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무튼, 피트니스 - 나는 뭔가를 몸에 새긴 것이다 ㅣ 아무튼 시리즈 1
류은숙 지음 / 코난북스 / 2017년 9월
평점 :
에어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잠이 들었던 밤, 새벽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아, 그동안 얼마나 써보고 싶었던 단어인가. 바람 앞에 붙는 '선선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모든 걸 다 얻은 기분이었다. 운동복을 입고 아침 운동을 나설 때의 발걸음이 더없이 가벼웠다. 며칠 전부터 내가 운동을 나서는 새벽 5시 30분에는 환한 아침의 기운 대신에 어둠의 잔해가 희미하게 남기 시작했다. 그것이 첩첩 어둠은 아닐지라도 어둠의 빛깔이 조금씩 진해지는 건 사실이었다. 등산로에 낯선 얼굴들이 늘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늘 있는 현상이다. 물론 봄에서 여름으로,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시기에는 오히려 익숙했던 얼굴도 하나둘 사라지게 마련이지만 겨울에서 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이동하는 시기에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낯선 얼굴들이 하나둘 늘어나는 것이다. 나는 그들을 '계절 체험자'라고 부른다. 봄이나 계절 한 철을 또는 바뀐 계절의 며칠을 체험하는 것으로 만족할 뿐 습관성 운동은 애초부터 그들의 선택지에 존재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들은 그렇게 오랜만에 체험학습을 나온 초등학생들처럼 바뀐 계절을 열심히 체험하는 것이다.
"처음 헬스장 등록할 때 OT라는 걸 받으라 했다. 인바디 체크하고 이런저런 기구들 쓰는 법을 가르쳐준다 했다. 나는 완강하게 거부했었다. 병원 의료진 앞에서도 싫은데 남 앞에서 저울에 내 몸을 올리고 이리저리 출렁대는 몸을 기계마다 돌아다니며 전시하는 게 영 마뜩잖았다. 게다가, 그렇다, 나는 '독학' 스타일이다.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을 들으며 한 적이 없다. 수업 시간 내내 이런저런 공상에 빠져 지내다가 시험 전날 독학하는 게 내 공부 스타일이다. 한마디로 나는 남의 말 듣는 걸 아주 싫어한다. 그런 내가 올 것이 왔다고 느꼈다는 건 내 스타일, 독학 스타일을 버려야 할 바로 그 순간이 왔음을 직감했다는 거다." (p.11)
어느 날 새벽 극심한 가슴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던 작가는 운동을 하라는 처방을 받아 들었다. 운동이라곤 25년 넘게 해온 인권운동밖에 모르던 작가가 피트니스의 세계에 뛰어들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바로 그것이었지만, 기간이 늘어날수록 체감하게 된 몸의 변화와 이로 인한 전반적인 삶의 변화는 피트니스를 주제로 한 책을 쓰는 데까지 이르고야 말았다. 그러므로 이 책 <아무튼, 피트니스>는 작가가 2년 가까이 체감한 피트니스에 대한 활동 기록지인 동시에 그로 인한 깨달음이다. 물론 운동을 처음 시작한 사람에게 부침이 없었던 건 아니다. 체중이 조금 가벼워지자 등산에 나섰다가 무릎을 다치는 바람에 깁스를 하고 한 달을 쉬기도 했고, 매 끼니마다 사진을 찍어 보내라는 트레이너의 요구에 난감해하기도 했다. 광우병 파동을 겪으면서 고기를 끊었고, 고혈압 판정을 받은 후 저염식 식사를 하게 되었다는, 그럼으로써 작가 자신의 인생에서 두 번의 큰 전환을 겪었다는 작가는 식습관을 바꾸는 인생의 대전환을 요구받았던 것이다.
"삶이 지루하다 해서 늘 익사이팅한 경험을 만들고 매일 여행을 떠날 순 없지 않은가. 살아가려면 늘 고만고만한 일상과 맞물려 돌아가는 소소한 성취에서 기쁨을 찾을 줄 알아야 한다. 피트니스의 지루함은 삶의 그런 모습과 닮아 있다. 피트니스의 문제라면 잘하게 될수록 복근 운동 세트 수가 늘어나는 것처럼 오히려 할 게 더 늘어난다는 점이다.(아차, 삶도 그런가. 삶에서 뭔가를 잘할수록 더 많은 책임이 따르게 되는 것 아닌가.)" (p.81)
운동의 효과를 스스로 체감하기 시작하면서 작가는 운동 전도사로 탈바꿈했다. 그렇게 운동을 싫어하고 마구잡이식 식사에 젖어 있던 작가의 예전 모습을 비교하면 불가능에 가까운 변화였다. 데드리프트와 체스트리프트, 복근 운동과 스쿼트 등 트레이너의 지시와 운동기구의 사용 요령에 대한 학습이 반복되면서 작가 역시 헬스장의 문화에 익숙해지는 듯했다. 인간은 결국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적응하고 성장을 이어가는 동물 개체일 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개개인이 겪는 힘듦과 부침이 따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제대로 내 몸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모로 다짐을 해보곤 한다. '운동을 해서 몸이 좀 좋아졌다고 '내가 해보서 아는데'으 또 다른 버전을 만들지 말자. 똑같은 산수로 서로 다른 생을 비교할 수 없다. 생애 주기에 따라서가 아니라 나에게 특화된 나의 몸과 활동이 잇다. 늙지 않기를 바라는 대신 나이 듦과 더불어 살아가자. 운동을 하면서 '성공적인' 나이듦 같은 건 생각하지도 말자. 노화는 질병이 아니라 삶을 의미한다. 또 하나의 정신승리를 거부하자.'" (p.152)
나는 오늘도 산뜻한 운동복 차림의 몇몇 '계절 체험자'들과 나란히 산길을 걸었다. 그들 중에서 올 겨울을 넘겨 2027년과 2028년을 함께 걷게 될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나는 적어도 그들이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체험하는 '계절 변화 얼리 어답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극한의 더위가 사라지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이맘때쯤이면 '아, 산에는 지금쯤 상수리나무의 잔가지가 떨어져 등산로를 덮고, 알도 차지 않은 풋밤송이가 매미의 울음소리에 놀라 후둑후둑 떨어지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 것이다.