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아들
데니스 존슨 지음, 박아람 옮김 / 기이프레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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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나지 않는 삶의 음영을 수시로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이따금 마음의 눈에 편광 필터를 장착한 채 자신의 내면을 샅샅이 훑어보는 일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나 자신의 외관이 아닌 내면을 시간을 들여 꼼꼼히 살핀다는 건 낯설고 번거로운 일일뿐더러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마음에 난 상처는 그 실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상처의 크기도, 발병의 원인이나 시기도 무엇 하나 제대로 밝혀지는 게 없다. 그리하여 우리는 자신의 내면을 살피는 일에 순진할 정도로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습관으로 하여 우리는 자신의 내면이 타인의 그것처럼 데면데면하고 푸접없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의 내면과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긴요한 일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에 있던 근육이 나이와 함께 소실되는 것을 염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게는 없던 마음의 근육이 나이가 들수록 더욱 절실해지는 것이다. 나와 가까웠던 사람들이 하나둘 작별을 고하기도 하고, 종국에는 나만 홀로 남겨진 듯한 세상이 머지않은 시기에 도래한다는 건 너무나 명확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마음의 근육을 조금씩 키워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영화, 음악, 명상, 독서 등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겠다. 심지어 어떤 이에게는 달리기가 그 역할을 대신할지도 모른다. 그나마 책을 싫어하지 않는 나로서는 여러 작가의 글을 통해 나의 내면을 살피는 데 익숙할 뿐이다. 그와 같은 역할을 했던 작품은 읽고 지나친 후에도 가끔 생각이 난다. 얼마 전에 읽었던 데니스 존슨의 소설 <기차의 꿈>도 그런 책 중 한 권이다. 모름지기 좋은 책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자기도 모르게 부지불식간에 떠오르거나 연상되는 어떤 사물이나 상황으로 인해 소설 속의 한 장면을 자신의 의식 속으로 소환하게 되는 책. 그렇게 소환된 소설 속 한 장면으로 인해 나의 내면이 자연스레 내 의식의 벽면에 파노라마처럼 상영되는 일.


"사고 차량에 늘어져 있던 남자는 내가 지나갈 때 아직 살아 있었다. 이 무렵 나는 그가 심하게 다쳤다는 사실에 조금 익숙해져서 걸음을 멈추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는 요란하고 무례하게 코를 골았다. 숨을 쉴 때마다 입에서 피가 부글부글 나왔다. 그런 숨조차 많이 남지는 않은 듯했다. 나는 알았지만 그는 몰랐고, 그렇기에 나는 그를 내려다보면서 이 지상에서 인간의 삶이 얼마나 측은한지 절감하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결국 죽는다는 것, 그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는 자기가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내게 말할 수 없고 나는 현실이 어떤지 그에게 말할 수 없다는 것, 그 점이 내게는 지독히 측은하게 느껴졌다."  (p.30 '히치하이킹 도중에 일어난 자동차 사고' 중에서)


데니스 존슨의 단편집 <예수의 아들>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하거나 평범한 이의 삶과 비교하면 무척이나 예외적인 삶을 다루고 있다. 20대 내내 마약과 술에 중독된 채 살았던 작가의 경험을 반영한 듯 책 속의 인물들은 모두 삶이 부러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부서지고 흩어져서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의 삶'으로의 복귀가 불가능해 보이는 삶일지라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반짝이는 순간이 기적처럼 찾아온다는 것이다. 작가는 그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고 노력한 것 같다. 그러나 반짝이는 그 순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의 삶, 이를테면 허물어지고 한없이 흐트러진 삶을 보여주기 위해 작가가 제공하는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의 모습은 우리의 상식으로는 너무나 삐뚜름하게 보인다. 구멍이 숭숭 난 스웨터처럼 온전한 모습으로는 결코 보이지 않는 것이다.


"바인에서는 그런 순간이 많았다. 오늘이 어제인 줄, 어제가 내일인 줄 착각하는 순간. 왜냐면 우리는 모두 우리가 비참하다고 여기며 술을 마셨으니까. 우리는 그런 무력감, 우리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우리는 수갑을 찬 채로 죽을 터였다. 결국 우리의 삶은 강제로 종지부를 찍을 터였고 심지어 우리 잘못도 아닌 일로 그렇게 될 터였다. 우리는 그렇게 상상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늘 터무니없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곤 했다."  (p.63 '보석(保釋)' 중에서)


데니스 존슨의 단편집 <예수의 아들>은 편집 또한 기괴하다. 소설의 목차는 책의 가장 뒤편에 배치되어 있고, 책에 실린 단편소설의 제목 역시 소설이 끝나는 마지막 페이지에 등장한다. 말하자면 독자는 단편소설의 제목도 모른 채 본문부터 읽기 시작하여 소설을 다 읽은 후에야 비로소 제목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편집 방식을 사전에 알고 있었던 독자라면 제목이나 목차를 먼저 확인하고 읽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책에 실린 단편소설의 제목을 보면, ''히치하이킹 도중에 일어난 사고', '두 남자', '보석', '던던', '일', '응급실', ';더럽혀진 결혼', '다른 한 남자', '해피아워', '시애틀 종합 병원에서 본 굳건한 손', '베벌리 요양 병원' 등 11편이다. 소설은 지극히 짧은 소설에서부터 적당히 긴 소설에 이르기까지 꽤나 다양하다. 소설은 사실과 환각이 뒤엉키고 시제 역시 불분명한 까닭에 처음에는 잘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소설을 읽다 보면 작가가 서술하지 않아 잘려나간 듯한 부분 역시 독자의 상상력으로 자연스레 메워지게 된다.


"내가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기껏해야 일주일에 10시간, 12시간, 그 정도였다. 나는 정규직 일자리를 찾고 있었고 헤로인 중독 치료 모임에도 나갔으며, 지역 알코올 중독 수용 센터에도 정기적으로 보고해야 했고, 사막의 봄을 산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베벌리 요양 병원의 원형 복도는 마치 이승의 삶들 사이에 머무는 곳처럼 느껴졌다. 한 생을 살고 난 뒤 돌아와서 다른 영혼들과 뒤섞인 채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곳."  (p.181 '베벌리 요양 병원' 중에서)


우리는 이따금 자신의 삶은 되돌아보지 않은 채 타인의 삶을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마치 '남의 눈에는 티, 내 눈에는 들보'라는 격언처럼 제 눈에 있는 들보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데니스 존슨의 단편집 <예수의 아들>을 읽다 보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각각의 인물들에 대해 '왜 그렇게 살아?'라고 비난할 사람이 혹여라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존경해 마지않는 교황이나 달라이라마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삶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말할 수 있다. '적어도 나는 너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그런 사람을 주위에서 볼라치면 어느 영화의 시니컬한 대사처럼 "너나 잘하세요."라고 충고하는 게 맞을 듯하다. 데니스 존슨이 이 소설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당신의 인생도 이들과 다를 게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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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점심에 무엇을 먹었는지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바쁜 날들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바쁜 날들을 보낼 때마다 나는 스위스 출신의 작가 페터 빅셀이 쓴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가 떠오르곤 합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페터 빅셀의 말에 동의하고 저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현실과 타협하고, 그와 같이 행동하고 있는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자신의 삶을 꾸려갑니다. 어쩌면 우리는 못마땅하거나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현실 속의 자신을 죽기 직전까지 다독이고 미화하면서 이상만 추구하는 또 다른 나에게 끝없이 변명하고 설득하는 데 자신의 온 삶을 바쳐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일기 쓰기가 두렵다. 살면서 몇 번이고 시도했지만 이삼 일 뒤에는 늘 포기했다. 일기장은 내 날들을 망쳤다. 낮에 경험한 일을 저녁에 쓰는 것이 아니라, 일기장을 위해 살기 시작했으니까. 일기장을 위해 움직이고, 일기장을 위해 관찰했다. 일기장을 위해 술집을 고르고, 일기장을 위해 이야기할 사람을 찾았다. 의미 있는 일만 해야 한다면 인생은 삭막해진다. 일기장에 '오늘은 특별한 일이 없었음'이라고 적은 그 오늘도 상황에 따라서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이었을 수도 있을 테니."  (p.84~p.85)


그닥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지만 민주당의 전당대회가 끝났습니다. 누구나 예상했던 대로 김민석 의원이 당 대표로 선출되었고, 민주당의 당원이나 그렇지 않은 일반 국민들조차 시큰둥한 반응이었습니다. 대통령이 지지하고 밀었던 후보, 모든 언론과 진보 진영의 유튜버들이 그토록 공을 들이고 앞장서서 선거운동을 펼쳤던 후보, 그럼으로써 경쟁 상대였던 다른 유력 후보를 비인격적으로 조롱하고 공격할 수밖에 없었던 선거 운동, 선거 이후에 당선되지 않은 유력 후보를 지지했던 당원이나 수많은 시민들의 가슴에 남은 앙금을 해소하는 데는 일말의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그들의 태도 등은 선거 전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었지만, 막상 그 모든 게 현실로 재현되었을 때 사람들의 낙담은 단순한 낙담이 아니라 민주당과 대통령에 대한 실망과 분노로 바뀐 듯합니다. 그럼에도 선거에 동원되었던 여러 유튜버와 신임 당 대표를 지지하는 세력들은 자신들의 공과와 전리품을 챙기는 데 여념이 없는 듯 보이고 말입니다.


민주당의 당원으로 가입한 적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수십 년 동안 민주당을 지지하고 민주당의 후보에게 나의 한 표를 아끼지 않았던 나였지만 이번 선거만큼 저열한 방식의 당 대표 선거를 지금껏 본 적이 없었던 듯합니다. 선거가 진행되는 동안 끝없이 대통령을 팔았던 신임 당 대표와 그의 지지자들의 행태를 보면 이 모든 일들을 대통령이 용인하고 지지하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었던,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짓거리였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들도 어쩌면 자신들의 권모술수가 사람들의 눈과 귀는 속일 수 있어도 대중의 마음까지 얻을 수는 없다는 것을 조만간에 깨닫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는 얼마 전에 썼던 글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민주당에 대한 지지는 완전히 철회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제 주변에도 민주당을 탈당하여 당원 자격마저 없앤 사람이 여럿 있습니다. 머지않아 우리는 취임한 지 1년 남짓한 대통령의 지지율 추락과 '레임덕'이라는 단어를 자주 목격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주당은 물론 진보진영 전체로 보더라도 그것은 분명 불행한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쳐가는 모든 역사는 반드시 우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건 아닙니다. 그렇게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를 찾는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겠지만 말입니다. 내일은 더위도 물러간다는 처서, 우리 곁에는 여전한 더위가 숨을 쉬기 어렵게 몸을 감싸고 권모술수에만 능한 정치인들이 여름의 짜증을 더하고 있습니다. 모처럼 한가한 주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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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치워크 - 2025 문화체육관광부 중소출판사 성장부문 제작지원사업 선정작
방희진 지음 / 나루서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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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의 주변부에 있었을 때 우리는 여름이 하냥 만만하게 보였다. 그러나 더위의 중심부를 통과했을 때의 우리에게 여름은 무섭고 두려운 어떤 것으로 변해 있었다. 삶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삼시 세끼를 부모에게 의존하던 시기에 삶은 그저 한 번의 롤러코스트를 타는 것처럼 가볍고 시시한 것쯤으로 보였지만, 삶의 고비를 여러 번 겪고 난 중년의 어느 시기쯤에서 바라보면 삶은 마치 보따리를 풀면 풀수록 해결할 수 없는 참담한 문제들이 끝없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하나의 괴물 보따리쯤으로 여겨진다. 방희진의 소설집 <패치워크>를 읽는 동안 나는 아스라이 멀어져 간 듯 느껴지는 가까웠던 여름의 폭염과 그에 얽힌 몇몇 기억들을 떠올렸다. 마치 재질이 다른 조각천을 조각조각 이어 붙이듯 말이다.


"이름 아래 소개된 약력을 검지로 톡톡 치며 진영은 그렇게 말했다. 선망이나 비웃음이 담긴 말투는 아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여자의 부지런함만은 나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혜린은 갤러리 관장 외에도 미술평론가, 수도권 대학의 겸임교수로 불리고 있었다. 나는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오혜린의 글을 읽었다. 장 드뷔페의 아르 브뤼 미술을 미학적 관점에서 재조명한 것이었다. 새로운 주제는 아니었다. 진영의 말대로 평론이라 하기에는 애매했다. 인용한 문장이 많아선지 현학적이고 난삽해서 요점을 잡기가 어려웠다."  (p.110 '패치워크' 중에서)


방희진의 소설집에는 표제작인 '패치워크'를 포함하여 8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패치워크'에는 세 여인이 등장한다. 오정순이었다가 개명을 통하여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 오혜린과 주인공인 나(이정선)와 진영이 그들이다. 아버지 쪽 친척 여동생인 진영은 짧았던 결혼생활을 접고 그림에만 매달려 대외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편이었다. 반면에 백화점 디스플레이어로 일만 하던 나는 번아웃이 왔고, 그런 나에게 다시 붓을 쥐어준 이가 진영이었다. 전시회 때문에 오혜린을 만났던 진영이 나의 전화번호를 오혜린에게 건네주었고, 오혜린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30년 전의 흐릿한 기억을 되살린다. 나는 무명이었던 김옥환 화백이 그의 화실에서 수강생을 모아 서양화를 가르쳤을 때 오혜린과 함께 그림을 배웠던 수강생 중 한 명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세 사람은 내가 선물로 받았던 팔찌를 통하여 각기 다른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하나의 팔찌에 세 개의 다른 기억이라고 해야 할까. 소유하게 된 배경이나 동기도 서로 다르지만. 마치 소재와 색상이 다른 각각의 원단처럼.


"뒤늦게 첫 소설집을 내며 기쁨보다는 괴로움이 더 컸다. 의미를 따지는 평소의 습관대로 이 책에 대해서도 뜻있는 뭔가를 자꾸 찾으려 들었기 때문이다. 결론은 얻지 못했다. 다만 먼 길을 가는 사람이 첫발을 떼면서 호들갑부터 떤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그러니 용감하게 첫걸음을 내딛자, 이 책의 의미를 입증하는 알리바이로 그만큼만 주장하자 마음을 다졌다. 나중에는 나중의 알리바이를 주장할 테지만."  (p.254 '작가의 말' 중에서)


소설은 대개 피할 수 없는 관계와 그러한 관계 속에서 비롯되는 삶의 고뇌와 갈등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에 깨닫게 되는 여러 감정과 회한 또는 결심이 주를 이룬다. 어느 소설이든 다 그런 범주에 속할 테지만 말이다. 이 소설집에는 무엇인가를 잃었거나 삶의 목표에 근접하지 못한 인물들이 다수 등장한다. 작가는 이들의 내면 풍경을 그리기 위해 주변의 인물들을 동원하여 좀 더 심층적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에 흐르는 쓸쓸하고 덧없는 감정까지 말끔하게 지우지는 못한다. 그것은 인간이 지고 가야 할 원죄라도 되는 것인 양.


"수진이 저녁에 돌아와 하려던 말은 끝내 듣지 못했다. 그날 저녁의 약속만 아니었다면 수진은 무사했을까. 나는 대답을 얻지 못한 채 오래도록 내 안의 피멍에 주먹질을 했다. 아이를 치고 달아난 운전자에게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저주란 저주는 죄다 퍼부었다. 경찰에선 어떤 단서도 찾지 못했고 남편과 내가 내건 현수막은 그해 가로수가 모조리 잎을 떨어내고 겨울바람이 부는 동안에도 이면도로 가에서 저 혼자 펄럭였다."  (p.179 '이불' 중에서)


지면을 적시는 비는 꽤나 오랜만에 보는 듯하다. 아침에 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높아진 습도 탓에 불쾌지수가 높아진 저녁, 군데군데 먹장구름이 떠 있는 하늘 위로 노을이 번지고 있다. 방희진 작가의 소설집 <패치워크>를 읽고 왠지 모르게 울적해진 오늘, 삶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고 내 삶의 보따리를 풀어 보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고만고만한 문제들이 울적해진 마음에 불을 붙일 듯하다. 노을이 번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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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모르게 갈팡질팡 마음만 부산스럽고 안정이 되지 않을 때가 더러 있습니다. 그런 날은 책을 읽어도 좀체 진도가 나가지 않고, 읽고 지나쳤던 부분도 이해가 되지 않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다시 읽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크게 신경 쓰이는 근심이나 걱정거리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렇다 하는 문제도 딱히 찾을 수 없는데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마저 빨갛게 상기되어 마치 누군가로부터 심하게 쫓기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시간적 여유도 있고, 책을 읽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은데 도무지 집중을 할 수 없는 기분 탓에 독서에 빠져들 수 없는 현실. 집중력 결여의 상태가 불규칙적으로 자주 반복되는 까닭에 책을 읽을 수도 없는 현대인의 서글픈 현실은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닐 듯합니다.


오늘은 말복이자 광복절 연휴를 코앞에 둔 설레는 금요일. 습도가 높아진 탓인지 바깥공기는 텁텁하고 무겁습니다. 이렇게 습도가 높아진다는 건 뽀송한 하루를 보장받기 어렵다는 걸 의미하기도 합니다. '아, 가을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던 어제와 그제의 날씨와도 사뭇 비교가 되는 날씨 속에서 나는 가슴이 두방방이질 치는 불안을 잠재우지 못한 채 온종일 서성였습니다. 오죽하면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나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를 찾아 읽어볼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을까요.


유시민 작가의 <유럽 도시 기행 3>을 읽고 있습니다. 유시민 작가의 근거 있는 비평에도 불구하고 어떤 논리적 근거도 없이 작가를 조롱하고 비판하는 민주당 국회의원들과 소위 정치 비평이랍시고 떠벌리는 일부 '촉법 비평가'들의 야만적인 권력욕과 돈을 향한 저질적인 행태에 질려서 수십 년 민주당만 지지했던 나는 다시는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겠노라 결심하게 되었고, 지금 진행되고 있는 당대표 선거에도 관심이 전혀 없지만 오늘 대통령의 지지율이 44%로 취임 후 최저를 기록했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나와 같은 골수 민주당 지지자들의 마음이 식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드리드가 어떤 도시라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스페인의 수도이지만 제일 잘사는 도시도 아니고 가장 아름다운 도시 또한 아니다. 하지만 이 도시가 무엇을 바라면서 어디로 나아가려 하는지는 분명했다. 총칼 앞에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수호했던 정치인의 이름을 국제공항에 걸었다. 폭력이 난무한 시대에 인간의 이성을 깨웠던 예술가를 잊지 않았다. 실패했지만 옳은 길을 가려 했던 지도자를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 (P.97~P.99)


우리가 노무현 대통령을 존경하고 지금도 그리워하는 까닭은 그가 성공한 대통령이었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는 어쩌면 철저하게 실패한 대통령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것을 향해 끝끝내 나아가려 했던 모습을 우리는 모두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실패 역시 안타까워할 뿐입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배반한 변절자도 아니요, 국민을 기만한 노쇠한 정치인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항상 신념을 굽히지 않는 젊은 정치인이자 겉과 속이 같았던 투명한 정치인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취임 후 1년이 조금 지난 대통령에게서 닳고 닳은 노쇠한 정치인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그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것은 어쩌면 예정된 결과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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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피트니스 - 나는 뭔가를 몸에 새긴 것이다 ㅣ 아무튼 시리즈 1
류은숙 지음 / 코난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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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잠이 들었던 밤, 새벽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아, 그동안 얼마나 써보고 싶었던 단어인가. 바람 앞에 붙는 '선선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모든 걸 다 얻은 기분이었다. 운동복을 입고 아침 운동을 나설 때의 발걸음이 더없이 가벼웠다. 며칠 전부터 내가 운동을 나서는 새벽 5시 30분에는 환한 아침의 기운 대신에 어둠의 잔해가 희미하게 남기 시작했다. 그것이 첩첩 어둠은 아닐지라도 어둠의 빛깔이 조금씩 진해지는 건 사실이었다. 등산로에 낯선 얼굴들이 늘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늘 있는 현상이다. 물론 봄에서 여름으로,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시기에는 오히려 익숙했던 얼굴도 하나둘 사라지게 마련이지만 겨울에서 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이동하는 시기에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낯선 얼굴들이 하나둘 늘어나는 것이다. 나는 그들을 '계절 체험자'라고 부른다. 봄이나 계절 한 철을 또는 바뀐 계절의 며칠을 체험하는 것으로 만족할 뿐 습관성 운동은 애초부터 그들의 선택지에 존재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들은 그렇게 오랜만에 체험학습을 나온 초등학생들처럼 바뀐 계절을 열심히 체험하는 것이다.


"처음 헬스장 등록할 때 OT라는 걸 받으라 했다. 인바디 체크하고 이런저런 기구들 쓰는 법을 가르쳐준다 했다. 나는 완강하게 거부했었다. 병원 의료진 앞에서도 싫은데 남 앞에서 저울에 내 몸을 올리고 이리저리 출렁대는 몸을 기계마다 돌아다니며 전시하는 게 영 마뜩잖았다. 게다가, 그렇다, 나는 '독학' 스타일이다.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을 들으며 한 적이 없다. 수업 시간 내내 이런저런 공상에 빠져 지내다가 시험 전날 독학하는 게 내 공부 스타일이다. 한마디로 나는 남의 말 듣는 걸 아주 싫어한다. 그런 내가 올 것이 왔다고 느꼈다는 건 내 스타일, 독학 스타일을 버려야 할 바로 그 순간이 왔음을 직감했다는 거다."  (p.11)


어느 날 새벽 극심한 가슴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던 작가는 운동을 하라는 처방을 받아 들었다. 운동이라곤 25년 넘게 해온 인권운동밖에 모르던 작가가 피트니스의 세계에 뛰어들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바로 그것이었지만, 기간이 늘어날수록 체감하게 된 몸의 변화와 이로 인한 전반적인 삶의 변화는 피트니스를 주제로 한 책을 쓰는 데까지 이르고야 말았다. 그러므로 이 책 <아무튼, 피트니스>는 작가가 2년 가까이 체감한 피트니스에 대한 활동 기록지인 동시에 그로 인한 깨달음이다. 물론 운동을 처음 시작한 사람에게 부침이 없었던 건 아니다. 체중이 조금 가벼워지자 등산에 나섰다가 무릎을 다치는 바람에 깁스를 하고 한 달을 쉬기도 했고, 매 끼니마다 사진을 찍어 보내라는 트레이너의 요구에 난감해하기도 했다. 광우병 파동을 겪으면서 고기를 끊었고, 고혈압 판정을 받은 후 저염식 식사를 하게 되었다는, 그럼으로써 작가 자신의 인생에서 두 번의 큰 전환을 겪었다는 작가는 식습관을 바꾸는 인생의 대전환을 요구받았던 것이다.


"삶이 지루하다 해서 늘 익사이팅한 경험을 만들고 매일 여행을 떠날 순 없지 않은가. 살아가려면 늘 고만고만한 일상과 맞물려 돌아가는 소소한 성취에서 기쁨을 찾을 줄 알아야 한다. 피트니스의 지루함은 삶의 그런 모습과 닮아 있다. 피트니스의 문제라면 잘하게 될수록 복근 운동 세트 수가 늘어나는 것처럼 오히려 할 게 더 늘어난다는 점이다.(아차, 삶도 그런가. 삶에서 뭔가를 잘할수록 더 많은 책임이 따르게 되는 것 아닌가.)"  (p.81)


운동의 효과를 스스로 체감하기 시작하면서 작가는 운동 전도사로 탈바꿈했다. 그렇게 운동을 싫어하고 마구잡이식 식사에 젖어 있던 작가의 예전 모습을 비교하면 불가능에 가까운 변화였다. 데드리프트와 체스트리프트, 복근 운동과 스쿼트 등 트레이너의 지시와 운동기구의 사용 요령에 대한 학습이 반복되면서 작가 역시 헬스장의 문화에 익숙해지는 듯했다. 인간은 결국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적응하고 성장을 이어가는 동물 개체일 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개개인이 겪는 힘듦과 부침이 따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제대로 내 몸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모로 다짐을 해보곤 한다. '운동을 해서 몸이 좀 좋아졌다고 '내가 해봐서 아는데'의 또 다른 버전을 만들지 말자. 똑같은 산수로 서로 다른 생을 비교할 수 없다. 생애 주기에 따라서가 아니라 나에게 특화된 나의 몸과 활동이 있다. 늙지 않기를 바라는 대신 나이 듦과 더불어 살아가자. 운동을 하면서 '성공적인' 나이듦 같은 건 생각하지도 말자. 노화는 질병이 아니라 삶을 의미한다. 또 하나의 정신승리를 거부하자.'"  (p.152)


나는 오늘도 산뜻한 운동복 차림의 몇몇 '계절 체험자'들과 나란히 산길을 걸었다. 그들 중에서 올 겨울을 넘겨 2027년과 2028년을 함께 걷게 될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나는 적어도 그들이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체험하는 '계절 변화 얼리 어답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극한의 더위가 사라지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이맘때쯤이면 '아, 산에는 지금쯤 상수리나무의 잔가지가 떨어져 등산로를 덮고, 알도 차지 않은 풋밤송이가 매미의 울음소리에 놀라 후둑후둑 떨어지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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