 가수를 꿈꿨던 그 시절이 늘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모양이다. 그것은 어쩌면 다시는 건너지 못할 바다를 건너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안타까움고 그리움, 그리고 아무리 애를 써도 그때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는 현실에 발을 디뎌야 하는 애통함과 막연한 원망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각인이 아닐까.
-P.52-
2.
모든것이 빠르고 편리하게 진화해 간다지만, 그래서 상여꾼의 노래역시 기계로 녹음되어 틀어주고 있는 현실이라지만 상엿소리를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존재합니다. 장례만큼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치르고 싶은분들을 위해, 오충웅 할아버지는 요령을 놓지 못합니다.
1936년 일본 오사카에서 부유한 집의 맏아들로 태어난 오충웅 할아버지는 해방 뒤 아버지의 고향인 전라남도 강진 난산마을로 돌아옵니다. 패망한 국가인 일본에서 조선인으로 살아가기란 무척이나 힘들었기 때문에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떠난 길이었습니다. 유독 목소리가 좋았던 오충웅 할아버지는 일본에서도 알아주는 소리꾼이였다고 합니다. 조그만하고, 예쁘장한 사내 아이가 부르는 노래는 무척이나 아름다웠지만 바다건너 한국 사람들에게는 무당 아들이라는 흉으로 불리던 그런 시절이였습니다. 예인이 천대받던 시절이었으니까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음악에 대한 끈을 놓지 못합니다. 가수가 되고 싶어 집을 나와 악극단에 들어가고, 약장수를 쫓아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결국 그는 가수의 꿈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그가 노래를 포기한것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찾아 상엿꾼이 됩니다. 사람들의 죽음을 위로하고, 죽은이의 후생을 기도해주는 그의 역할은 장례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재능이였습니다. 그렇게 당시에는 전국으로 불려다녔던 그였습니다.

맑은 하늘을 가르는 요령 소리는 이승을 떠나 저승문에 가 닿기라도 할 듯, 떨리면서도 구슬프게 울려퍼진다. 애절하고도 비통한 곡소리와 담담한 듯 구성진 그의 상엿소리에 산 자와 죽은 자 모두가 위로받는다. 그 시간만큼은 그들 모두, 하나의 소리를 듣고 한 사람을 기억하고, 그렇게 한 사람을 떠나보낸다.
그 길의 시작과 끝에 오충웅 옹이 있었다.
-P.212-
3.
떨리면서도 구슬픈 상엿소리는 산자와 죽은자 모두를 위로합니다. 삶의 마지막을 위로하는 노래를 기계로 대체하는 현실은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우리내 사회에 안타까움을 느끼게 합니다. 존엄한 인간의 죽음까지도 한통의 전화로 끝낸다는 모 장례회사의 광고는 너무나 차갑습니다. 그렇지만 저 역시 그런 편리함의 시대에서 그 쉬운 유혹을 뿌리치지 못합니다. 삶의 시작과 끝까지 편리하게 서비스되는 유혹을 말이죠.
오충웅 할아버지의 인생은 어찌보면, 무척이나 불행합니다. 자신의 인생에서 후회되는 점을 정확하게 집어낼 수 있으셨으니깐 말이죠. 하지만 그 삶이 후에 오충웅 할아버지께 더 큰 의미를 전달해 주었다면 그건 바라보는 자의 시선일 뿐일까요? 책을 덮고난 뒤 밀려오는 묘한 감정들은 한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아본 듯한 느낌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담담하게 다가오는 이야기들 속에서 '잘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이였다 생각했습니다. 나의 자서전을 썼을때 그것을 읽는 다른 누군가도 비슷한 생각을 해줬으면 좋겠다 생각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